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가장 인상 깊게 본 인터넷 콘텐츠는? 솔직한 와이파이 독후감
부자를 체험하는 비용
영국 400대 부자 사업가 켈리 최 유튜브 영상
부읽남, 너나위, 신사임당, 렘군, 얼음공장, 김작가… 최근 나의 유튜브 구독 목록이다. 이 명단이 친숙하다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나처럼 부의 화신이 돼보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일지 모른다. 사실 나는 동학개미 그 엇비슷한 것이다. 동학개미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고 주춤대는 까닭은, 그런 개미 짓조차 그리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하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나는 몇 번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IMF 때야 어렸다 치고 사스·메르스 위기 때도, 이번 코로나19의 대공황 시기에도 뒷북을 쳤다. 나는 늘 상투를 잡는다. 주식을 꼭 고점에서 산다는 뜻이다. 근로소득과 투자 수익 간의 구분도 없고, 벌면 그저 좋다고 쓰고, 쓰면 또 메꾸기 위해 번다. 그게 세금 꼬박꼬박 내는 시민으로서 성실히 잘 사는 길인 줄 알았다. 매일 밤 침대에 파묻혀 저들의 유튜브를 보며 금융 문맹이던 내가 나름 각성됐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역시 4차산업 혁명기의 인간은 거시 경제에 대해 알고 현금의 유동성 흐름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군’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 주식 계좌 비밀번호도 가물거리는 형편에 메타버스와 2차전지라는 단어를 가슴에 새겼다. 예전 나의 유튜브 목록은 마치 계란찜 같은 무드였다. 좋아하는 목사님의 설교, 명상과 요가, 오은영 박사의 클립, 수면에 도움을 주는 모닥불 타는 소리…. 그런데 불과 한두 달 사이에 나의 목록이 이렇게 전투적으로 바뀌었다. 이게 다 코로나19 때문이고, 2022년이 도래했기 때문이며, 그러니까 나의 거대한 불안 때문이다. 영화업계 프리랜서인 나는 2020년 초부터 퍼지기 시작한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받았다. 내가 일하는 업계는 거의 셧다운 수준에 가까웠다. 덩달아 일감이 줄어들었고, ‘이것도 지나가리라, 조금 있으면 괜찮아지겠지’ 하는 낙관을 빙자한 회피로 어찌어찌 1년을 버텼다. 그런데 2021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20년보다는 일이 조금 늘었지만, 팬데믹 이전의 호황으로 회복되기란 도무지 요원해 보였다. 팬데믹 시대가 열리기 직전 나는 프리랜서를 선언할 당시 설정한 수익 달성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이런 추세라면 내년에는 비로소 내가 원하는 금액을 찍어볼 수 있겠다며 의지를 다졌지만, 그 그래프가 맥없이 추락하는 광경을 대책 없이 바라만 보았다. 그것은 마치 나의 주식 그래프 같았다. 몸과 마음에 덕지덕지 붙은 군살과 우울, 무기력이 자꾸만 나를 중력처럼 끌어내렸다. 그런데 2022년이라니, 새해라니. 누구 맘대로! 갑자기 무섭고 서러웠다. ‘왜 나는 40대 초반이 된 지금까지 경제적 자유를 달성하지 못했을까. 그동안 번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일단 마켓컬리와 쿠팡이츠 앱부터 지울까’ 마음속에서 대지진과 홍수가 났다. “푼돈을 우습게 보지 말라”, “레버리지를 적극 이용하라”, “전세 살지 말라”, “갭 투자하라”, “지방 아파트에 투자하라”, “경매 물건을 노려라”…. 유튜브 고수들은 구독자들에게 나름의 방향성과 노하우를 전수하며 ‘야나두’ 정신을 설파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내게 친히 이런 고급 정보를, 그것도 무료로 알려주시다니. 너무도 감사한 나머지 유튜브 프리미엄도 쓰지 않고 광고 건너뛰기의 시간을 견디던 내가 채널의 유료 멤버십 등록까지 했다. 안다. 나는 좀 호구 같은 스타일이다. 그런데 그것도 알까? 불안은 더 큰 불안을 낳는다는 사실을. 경제적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고 싶다고 결심한 나는 매일 밤 전국 지도를 펼쳐 아파트 시세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영 만족스럽지 않아 경매 사이트에 접속해 아파트, 상가, 점포 나아가 창고, 도로까지 검색하고 있었다. 생전 가본 적도 없는 동네의 낡은 도로를 구글 맵을 통해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보며 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날 밤 오랜만에 명상을 했다. ‘역시 사람은 생긴 대로 살아야 하는 걸까’, ‘안 하던 짓을 하면 더 크게 망하는 게 아닐까’, ‘어쩌면 이번엔 패가망신까지도 가능할지 몰라’ 하는 불안이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30대에 인생 조져지는 7가지 테크트리’라는 영상 때문에 입문하게 된 팩트 폭행 전문 유튜버 김알파카의 말이 떠올랐다. “유튜브에서 100억 벌었다고 떠드는 사람들 말을 다 믿냐?” 더더욱 불안해져 구독을 취소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영국 400대 부자 중 한 명이라는 켈리 최의 영상을 접했다. 그는 진정 자기 계발 분야의 위인 같은 말을 했다. “죽도록 열심히 한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성공하는 사람들은 결단을 한다.” 그러면서 본인에게는 4가지의 핵심 가치가 있다고 했다. 배움-성장-도전-성공. 핵심 가치라. 글쎄, 메타버스나 2차전지보다도 더 어색하게 느껴지는 단어였다. ‘정말 성공의 세계란 나와는 멀군’ 하며 영상을 끄려는데 때마침 그가 가슴에 콕 박히는 얘기를 꺼냈다.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서 꼭 한 번은 최고점까지 가봐라.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최고로 잘하는 레벨이 100이고, 일반적 레벨이 70이라고 치자. 70에서 100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지 않다.” 여기서부터 왠지 마음 한구석이 쿡쿡 찔리기 시작했다. “당신이 일하는 분야에서 70으로 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텐데,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70까지 당도하는 데 또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한 분야에서 최대치를 달성해본 사람은 다른 분야에서도 그렇게 될 확률이 높다. 성공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는데, 레벨 100과 70의 차이는 겨우 1퍼센트 정도라는 것이다.” 켈리 최는 이 1퍼센트의 차이가 무엇인지 면밀히 분석해보고, 자신의 일을 100의 경지까지 끌어 올려보라고 했다. 이 얘길 듣는데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도망치려 했구나. 시험에서 50점 받던 학생이 20점 높이는 건 쉬울지 몰라도, 87점 맞던 학생이 95점 정도로 상승하긴 어렵다. 낮은 연차일 때는 성큼성큼 달려가듯 역량을 높일 수 있지만,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그때부터는 한 계단 오르기도 천근만근이다. 그걸 너무 잘 알기에, 그 과정이 고통스럽고 귀찮으니까 나는 코로나19를 핑계로, 현실 문제를 핑계로 다른 세계로 잠시 도망치려고 했던 것이다. 여기까지가 내 한계라고 자기최면을 걸면서. 갑자기 부의 화신이 된 것처럼 스스로를 속이면서. 이것은 어린 마음이다. 나는 부자가 되기 전 어른부터 돼야 할 것 같다.
덕질 Must Go On
영화 〈성덕〉에 대한 트윗
내 트위터는 오직 덕생의, 덕생에 의한, 덕생을 위한 계정으로만 굴러가고 있다. 2020년 여름, 한 보이 그룹으로의 입덕과 동시에 개설한 이 계정에는 1년 사이 1만 개가 넘는 트윗이 쌓여버렸다. 나는 트위터를 덕질 일기장처럼 쓰는 투머치 토커 덕후라 매일 겸허한 마음으로 타임라인 위의 숫자를 바라본다. 가끔은 수치를 모르고 쓴 트윗을 깔끔하게 밀어준다는 청소 앱이 떠오를 때가 있지만 당최 무엇을, 어디서부터 지워야 한단 말인가. 무언가에 순수하게 기뻐하고 순진하게 감탄하는 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다면, 좀 짓궂은 마음일까? 솔직히 말하면 ‘최애’로부터 빚어진 날것의 마음들이 그다지 부끄럽지 않다. 쿨해 보이려 애쓰지 않아도 세상만사에 무감해지기 쉬운 30대에도 내 안에 무구한 사랑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쑥스러운 한편, 조금은 반갑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의 근 1년을 돌아보면 코로나 시대에 입덕한 덕후라는 슬픔도 잠시, 좋아하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다는 듯 ‘늦덕’의 기쁨을 누리며 지낸 기억으로 가득하다. 몇 번이고 새로 고침해도 피드가 바뀌지 않을 만큼 트위터 지박령이 되고, 온라인 콘서트란 콘서트는 죄다 결제하면서. 응원봉과 맥주 캔을 양손에 나란히 쥔 채 지금이야말로 ‘덕질의 호시절’일지 모르겠다고 속 편한 감상을 이어갔더랬다. 2021년 10월의 어느 날도 평소처럼 따뜻한 변주로 채워질 하루였다. 그런데 너와 나의 최애가 조화롭게 섞이는 타임라인 사이로 낯선 트윗 하나가 불쑥 끼어들었다. 트친 중 누군가 ‘좋아요’를 누른 트윗이 내 피드로 넘어온 것이었다. [오세연 감독(22세)은 ‘성덕’이었다. 팬 사인회에 한복을 입고 나타나 스타의 눈에 띄더니, 급기야 그와 함께 TV에 출연해 직접 러브레터를 낭독하는 영광까지 누린 명실상부 ‘성공한 덕후’였다. 문제는 그가 사랑한 스타가 정준영이라는 데 있다.] 리트윗만 2천 회가 넘는 해당 트윗은 2021년 부산국제영화제를 뜨겁게 달군 영화 〈성덕〉의 오세연 감독 인터뷰를 소개하고 있었다. 위아래로 내 최애의 밀린 소식이 한가득이었는데도 ‘아이구… 그것 참 안됐네’ 하고 폴짝, 다시 나만의 꽃밭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2019년, 이른바 ‘버닝썬 게이트’로 줄줄이 사회면에 등장한 남성 연예인들의 극악무도한 성범죄(와 허탈하리만치 경미한 처벌로 일단락된 사건)에 대한 분노가 다시금 끓어서이기도 했지만, 더 솔직하게는 나도 누군가의 팬이었음을 지독하게 후회했던 어린 날이 떠올라서였다. 그리하여 글로 먼저 만난 영화 〈성덕〉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과거 어느 스타의 덕후였던 시절을 뼈저리게 반추하며 탈덕의 과정과 먼 미래에 회복될 덕심의 가능성을 담은 다큐멘터리라고. “팬들은 K팝의 가장 큰 소비자지만, 1020세대 젊은 여성들로 주로 구성됐다는 이유로 늘 무시를 받는 것 같아요. 〈성덕〉을 통해 팬들 개개인이 얼마나 복합적인 감정과 고민을 갖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우리는 그렇게 단편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오 감독의 인터뷰를 정독하며 더는 추억이라 애틋하게 부를 수도, 기억이라 덤덤하게 회상하기에도 애매모호한 채 내 긴 덕생에 상흔으로 남은 한 시절을 곱씹었다.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장면 속에 몇몇의 ‘그’를 대신해서 부끄러워하는 내가 보였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안다. 수치와 후회, 반성과 성찰은 팬이 아닌 그들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임을. 덕생이 부서진 덕후에게 필요한 게 있다면 현실 부정과 외면이 아니라 제 몫의 애도를 이어가며 고통 속에 충분히 머무르는 용기일 것이다. 오 감독과 그의 친구들이 그러했듯 말이다. 이 내적 친밀감을 어쩌나. 가슴 한구석이 뻐근해졌다. 나와 같은 덕후를 향한 일종의 생존 신고 같은 신호였다. 이 인터뷰를 인용한 계정주들의 트윗도 살펴봤다. 기사를 읽은 뒤 눈물을 줄줄 흘렸다는 탄식의 공감은 물론, 영화의 정식 개봉을 간절히 염원한다는 응원이 이어지는 가운데 ‘은근히 혼자가 아닌 폐허가 된 팬들’이라는 말을 오래 들여다봤다. ‘폐허’와 ‘팬’이 짝을 이루는 문장이 참 씁쓸했다. 나는 덕생의 한 시절을 부정하는 것이 곧 덕후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 시절을 애써 지워버릴 필요조차 없을지 모른다. 추억의 일부는 오롯이 내 몫이기도 하니까. 폐허가 된 덕생 속에서도 오직 나만이 차지할 수 있는 순간이 있음을 확인할 때, 우리는 기꺼이 새로운 덕질을 희망할 수 있지 않을까? 오 감독은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덕질은 결과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해주는 것”이라고. 그는 최애의 음악을 들으며 가족 없이 홀로 보내던 밤의 무서움을 견뎠다. 최애에게 쓴 편지는 겉으로는 구구절절한 덕심을 고백하는 글 같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지금 자신의 고민은 무엇인지, 미래에 무엇이 되고 싶은지 확인하는 과정과 맞닿아 있었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고 했던가. 나는 이 말을 덕후들에게 정확히 반대로 들려주고 싶다.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삶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일기를 마치며, 언젠가 블로깅을 하다 발견한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글을 되새겨본다. 이 순간 문득 오세연 감독과도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사실 그와 나는 최근 우연한 기회로 ‘맞팔’을 맺어서, 당장이라도 그를 태그하거나 디엠을 보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오 감독의 덕생에 섣불리 관여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나의 첫 와이파이 다이어리가 그의 레이더에 자연스럽게 연결되기를 기다릴 뿐이다.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능력, 덕질은 우리에게 그런 능력(덕)을 준다. 자꾸만 나를 혐오하게 만드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면서, 이 세계와 맞선다.” (신형철, ‘어느 윤상 덕후의 고백’)
타인의 발가락과 맞는 새벽
내성 발톱 치료 유튜브 영상
모두가 잠든 시간, 아무래도 잠드는 데 실패한 것 같은 내가 선택하는 최애 유튜브 콘텐츠가 있다. 몇 년 전부터 새벽마다 내 방에 울려 퍼지고 있는 정체불명의 드릴과 커팅 소리, 내성 발톱 치료 영상이다. 시작은 내성 발톱이 아니었다. 휴가철에 비키니 왁싱 한 번 했다가 인그로운 헤어가 생기고 나서 해결책을 찾겠다며 인그로운 헤어 제거 영상을 보기 시작한 것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블랙헤드 제거, 귀지 제거 등을 거쳐 내성 발톱 치료 영상까지 오게 된 것이다. 영상에 달린 댓글을 보면 대부분 나와 같은 과정을 거친 듯하다. “블랙헤드에서 이사 오신 분 손!”, “인그로운 헤어 출신 손!” 같은 것들이 보란 듯이 ‘베플’ 자리에 올라 있다. 내성 발톱은 주로 엄지발톱에 많이 발생한다. 발톱 양 끝이 둥글게 혹은 각을 이룬 채 안으로 말리면서 그 밑에 있는 살을 아프게 누르는 현상으로, 이는 통증을 동반하며 생활에 불편함을 준다. 본인에게는 그런 애로사항이 있지도 않으면서 왜 하루에도 몇 시간씩 같은 영상을 복습하고, ‘시원한 구간’을 찾아보는 걸까? 인그로운 헤어에서 내성 발톱 영상으로 처음 넘어올 때는 그 모습에 굉장히 놀랐다. ‘어쩜 저렇게 발톱 양 끝이 서로 닿을 듯이 말릴 수가 있지? 섬네일에 있는 저 상어 이빨 조각은 또 뭐야, 저런 게 발톱 밑에 숨어서 살을 누른다고?’ 호기심에 한번 눌러본 영상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내성 발톱 치료 영상은 마치 결계를 쳐놓고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어둔 와칸다처럼 이미 엄청난 기술력과 세계관을 지닌 유서 깊은 영역이었다는 것이다. 일단 내성 발톱 치료 영상은 또 하나의 K-부심 콘텐츠다. 한국의 발 관리사 선생님들은 온갖 도구를 이용해 피 한 방울 내지 않고 살 속에 묻혀 있던 발톱을 밖으로 끄집어내 고객의 고통을 해결해준다. 고객이 최대한 아픔을 느끼지 않도록 견인기를 붙이고, 세심하게 커팅하고, 드릴을 이용해 발톱 두께를 줄여가며 최적의 치료 방법을 찾아낸다. 해외의 내성 발톱 치료 영상을 보면 의사가 무서운 메스로 환자의 발톱 중 눈에 보이는 부분을 잘라 새 발톱처럼 만든 뒤 살 속에 묻혀 있는 부분을 집게로 들어내 잘라버리는데, 이는 수많은 국내 내성 발톱인들이 댓글로 지적하는 점이다. 저렇게 표면에 드러난 문제만 해결하면 또 내성 발톱 형태로 자라나서 결국 일시적인 시원함만 안겨줄 뿐이라는 것이다. 이와 달리 한국의 많은 내성 발톱 치료 종사자들은 1차에서 많게는 8차까지 시간을 두고 장기적으로 변화하는 발톱을 지켜보며 궁극적인 치료를 꾀한다. 비의료적 방식이기는 하나 고객 입장에서는 내성 발톱과 확실히 이별할 수 있다. 여기서 내성 발톱 영상과 내성 발톱 치료 영상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타인의 신체 부위에 일어난 고통을 아무 공감 없이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내성 발톱 치료 영상의 관람 포인트는 시술자들의 세심한 배려와 손기술에 대한 경외에 있다. 세심한 드릴 스킬, 고객의 고통을 최소화하면서 견인기를 붙이는 신속함, 출혈이나 고통 없이 정확히 커팅 포인트를 짚어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흡사 예측할 수 없는 대자연과 싸우는 인류의 지혜를 목도하는 기분이 든다. 대자연의 일부인 인간에게 다가온 가혹한 신체적 시련을 고도의 기술로 싸워 물리치는 시술자들의 모습은 인류를 구하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웅들 못지않다. 시술소를 찾은 고객들의 사연도 흥미롭다. 시술 시간이 워낙 길다 보니 그 과정에서 시술자와 고객 사이에 많은 대화가 오가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가 모르는 타인들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강제로 하이힐을 신고 오랜 시간 서서 일해야만 했던 여성 노동자, 아픈 발로 꿈을 향해 계속 질주해야 했던 축구 선수, 오랜 시간 내성 발톱 때문에 고통받아왔지만 정보를 접할 수 없어 여러 차례 발톱을 뽑아버렸다가 손주의 도움으로 시술자를 찾아온 노인…. 그러니 한 사람의 삶을 괴롭혔던 작은 발톱 조각이 제거될 때 시청자들이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건 단지 그 모습이 주는 시각적 쾌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룹 방탄소년단은 ‘소우주’를 통해 “한 사람에 하나의 역사/한 사람에 하나의 별/70억 개의 빛으로 빛나는/70억 가지의 world”라고 노래했다. 모든 몸이 각자의 별, 각자의 우주라는 걸 충분히 마음에 새긴 채로 어두운 밤 휴대폰을 들어 내성 발톱 치료 영상을 보자. 이 작은 발톱이 휘둘러온 타인의 우주와 그 우주가 개벽하는 모습을 근접 영상과 ASMR 사운드로 지켜볼 수 있다. 멀쩡한 내 발을 괜히 한번 꼼지락거리며, 그 소우주를 바꾼 영웅들에게 경의를 표하자. 발톱의 변화로 새롭게 지어질 그들 각자의 소우주를 응원하며. 인류애, 별게 아니다.
내가 연애 예능에서 본 것
〈환승연애〉 출연자의 유튜브 채널 댓글(스포 주의)
연애 예능을 좋아한다. 길티 플레저가 여럿이지만 그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우리 결혼했어요〉 시절부터 이어진 연애 예능 시청을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연애 예능은 설레기도 하고 작위적이기도 하며 잔인하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어마어마하게 좋은 집에 예쁜 여성과 잘생긴 남성을 몰아넣고 한 달 정도 함께 살게 하는데, 그 제한된 공간 자체가 잘 짜여진 실험장 같아 출연자를 소개하고 함께 살 집을 보여 주는 연애 예능 1화는 항상 약간의 위화감과 함께 미간을 찡그린 채 보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이런저런 탐색을 하는 시간이 되면 어느새 어떤 사람이 어떤 말로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지 집중하느라 바쁘다. 항상 1화에 출연자들이 등장하고 자기소개를 하는 동안에는 ‘뭐야, 내 스타일 없네’ 하다가 한 회 한 회 지나갈수록 어떤 행동을 하는 누군가에게 정이 들어버려 결국은 서로 다른 연애 예능마다 ‘최애’를 한 명씩 꼽은 채로 최종 커플이 되는지를 확인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어떤 사람이 연애할 때 어떤 캐릭터가 되는지, 그 변모 과정을 보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 안 그럴 것 같은 사람이 전혀 예측 못 하게 임자를 만나 ‘내가 이렇게까지 사랑에 빠질 수 있다니…’ 하며 고요히 충격받는 얼굴을 보는 것도 좋아한다(나쁜가…). 여자 출연자들을 만난 지 이틀 만에 한 남자가 다른 남자들에게 “난 걔한테 직진할 거야” 같은 이상한 말을 자신만만하게 내뱉는 것(의 반복)과 그 이상한 말이 자막으로 꼬박꼬박 달리는 것도 뒤집어지게 좋아한다(나쁜 것 같다). 최근의 충격은 단연 〈환승연애〉였다.
〈체인지 데이즈〉는 안타까워하며, 〈나는 솔로〉는 깔깔 웃으며, 〈돌싱글즈〉는 그냥저냥 봤지만 유튜브에서 〈환승연애〉 클립을 처음 보고 나서는 ‘이게 도대체 무슨 세상이야! 내가 모르는 세상이 왔다, 메타버스보다 충격적이다’ 생각했다. 전 애인과 함께 살며 그곳에서 새 연애를 시작해야 한다니, 도대체 왜 그런 짓을? 일단 같은 집에 살고 싶은 전 애인이 있다니 말도 안 된다. 과연 사람이란 정말 다양하고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마음의 소유자들이 있구나, ‘아, 나는 못 봐, 저런 인간 실험’ 하고 거부했지만 결국 유튜브에 풀린 1화를 보고 말았다. 나의 첫인상 원픽은 ‘보현’이었다(예뻐서…). 1화를 보고 전체 프로그램을 보게 됐고, 보현은 그 프로그램을 끌고 가는 주요 서사의 주인공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3년 반을 만난 남자 친구와 홧김에 헤어지고 3개월 후 그 남자 친구와 함께 산다. 다른 여자, 남자들과 함께.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은 어느 시점까지는 누가 서로의 엑스인지 비밀로 해야 한다. 보현은 여럿이 있을 때 제법 자신을 잘 숨기고 하하 웃으며 분위기를 띄우지만, 전 애인과 단둘이 남겨지는 장면이면 무조건 울었다. 〈환승연애〉 시청자들은 보현이 전 남자 친구를 잊게 만드는 새로운 인연을 만날지, 자꾸 눈에 애틋하게 아른거리는 전 남자 친구를 다시 만나는 선택을 할지 궁금해했다. 보현은 전 남자 친구에게 마음이 기우는 듯 보이다가 결국 새로운 인연을 선택했고, 선택이야 그러했지만 전 남자 친구가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말할 때마다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워했다. 그들의 마지막 대화에서 보현은 울며 말한다.
“너무 늦었잖아. 기회가 많았잖아.” 나는 보현의 그 말이 슬펐지만 그래서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되돌아가지 않고 다른 쪽으로 가기를 바랐다. 〈환승연애〉는 화제의 프로그램이 됐고, 이후 출연자들은 프로그램에서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자신의 매력과 일상을 유튜브 채널을 통해 각자의 방식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최근 우연히 보현의 유튜브 채널을 보게 됐다. ‘귀여운 친구 잘 사나? 잘 살겠지’ 하는 멀고 미약한 관심으로 들어가본 그의 채널은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보현은 최근 악플에 시달린 것 같았다. 사람들은 새로 만난 사람과 여전히 사귀는지, 방송에서만 새 남자를 선택하고 전 남자 친구와 재결합해 시청자들을 기만한 건 아닌지를 질리도록 물었다. 보현은 결국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긴긴 해명을 했고, 그 해명을 본 많은 사람은 보현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며 해명을 요구한 사람들을 질타했지만, 나는 그 댓글을 보고 ‘보현이 괜찮을까?’ 생각했다. 그냥 댓글이 전부 무서워질 것 같았다.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말이 전부. 자신을 평가하고 깎아내리고 올리고 떨어뜨리는 말들이 전부. 남의 연애에 그렇게까지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전부 무서워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자신의 연애를 노출한 대가가 이렇게까지 혹독해야 한다고? 어떤 사람들은 보현이 입은 옷과 인스타그램 게시물 속 장소 등을 추측해 “이거 그거네, 이때 이런 거네” 하고 확신에 찬 주장을 내놓았다. 정황뿐만 아니라 보현의 의도와 마음에 대해서도 그랬다. 그래서 그런 거네, 그려러고 그랬네 하면서. 나는 보현의 유튜브에 달린 이상하게 뻔뻔한 요구를 하나하나 전부 읽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것마저 길티 플레저인듯. 그러나 그것은 길티였지 플레저일 수 없었다. 나는 설레는 연애의 시작을 보여주는 연애 예능의 끝이 이토록 유해한 것에 놀라며, 고요히 실망하고 있었다. 악플 같은 건 이제껏 수도 없이 많았지만, 나는 어쩐지 이번에 조금 더, 연애 예능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받았다. 과몰입 금지라는 말은 너무 말랑말랑하다. 그건 과몰입이 아니라 괴롭힘인데. 자신의 원칙 때문에 타인을 괴롭히지 말자.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도 누군가를 괴롭힐 수 있는 존재들이다. 스스로를 너무 과소평가하지 말자. 당신의 말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 그것이 비록 당신의 의지가 아니었을지라도 설레고 우스워서 본 영상 속 사람이 지극히 상처받는 것을 보면서, 연애 세포 말고 인간애 세포가 약간 죽는 것을 느꼈다. 그것까지 연애 예능의 특징에 포함된 걸까? 나는 뭘 어떻게 보는 인간이 돼야 하나. 일단 댓글을 안 보는 사람이 되리라는 것은 좀 더 확실해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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