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발 삼손이면 좋겠어요'..광주 붕괴사고 구조대원의 소망

장선욱 2022. 1. 16.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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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작업에만 의존하는 한계 상황


‘삼손처럼 무거운 콘크리트 잔해를 거뜬히 들 수 있다면…’

광주 화정아이파크 외벽 붕괴사고 엿새째인 16일 동녘에서 해가 트자마자 재개된 수색작업에 나선 119구조대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귓전을 때리는 강풍과 매서운 동장군은 차마 떠올릴 겨를조차 없다.

지난 14일 매몰자 1명을 처음 찾아낸 구조대원들은 켜켜이 쌓인 콘크리트 잔해를 샅샅이 누비고 있다. 인명 구조견을 대동한 구조대원들은 쉴 새 없이 코를 내밀고 냄새를 맡는 담당 구조견의 동태를 쫓는 데 열중한다.

하지만 사고 직후 현장에 투입된 수색대원들은 붕괴 잔해물이 산더미처럼 잔뜩 쌓이고 실타래처럼 얽힌 날카로운 철근들이 위협하는 곳곳을 오가면서도 한숨이 나온다. 무거운 콘크리트 잔해를 수작업으로 치울 수밖에 없어 작업 속도에 한계를 절감하는 상황이다. 날카롭게 쪼개지거나 분해된 건축자재를 온몸으로 헤치고 가야 할 때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속수무책이다.

철근 조각에 발이 찔리고 상처투성이가 된 구조견들도 마찬가지다. 숨을 헉헉대면서도 코를 땅에 처박고 매몰자의 흔적을 찾느라 낭떠러지까지 접근해야 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수차례 반복됐다.

대원이나 구조견이나 모두 무엇인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작은 소리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제2의 붕괴를 예고하는 전조증상이 아니기만 간절히 바랄 뿐이다.

붕괴사고 엿새째인 16일 애초 예정에 없던 해체용 타워크레인 2호기가 투입된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수색작업 발목을 잡는 콘크리트 잔해물 제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구조대원의 속앓이가 깊어가는 이유다.

포도송이처럼 위태롭게 붙은 상층부 구조물 낙하 위협으로 걷어내야 하는 잔해의 20%도 치우지 못한 상황이다.

금방이라도 머리 위로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상층부 절개 면에 붙은 콘크리트 잔해는 구조대원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이날 수색작업에 투입된 한 119구조대원은 “정말 머리카락이 길어서 괴력을 발휘하는 삼손이 됐으면 하는 소망이 간절하다”며 “콘크리트 더미가 이처럼 원망스러운 때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보다 더 큰 고심거리는 현장 상황과 괴리된 여론이다. 붕괴현장에 굴삭기 등 중장비와 인력을 대거 투입해 잔해물을 금방 거둬내면 될 게 아니냐는 무심한 목소리에 구조대원들은 맥이 풀린다. 한때 구조작업이 왜 그렇게 더디게 진행되느냐는 실종자 가족들의 따가운 눈총도 부담이 됐다.

사고 직후 연락이 끊긴 근로자 6명의 가족은 이후 “구조대원들의 안전도 중요하다. 제2의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고 한걸음 물러섰다. 수일째 구조대원들이 잠시도 쉬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본 이들은 “부실시공한 건설회사가 잘못이지 구조대원들이 무슨 죄냐”는 탄식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중장비가 투입돼야만 옮길 수 있는 무거운 잔해가 수북이 쌓여 콘크리트를 일일이 손으로 치울 수밖에 없는 대원들의 심정도 타들어 가는 것은 마찬가지다.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는 긴장 속에서 아슬아슬한 수색 작업을 진행할 수 없는 고충 속에서도 대원들은 실종된 근로자가 기적적으로 생환하게 되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수작업을 통한 잔해물 제거작업은 낙하물 추락으로 수차례 중단됐다가 재개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만일 작은 콘크리트 잔해라도 100m 이상 높이에서 속도를 내면서 구조대원 머리에 떨어지게 되면 치명상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끔찍하고 심각한 붕괴사고의 재판이다.

문희준 광주 서부소방서장은 “22층에 쌓인 엄청난 잔해물을 처리해야 하는 데 뾰족한 수가 없다”며 “현재 중장비를 그곳까지 옮기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붕괴사고 닷새째인 15일 오후 4시 30분에는 실제 사고건물에서 또다시 낙하물이 떨어져 사이렌이 울리고 구조대원들이 긴급 대피하기도 했다.

실종자 가족대책위 대표를 맡은 안 모(46) 씨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때도 한 달간 버티다가 구조된 전례가 있지 않으냐”며 “구조대원들이 제발 생존자를 무사히 구조하게 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할 뿐“이라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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