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를 만난 사람들] 아픈 시어른들 섬기며 지쳐가던 인생, 주님 사랑에 힘들었던 마음 눈 녹듯 녹아

2022. 1. 17.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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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한마음교회 간증 스토리


아버지는 내가 첫 발령을 받았을 때 추운 날씨에 오토바이로 2시간을 달려 나의 직장까지 오셔서 내가 출근을 잘 했는지 내 차만 보고 가실 정도로 나를 무척 사랑하셨다. 그런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시신을 붙잡고 울어도 울어도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다. 어려서부터 열심히 교회에 다녔지만 ‘내가 아버지처럼 된다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내가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있는 건가?’ 심각하게 고민할 때, 목사님의 ‘예수님의 부활로 모든 성경말씀을 믿을 수 있다.’는 말씀이 생각나 각종 사전과 서적, 자료를 뒤지며 부활의 증거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예수님을 배신했던 제자들이 무엇 때문에 순교를 했을까?’ 그 답을 찾다가 놀라운 사실 앞에 모든 생각이 멈추었다. ‘아!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봤구나!’ 모든 의문이 한순간에 풀리며 예수님을 너무 만나고 싶어 간절한 마음으로 엎드렸다. 그때, ‘성경대로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다’는 말씀으로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고,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이 선명해졌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는 말씀 앞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모셨다.

교회에서 만난 남편은 결혼 전에 세 가지 조건을 얘기했다. ‘벌어놓은 돈이 없다,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 하고 아버지는 많이 아프다, 영원한 것에 상급 쌓는 삶을 살고 싶다’는 거였다. 망설임 없이 결정하고 시골교회에서 달랑 7만5000원짜리 커플링을 주고받으며 결혼을 했다. 그리고 경제 사정으로 4대가 한집에 모여 살며 어른들을 섬겼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시아버님은 세 살 정도의 지능 수준에 만성 호흡기질환, 언어장애 그리고 반신마비였고, 거동을 못해 모든 것을 방에서 해결하는 99세의 시외할머니도 계셨다. 임신으로 입덧이 심한데 심한 냄새로 수시로 몰래 헛구역질을 했고, 직장에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대식구의 식사를 책임져야 했다. 안방은 아버님, 거실은 어머니, 작은 방에 시외할머니, 아이와 우리 셋은 부엌 옆 작은방을 썼다. 식사 때에는 할머니, 아버님, 그리고 우리 밥상을 모두 따로 차렸다.

어느 날 예배 후 혼자 남아 ‘아버지!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 것도 알고, 부모님을 공경해야 하는 것도 알지만, 너무 힘들고 마음에서 순종이 잘 안 돼요.’ 하며 한참을 말없이 울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명희야! 내가 너의 모든 상황을 다 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네 시아버지도 내가 사랑하는 영혼이니라.’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힘들었던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리고 평온함이 밀려오며 감사의 찬양이 나왔다.

시아버님은 내가 퇴근 무렵 아파트 입구에 앉아 나를 기다리셨다. 멀리서 손짓을 하며 언어장애에도 이마에 손을 올리고 ‘충성’하며 웃으신다. 어느 날 손을 꼭 잡고 “아버님! 며느리가 좋아요?” 했더니 엄지손가락을 들며 “최고야! 최고!” 하시며 활짝 웃으셨고 복음도 잘 받아 예수님도 영접했다. 99세의 시외할머니도 말씀을 반복해 읽어드려 예수님을 영접하신 후에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 두 분 다 잘 주무셨소? 나도 잘 잤소. 예수씨가 너무 고마워! 나 같은 것을 위해 죽어주다니, 천국 가는 비행기 표도 주고 고마워이!” 하셨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이 내 마음에 확실히 있어. 이건 내가 알아. 너도 하나님께 잘 해라. 우리 손부 고맙데이.” 하시며 밤낮으로 기도하다 101세에 천국 비행기를 타셨다.

우리에게 신혼생활은 아예 없었다. 그러나 늘 알뜰히 아끼며 도와주는 남편이 결혼해줘서 고맙다고, 당신을 만난 것은 내 인생의 최고의 선택이라고 할 때는 신혼생활보다 더 달콤했다. 대가족이었지만 고부간 갈등 없이 말씀에 순종하며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무척 감사했고, 아무도 상황을 몰라줘도 주님께서 안다 하시니 늘 기쁨이 넘쳤다.

몇 년 전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일본 여행을 갔었다. 일정에 따라 족욕을 하다가 양쪽 엄지발가락 연조직염이 생겼다. 뼈가 썩어 들어가는 견딜 수 없는 통증에 잠도 이루지 못하고 한발자국도 걷지 못했다. 발톱뿌리에서 농후한 고름이 계속 나올 때는 낙심도 했지만, 채찍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다는 말씀을 붙잡고 기도했다. 세 번의 힘든 수술로 발톱을 제거하고 고름을 긁어내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2년 이상 겪었다. 그럴 때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감당하신 예수님이 생각나 참 많이 울었다. 힘든 일에 삶이 흔들리고 낙심이 찾아 올 때도 많지만 주인 되신 예수님이 계셔 다시 힘을 얻는다. 나의 느낌이나 감정이 아니라 부활의 표적을 통해서 성경말씀을 믿게 되니 흔들릴 때도, 낙심이 찾아 올 때도, 힘든 일이 생겼을 때에도 예수님의 부활로 다시 벌떡 일어서게 된다. 나머지 삶 모두를 예수님이 주신 사명만 생각하며 가족들을 주님처럼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다.

황명희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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