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방파제서 발사 5초만에 추락..'KAIST로켓' 실패이유 셋 [최준호의 사이언스&]

최준호 2022. 1. 18.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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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50주년 로켓’ 실패한 이유 3가지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논설위원
세밑인 지난달 29일 오전 제주도 서쪽 끝 한경면 용수리 해안가에 초속 11m가 넘는 세찬 바람이 불었다. 작은 방파제 안으로 조그만 양식장을 끼고 있는 어촌마을에 외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국수가게 앞마당에 가로 4m, 세로 7m 액정표시장치(LED)를 배경으로 한 무대가 설치되고, 회색 플라스틱 의자 30여 개가 마련됐다. ‘KAIST 개교 50주년 기념 민간과학로켓 시험발사 행사’가 시작됐다. KAIST 항공우주공학과 4학년 학생인 신동윤(25)씨가 창업한 우주로켓 스타트업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와 KAIST가 함께 만든 과학로켓 블루웨일 0.1을 쏘아 올리는 날이다.

행사 진행을 맡은 사회자의 소개에 맞춰 제주도지사 대행과 도의회 의장이 축사를 이어갔다. 오전 11시 53분. 의장에 이어 KAIST 부총장의 축사가 예정됐지만, 사회자가 행사 진행을 중단하고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5, 4, 3, 2, 1, 발사.” 행사장에서 300여m 떨어진 바닷가 폭 3m 방파제에 마련된 발사장에서 길이 3.2m, 지름 19㎝, 무게 51㎏의 소형 액체로켓이 솟아올랐다. 방파제(발사장)에서 100m 떨어진 해녀 대합실에 임시로 마련된 통제실에선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연구원 5명이 모니터로 로켓 궤적을 쫓기 시작했다.

「 제주 용수리 초속 평균 12.5m 강풍
항공량 많아 발사시간 20분만 허가
전국 어디도 발사장 허락 안 해줘
악조건속 도전 스타트업 결국 좌절

‘와~’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의 함성도 잠시. 20m가량 치솟던 로켓이 갑자기 90도로 꺾이더니 수면과 평행으로 1㎞가량 비틀거리며 날다가 바다로 떨어졌다. 비행시간은 단 5초. 발사 실패였다. 애초 블루웨일 0.1은 최소 5㎞ 상공까지 올라갈 예정이었다.

애초부터 실패 가능성 컸던 시험발사

과학로켓 블루웨일 0.1이 지난달 29일 제주 해안가에서 발사를 앞두고 있다. [사진 KAIST]

신동윤 대표는 담담한 표정으로 무대로 올라와 “오늘 로켓발사는 예상한 대로 날아가지 못했다. 발사 순간 갑작스런 돌풍이 불어왔고, 로켓이 바람 부는 방향으로 기울어지고 경로를 이탈했다. 내장된 자동비행 종단 시스템이 엔진을 정지시켜 바다에 착수시켰다”고 말했다.

왜 우주로켓을 개발한다는 기업이 여객기 고도보다 낮게 올라가는 과학로켓 하나도 제대로 쏘아 올리지 못했을까. 사실 이 날 발사는 최악의 조건 속에 진행됐다. 애초부터 실패할 가능성이 컸다는 얘기다.

첫째는 바람과 VIP. 제주기상청에 따르면 12월 29일 용수리 일대 하루 평균 평속은 초속 12.5m로, 제주도 12월 평균 풍속(초속 4.6m)보다 훨씬 강했다. 지난달 29일 용수리는 바람 많은 제주에서도 유달리 바람이 센 날이었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측은 전날 “바람이 세게 불어서 발사를 연기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KAIST 50주년 행사의 하나인 데다 제주도와 KAIST의 고위 인사들까지 참석한 자리여서 발사를 연기하기 어려웠다는 게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측의 해명이었다.

“캐나다에 있었으면 문제 안돼…”

둘째 원인은 공역 허가 조건이다. 이날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와 KAIST가 제주항공청으로부터 발사허가를 받은 시간은 오전 11시 50분부터 20분간에 불과했다. 내빈 축사가 길어진 탓에 실제로 쓸 수 있었던 시간은 15분 남짓. 이 시간 안에 로켓이 올라가지 못하면, 공역허가를 다시 받아야 한다. 29일 악조건 속에서도 발사를 강행했던 원인 중 하나다. 제주항공청에 따르면 용수리는 제주공항 활주로와 일직선상에 있고 항공 교통량이 많아 우주로켓 발사장으로 부적합한 지역이다. 제주항공청 관계자는 “지역주민들이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측에게 우호적이고, 행사가 일회성이라는 판단 하에 공역허가를 내어 준 것”이라고 말했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의 과학로켓 발사는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행사 보름 전인 12월 5일 새벽에도 용수리에서 같은 규격의 과학로켓을 쏘아 올렸다. 당시는 밤이라 운항 중인 비행기가 없어 공역허가를 받기에 큰 어려움이 없었고, 바람도 심하지 않았다. 로켓은 목표 높이까지 성공적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한밤중 비공개 발사에는 성공하고, 정작 낮에 공개행사로 진행된 정식 시험발사에는 실패한 것이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는 올해 안으로 고도 200~300㎞ 이상 올라가는 소형 인공위성 발사체 블루웨일 1.0을 시험 발사할 계획이다. 하지만 발사장 확보는 여전히 미지수다. 정식 우주발사체를 쏘아 올리기에는 제주 용수리가 그다지 적합하지 못하다. 정부가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옆에 건설을 계획하고 있는 민간우주발사장은 오는 2025년에야 완공된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가 10만210㎢ 대한민국 영토 중 왜 하필 바람 많고, 하늘 비좁은 제주 용수리를 발사장으로 골랐을까. 누리호가 올라간 고흥나로우주센터뿐 아니라, 전국 어느 곳에서도 학부 4년생이 세운 우주로켓 스타트업에 발사장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주 용수리도 그나마 제주도의회 의장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용수리가 고향인 의장이 동네 주민을 설득한 덕분이었다.

“캐나다에서 창업했으면, 발사장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래도 저는 고국이 좋아서 한국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후회는 없습니다.” 신동윤 대표가 반어법 같은 한마디를 털어놓았다. 그는 캐나다에서 중·고교와 대학에 다니며 로켓을 꿈꾸다 2016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제주에서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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