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 며느리 된 그녀, 정말 희대의 악녀일까
[이정희 기자]
*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이제는 오래 전 일이 되었지만, 마우리찌오 구찌 피습 사건을 신문 기사로 접했던 기억이 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그의 피습 사건이 아니라, 그를 죽인 당사자가 그의 전처였으며, 그녀가 잡혀 법정에 선 사건을 기사로 접한 것이다. '구찌'를 알아서라기 보다 이혼한 전 남편을 청부살해 한 그녀가 놀라워서 당시 기사가 기억에 남았다. 당연히 당시 신문은 희대의 마녀처럼 그녀를 다뤘다. 20세기의 마녀로 기억된 그녀, 파트리치아 구찌가 영화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 영화의 면면이 만만치 않다. 전 남편, 다름아닌 구찌 가문을 대표하는 마우리찌오 구찌를 죽인 '희대의 마녀'를 레이디 가가가 연기한다. 레이디 가가만이 아니다. 소박한 자기만족적 인물이라 쓰고 자기 중심적이라 읽어야 하는 구찌 가문의 도련님에 <결혼이야기>의 아담 드라이버만한 이가 있었을까. 거기에 알 파치노와 제레미 아이언스라니, 명불허전이다. 자레드 레토가 그 대책없는 파올로가 <수어사이드스쿼드>의 조커 자레드 레토였다니!
무엇보다 구찌 가문에서 실제 벌어진 살인 사건을 영화로 만든 이가 리들리 스콧이다. <글래디에이터>에서 <아메리칸 갱스터>, <마션>, <블래이드 러너 2049>까지 시대극에서 SF, 로맨스에서 스릴러까지 장르 불문한 명장. 그런데 <하우스 오브 구찌>는 리들리 스콧 감독이 20여년 동안 염원했던 작품이었다고 한다.
도대체 왜 그는 이 살인사건을 영화하 하려고 했을까.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구찌' 가문의 조상은 말 안장을 만들던 장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조상의 흔적은 오늘날 사람들이 '구찌'하면 떠올리는 그린, 레드, 그림에 어우러진 말안장 모양으로 귀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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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우스 오브 구찌 |
| ⓒ 유니버설 픽쳐스 |
그녀의 욕망은 유죄인가?
파트리치아 구찌, 그녀는 분명 전남편 마우리찌오 구찌의 살해를 교사했다. 그런데 법정에서 재판관이 그녀의 결혼 전 성 '레지아니'를 부르자, 그녀는 반박한다. 자신의 이름은 파트리치아 구찌라고. 그저 집착일까? 영화는 자신을 '구찌'라고 당당히 주장하는 파트리치아 구찌의 욕망을 따라간다.
사라 게이 포든의 책 <하우스 오브 구찌: 살인, 광기, 화려함, 그리고 탐욕의 충격적 스토리(The House of Gucci: A Sensational Story of Murder, Madness, Glamour and Greed)>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가난한 세탁소집 딸이던 파트리치아 레지아니를 운수업을 하는 아버지 회사에서 회계 업무 보는 영민한 여성으로 그린다.
파티에 참석한 파트리치아는 역시나 파티에 참석한 마우리찌오를 만난다. 자신을 '구찌'라고 소개한 마우리찌오를 보고 눈을 반짝 빛내는 파트리치아, 그녀는 마우리찌오의 동선을 따라 그의 시선을 끌고 결국 둘은 사랑에 빠진다. 마우리찌오의 아버지, 로돌프는 그녀가 '구찌'라는 가문을 선택한 것이라 하지만 영화는 굳이 그걸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구찌' 집안 사람들이 없이 결혼했고, 마우리찌오는 파트리치아네서 일하며 자족적인 신혼을 보낸다.
파트리치아의 욕망은 구찌 가문에서 사업가로 활약하던 알도(알 파치노 분)를 만나며 날개를 단다. 마우리찌오의 작은 아버지 알도에게는 파올로(자레드 레토 분)라는 아들이 있다. 구찌 가문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이 만든 핑크빛 코듀로이 싱글을 차려입고 나타난 파올로는 스스로를 천재적인 디자이너라고 생각하지만 알도에게는 대책없는 골칫덩어리일 뿐이다. 사업적 확장을 거듭하는 알도에게 동생의 아들이지만 변호사가 된 마우리찌오는 수하에 두고 싶은 존재였고, 그걸 눈치챈 파트리치아는 마우리찌오를 부추긴다.
파트리치아의 욕망은 그저 마우리찌오를 내조하는 데서 만족할 수 없었다. 알도에게 마우리찌오를 적극 추천하는가 싶더니, 구찌 가문의 일원으로 마우리찌오가 일하게 되자, 이제 알도와 파올로를 처리하고 구찌를 마우리찌오의 것으로, 아니 정확하게는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를 위해 알도와 파올로를 이간질하고, 파올로로 하여금 아버지의 비리를 폭로하게 만든다.
뉴욕에 온 파트리치아는 뒷골목 시장에서 거래되는 짝퉁 구찌에 분개한다. 그걸 사들여 알도와 마우리치오 앞에 내던지며 어떻게 이걸 놔둘수 있냐고 따져 묻는다. 그때 알도는 말한다. "애야, 너는 구찌가 아니야." 파트리치아의 비극은 그로부터 비롯된다. 그녀는 소극적인 마우리치오를 떠밀어 구찌 가문에 복귀하게 만들었고, 알도와 파올로를 제거하고 그를 구찌 가문의 일인자로 만든다.
파트리치아에게 구찌는 자신의 것이었지만 그녀를 제외한 누구도 '구찌'를 그녀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 파트리치아 덕에 구찌의 일인자가 되었지만 마우리찌오는 이제 그녀가 부담스럽다. 사랑이라는 변덕스러운 감정에 의존한 관계는 마우리찌오 앞에 나타난 또 다른 여성에 의해 파국으로 치닫는다. 구찌에서 배제된 파트리치아는 마우리치오의 전처로 살아가는 대신 구찌를 되찾기 위해 나선다.
영화는 현대판 신데렐라로 평가받으며 의부증과 허영심이 심하다고 기록된 파트리치아 구찌를 '구찌'라는 왕좌를 욕망한 적극적인 여성으로 그린다.
파트리치아의 열망과 노력에도 '하우스 오브 구찌' 사람들 그 누구도 그녀를 '구찌'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의 욕망인지, 노력 덕분인지 명품의 대열에서 탈락할 뻔하던 방만한 경영은 정리되었고, 골칫덩어리 파올로는 제거되었지만, 그건 그저 그녀의 욕망으로 치부될 뿐이었다.
영화는 '구찌' 왕가의 피에 연연하던 사람들이 '구찌'로부터 처리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하우스 오브 구찌'의 그 누구도 더는 '구찌'에 속하지 않게 된 것. '구찌'를 내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파트리치아의 주장은 그저 삐뚤어진 욕망일 뿐인가. '구찌'가 없는 '구찌'를 소비하는 오늘날의 사람들은 그렇다면 무엇을 소비하는 것일까. 영화가 남긴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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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5252-jh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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