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옆 쪽방촌, 여전히 그곳에서 '사람'이 있습니다

배여진 2022. 1. 1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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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를 읽고

[배여진]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 후마니타스
 
서울에도 양동이라는 동네가 있는 줄 몰랐다. 내가 알고 있는 '양동'은 백종원씨가 진행한 프로그램에 소개되었던 '양동통닭'이 있는 전라남도 광주의 양동 한 곳 뿐이었다. 서울의 '양동'은 1980년에 서울시 행정구역 개편과 함께 남대문로5가동에 편입되면서 폐지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름만 행정적으로 없어졌을 뿐이지 서울역 맞은편에 위치한 양동은 지금도 가난한 이들의 삶터로서 자리 잡고 있다.

홈리스행동의 이동현 활동가는 1998년 IMF 경제 위기를 거치며 양동은 도시 빈민 최후의 주거지인 '쪽방'으로 기능하기 시작했고, 법정동이 변하고, 무허가 하숙촌에서 쪽방으로 지칭이 변했지만 양동에 고인 것은 여전히 가난이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이 동네에도 재개발 바람이 불어 주민들이 쫓겨나가고 있어 이곳 주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책이 바로 책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이다.

다른 듯 닮은 삶

이 책은 양동 주민 중 화자로 참여한 여덟 명의 삶의 궤적을 훑는다. 여덟 명 모두 각기 다른 삶을 살아왔건만 삶의 큰 줄기가 너무나 닮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관통하는 가난은 지독하게도 질기고, 끈질기다. 이 책의 화자들은 대부분 태어날 때부터 가난했다. 쪽방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렇다고 한다.

일곱 살부터 남의집살이를 하고, 공부를 제대로 안 한다는 이유로 십리를 걸어 다니던 국민학교를 퇴학당한 이석기. 그는 여전히 한글을 잘 알지 못한다. 열여덟에 무작정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려 양동에 왔다는 문형국. 중국집 그릇 설거지에서 시작해 중국집 사장님도 됐었지만 IMF가 터져 비정규 일자리를 전전하다 오랜 중국집 노동 끝에 얻은 류머티즘에 수급자가 되었다.

여덟 명의 화자 중 유일하게 당시에는 흔하지 않던 기름보일러를 가진 '살 만 했'던 집에서 태어난 김강태. 외항선을 타며 젊은 시절을 보낸 그는 아버지의 죽음, 가족의 배신, IMF를 연이어 맞이하며 서울역으로 올라오게 되었다고 한다. 양계장, 돼지농장 등에서 일을 했고, 브로커에 속아 정신병원에도 갇혔었다.

전라남도 목포에서 8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는 이양순. 학교를 안 다녀 글씨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그는 목포에서 9년간의 결혼생활 중 가정폭력에 못 이겨 서울로 도망쳤다. 서울역 지하도는 그녀가 서울에서 처음 머물던 곳이다. 남대문 시장이고 어디고 돌아다니며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고, 자고 했던 그는 서울역에서 돌아다니다가 지금의 보호자인 '우리 아저씨'를 만나 양동으로 왔다고 한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집 나간 엄마를 찾아 대전에서 서울까지 쓰레빠를 신고 일주일동안 걸어왔다는 장영철. 그를 발견한 파출소 경찰이 먹여주고 재워준다고 해서 따라간 아동보호소에서 살다 나와 근로 재건대, 동네머슴, 노가다를 전전하다 서울역으로 올라왔다고 한다.

충북 시골 초가집에서 살다 비둘기호를 타고 서울로 올라온 김기철은 젖소농장, 양계장, 새우잡이배, 구내식당, 연탄배달, 엿장사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그러다 서울역에서 아내를 만나고 딸 은영을 낳는다. 현재 아내는 정신병원, 딸은 장애인 시설에 있다고 한다. 딸 은영을 다시 데려와 함께 사는 것이 꿈이다.

권용수는 만으로 여덟 살의 나이에 배고픔을 참지 못해 무임승차한 기차를 끝까지 타고 와 청량리에서 내렸다. 길에서 자던 자신을 양동 쪽방으로 데려온 풀빵 굽는 아주머니는 장모님이 되었고, 사우디와 이집트를 다녀오며 일을 했다. 돈에 밝은 장모 밑에서 일을 배우며 생긴 경제관념과 많은 세상 경험으로 여러 이해관계에 밝다. 현재는 성실하게 폐지와 고물을 수집하여 내다 팔며 살아간다. 어머니와 함께 산 50년간 일을 한 적이 없는 강성호. 그는 어머니가 사고로 사망한 후부터 동네 공원에서 노숙을 하기 시작해 서울역으로 왔다. 오랜 노숙생활과 술로 인해 몸이 성치 않다.

화자 여덟 명의 삶의 궤적을 간단히 소개한 이유는 노숙인, 가난, 쪽방 이런 단어로만 간단히 그들을 소개하기에는 각각 인생의 서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한 사람의 삶을 간단한 단어 하나로 치환해버리고는 한다. 특히 빈곤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말이다. 유명한 기업인이나 정치인의 삶의 서사가 화려하게 포장되는 것과 대비된다. 그렇기에 쪽방촌 주민의 목소리를 담아낸 이 책의 가치는 매우 특별하다. 나이트클럽의 화려한 조명은 아니어도 은은한 가로등이 간혹 깜빡깜빡이지만 계속 불이 꺼지지 않고 켜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구체적인 빈곤의 얼굴

기록팀으로 참여한 최현숙은 나가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부가 그렇듯 빈곤 역시 구체적인 삶이자 내력이며 외연만이 아닌 내면의 어떠함이다".(p312)

한낱 게으름, 운명, 어쩔 수 없는 일 정도로 자위하며 모른척 하는 빈곤에 대한 구체적인 삶의 내력을 당사자의 입을 통해 가감없이 드러낸다. 가난의 얼굴, 빈곤의 얼굴을 말이다.

십수년 전, 술 몇 잔 걸치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이었다. 여성 노숙인과 그 옆에는 아주 어린 두 아이들이 박스를 깔고 그 위에서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혹여 그들의 마음이 다칠까 싶어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못 본 척 스쳐 지나왔다. 내 지갑 안에 있는 돈을 모조리 꺼내 그들에게 건내야 할지, 하루이틀이라도 따뜻한 방에서 머물 수 있는 숙소를 구해줘야 할지 집에 오는 내내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얄팍한 나의 동정이 담긴 행동이 그들 마음에 생채기를 남기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선뜻 나서질 못했다. 시간이 흘러 그 여성처럼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의 나는 지금도 내가 그 때 어떻게 했어야 하는게 옳았을지 여전히 모르겠다.

기록팀 최현숙의 말마따나 누구도 자신의 출생조건을 선택할 수 없고, 그러므로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나는가에 따라 생애 많은 것들이 이미 결정되는 사회는 근본적으로 불공정하다는 것에 동의한다. 나는 그 다음 질문에서 막힌다. "넌 무엇을 할 수 있니?"

그저 운이 좋아 적당한 경제력을 가진 부모를 만나 적당하게 평범한 삶을 살다, 적당히 사회문제에도 눈을 돌리고 동시에 적당히 내 실속도 챙기며 적당히 비겁하게 살아가고 있는 내게 이 책은 회초리와 어깨 위에 올려질 벽돌 같다.

십수년 전 바닥에 깔린 박스를 놀이매트 삼아, 이불 삼아 앉아 있던 아이 둘은 지금 어떻게 자랐을까. 지금은 10대 후반이나 20대 정도 됐을 것 같다. 잠시나마 그 가족의 안녕을 빌어본다. 지금 이 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다. 이렇게 또 적당히 비겁한 하루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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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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