[이도경의 에듀 서치] 유은혜 지키기? 교육부의 비교육적인 사과법

이도경 2022. 1. 18.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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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2년 업무계획 발표에 앞서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자 생활 16년이 되도록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괴상한 브리핑이 있었습니다. 교육부가 올 한 해의 업무 계획을 설명하는 자리였는데 지난 5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있었습니다. 발표자로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나섰습니다.

브리핑 현장을 묘사해보겠습니다. 유 부총리가 단상에 서서 준비해온 원고를 모두 읽자 질의응답 시간으로 넘어갑니다. 그런데 기자들은 손을 들어 질문을 요청하지 못합니다. 대신 유 부총리의 바로 앞, 기자석 맨 앞줄에 앉아 있는 대변인실 직원에게 메신저로 질문을 보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직원이 질문을 대독해줍니다. 질문자의 시각에서 보면 돌아 앉아 있는 대변인실 직원이 대신 읽어주는 자신의 질문을 유 부총리와 얼굴을 마주보고 함께 듣는 모습입니다. 코로나19 방역 때문에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게 교육부 설명이었습니다.

통상 부총리가 브리핑에 나서면 교육부 간부들이 대거 출동합니다. 그 간부들을 보좌하는 직원들도 자리합니다. 그래서 부총리가 브리핑을 하면 교육부 공무원들이 취재진보다 많은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날 브리핑 역시 그랬습니다. 하지만 교육부 직원들은 코로나19 방역에 크게 신경 쓰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붙어 앉아 브리핑을 기다리며 대화하다 몇몇은 기자석으로 넘어와 말을 건넸습니다. 브리핑이 진행되는 도중엔 귓속말로 대화하다 고개를 끄덕이고 웃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기자가 부총리에게 질문하려고 마이크 잡을 때만 활동하는 건 아닐텐데요.

여기까지는 그래도 이해해줄 만합니다. 당시 업무계획 발표는 청소년 방역패스가 법원에서 제동이 걸린 직후 열린 첫 부총리 브리핑이었습니다. 학생·학부모들의 이목이 집중된 자리였죠. 올 한해 학교 방역은 어떻게 강화할 것이고 이를 통해 정상등교는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코로나19로 심화된 교육 격차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질문이 쏟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육부는 입맛에 맞는 질문 네 개를 골랐습니다. 유 부총리는 직원들이 골라준 질문 네 개만 답하고 다음 일정을 이유로 떠났습니다.

‘이건 정말 아닌데’ 싶은 장면은 유 부총리의 사과 장면입니다. 유 부총리는 이번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생명과학Ⅱ ‘빈칸 수능 성적표’ 사태에 대해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법원에서 오류가 인정돼 강태중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사퇴한 뒤 22일만의 ‘뜬금없는’ 사과였습니다. 이날 카카오톡 메신저로 접수된 숱한 질문 가운데 수능 오류 입장을 묻는 질문 하나를 콕 찍어 응했으니 교육부가 의도한 일이라고 봐야 겠지요.

교육부는 어떻게든 유 부총리의 직접 사과를 피해보려고 애를 써왔습니다. 여의치 않자 이런 기습 사과를 기획한 듯합니다. 교육부는 지난해 법원에서 출제 오류가 인정되고 닷새 뒤에야 처음으로 사과의 뜻을 내비쳤습니다. 대입을 담당하는 국장이 온라인 브리핑에 나와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유 부총리 사과 메시지를 예상했던 기자들은 ‘유 부총리의 사과인가’ ‘유 부총리는 직접 사과하는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졌고 담당 국장은 “송구스럽단 말씀 드린다”는 말만 반복하며 답변을 피했습니다.

브리핑 이후에도 ‘사과의 격’에 대한 질문이 계속되자 교육부는 마지못해 “오늘 브리핑 시 언급된 ‘송구스럽다’는 발표는 교육부 입장이며 교육부 장관의 뜻이 반영된 것”이라는 메시지를 발송했습니다. 그러고는 부총리가 사과하는 별도의 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 자리가 해가 바뀌고 청소년 방역 패스 등으로 이목이 쏠려 있는 새해 업무계획 발표장에서 만들어질 줄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①코로나19를 핑계로 현장의 돌발 질문을 막는다. ②질문을 아예 못하게 하면 뒷말이 나오니 메신저로 받는다. ③시간 제약을 명분으로 질문을 취사선택한다. ④예상대로 생명과학Ⅱ 오류 질문이 나왔으니 사과 메시지를 던지고 유 부총리는 빠진다. 이런 각본 아니었을까요. 어쨌든 이날 사과는 주목을 받지 못했고 유 부총리는 크게 면을 구기지 않아도 됐습니다. 현장에서 질문을 막은 이유가 유 부총리 거취에 대한 질문을 피하기 위함이란 해석도 있습니다. 부총리 사퇴 시점과 경기도지사 출마 여부를 물으려고 브리핑에 참석한 이도 있었습니다.

당장은 교육부의 ‘유은혜 지키기’가 성공한 듯 보입니다. 하지만 올해 대입을 치른 수험생들은 어떨까요. 이제 막 성인이 됐거나 곧 성인이 되는 학생들에게 유 부총리는 어떤 어른, 어떤 리더일까요. 교육부와 평가원은 “문항의 조건이 완전하지 않더라도 평가문항으로 타당성은 유지된다”며 생명과학Ⅱ 문항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복수의 학회로부터 자문까지 거쳤다며 뭉개로 넘어가려 했죠. 수험생들은 “문제가 잘못됐어도 답만 맞히면 된다는 결과 중심주의적 사고”라며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이제 갓 성인의 문턱에 선 학생들이 소송을 위해 무료 변호사를 수소문하고 국내·외 석학들에게 질의서를 보내며 전방위로 뛰었습니다. 숨 가쁜 대입 일정 와중에 시간을 쪼개야 했죠. 이런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부와 평가원은 대형 로펌을 앞세워 대응했습니다. 이 싸움의 정점에 유 부총리가 있었다는 점을 부인하긴 어렵습니다. “승소한 수험생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우리가 잘못 생각했다. 앞으로도 불합리한 일에 굴하지 않는 당당한 어른으로 성장해 우리 사회를 지탱해 달라.” 이상한 브리핑에서 하는 날림 사과 말고 이런 메시지였으면 어땠을까요. 최소한 비겁한 어른들로 비치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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