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택-정현 잇는 권순우, "호주오픈 첫 승 간절했다"
한국 테니스의 간판 권순우(25·당진시청)가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호주오픈에서 데뷔 후 첫 승리를 거뒀다. 세계 54위 권순우는 17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대회 첫날 남자 단식 1회전에서 홀게르 루네(99위·덴마크)와 풀세트 접전 끝에 세트스코어 3-2(3-6, 6-4, 3-6, 6-3, 6-2)로 역전승했다.
권순우가 테니스 4대 메이저대회(윔블던·프랑스오픈·US오픈·호주오픈) 2회전에 오른 것은 2020년 US오픈, 지난해 프랑스오픈과 윔블던에 이어 네 번째다. 호주오픈에서는 지난해까지 세 차례 본선에 나섰지만, 모두 1회전에서 탈락했다. 네 번째 도전인 올해 마침내 첫 관문을 통과해 4개 대회 모두 승리를 기록하게 됐다.
「 용어사전 > 테니스 4대 메이저대회
국제테니스연맹(ITF)이 관장하는 윔블던(전영 오픈), US 오픈, 프랑스 오픈, 호주 오픈 대회를 테니스 4대 메이저 대회라 부른다. 한 해에 4개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는 일은 '그랜드 슬램'이라고 표현한다. 2022년 호주 오픈은 1월 17~30일, 프랑스 오픈은 5월 22일~6월 5일, 윔블던은 6월 27일~7월 10일, US 오픈은 8월 29일~9월 11일 각각 열린다.
」
권순우는 앞서 세계에 이름을 날린 이형택(46)과 정현(26)의 계보를 성실하게 잇고 있다. 이형택은 한국 테니스 선수 최초로 메이저대회 16강(2007년 US오픈)에 오른 선구자다. 2004·2005년 프랑스오픈과 2004년 US 오픈 3회전 진출도 해냈다. 그가 2007년 8월 기록한 세계 36위는 이후 11년간 한국 선수 역대 최고 순위로 남아 있었다.
그 기록을 깬 후계자가 정현이다. 그는 2018년 호주오픈 4강에 진출하면서 한국인 선수 역대 최고 성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그해 4월엔 세계 랭킹 19위에 올라 아시아 남자선수로는 역대 네 번째로 세계 20위 안에 진입했다.
권순우도 그 고지를 향해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다. 지난해 6월 프랑스오픈에서 데뷔 후 처음으로 메이저대회 32강(3회전)에 진출했다. 한국 남자 선수로는 이형택과 정현에 이어 세 번째였다. 이 성적을 발판 삼아 도쿄올림픽에 출전했고, 11월에는 개인 최고 순위인 세계 52위를 기록했다. 이어 새해 첫 숙제인 호주오픈에서 끝내 첫 관문을 통과했다.
권순우의 호주오픈 첫 상대였던 루네는 지난해 US오픈 1회전에서 세계 1위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를 상대로 한 세트를 따내 유명해진 19세 신예 선수다. 권순우는 지난해 4월 안달루시아오픈 1회전에서 루네를 한 차례 만나 2-1로 이겼는데, 막판까지 어려운 게임을 했다. 재대결인 이날 호주오픈 1회전도 3시간 5분에 걸친 풀세트 혈전이었다. 1세트를 내준 대신 2세트를 가져온 권순우는 3세트에서 다시 르네의 강력한 서브와 기민한 네트플레이에 밀려 범실을 쏟아냈다.
흐름이 다시 바뀐 건 1-2로 위기에 놓인 4세트였다. 권순우는 다리 통증으로 움직임이 급격하게 느려진 르네를 상대로 잇따라 중요한 점수를 따내 4세트를 잡았다. 이어진 5세트에서도 2-2 상황에서 천금 같은 브레이크를 해내면서 기나긴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태극기를 들고 멜버른 파크를 찾은 호주 교민들은 "대~한민국!"과 권순우의 이름을 연호하며 축하와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권순우는 "그동안 호주오픈에서만 승리가 없어 경기 전부터 간절하게 이기고 싶었다. 그만큼 긴장과 부담도 컸다. 첫 승을 해서 굉장히 기쁘다"며 활짝 웃었다. 또 "상대 선수가 초반에 워낙 잘했고, 나는 좋은 컨디션이 아니었다. 경기 후반 (상대가)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끝까지 버텼다"고 털어놨다.
권순우는 19일 세계 14위 데니스 샤포발로프(캐나다)와 2회전에서 맞붙는다. 2020년 US오픈 2회전에서 만나 3시간 42분 혈투 끝에 1-3으로 석패한 상대다. 권순우는 "샤포발로프와는 2년 전 큰 경기에서 만났고, 종종 연습경기 상대도 했다.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부담이 크지 않다"고 했다. 또 "이번 호주오픈의 목표는 '첫 승'이었다. 목표를 이미 이뤘기에 남은 일정은 부담 없이 임할 수 있다. 더 좋은 경기를 보여드리는 걸 목표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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