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40주년 올스타⑤] '악마의 2루수' 정근우

이형석 2022. 1. 1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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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우(40)의 별명은 '악마의 2루수'다. 안타라고 여긴 타구도 어느새 쫓아가 잡아낸다. 얄미울 정도로 수비를 잘한다고 해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

2000년 대통령배전국고교야구 부산고와 속초상고의 8강전 당시 정근우.

일간스포츠가 선정한 40주년 올스타 2루수로 정근우가 선정됐다. 세대별 야구인 10명씩 총 40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정근우는 22표를 획득, '악바리' 박정태(14표)를 제쳤다. 정근우는 2020년 11월 은퇴식에서 "역대 최고 2루수는 내가 맞는 것 같다"면서 "'악마의 2루수'라는 애칭처럼 되고자 많이 노력했다. 키를 넘는 타구는 몰라도 옆으로는 타구를 빠뜨리지 않겠다는 자세로 뛰었다"고 말했다.

정근우가 한화 이적 후 다시 만난 김성근 감독으로부터 지옥의 펑고를 받은 후 유니폼이 더러워졌다. 한화 제공

'선배 2루수'도 이를 인정한다. 정근우는 2007년 잠시 유격수로 뛴 적 있다. 당시 그와 키스톤 콤비를 이룬 정경배 SSG 랜더스 타격코치는 "정근우를 따라갈 수 있는 2루수가 현재 성적으로는 없어 보인다"고 했다. '철인' 최태원 삼성 라이온즈 수석코치는 "스로잉(송구)이 안 좋아 보일 수 있는데 어깨가 강했다. 또한 수비 범위가 엄청나게 넓었다. 견실하면서 재치 있는 플레이가 돋보였다"고 칭찬했다.

정근우는 2000년 캐나다 애드먼턴에서 열린 제19회 세계 청소년 야구선수권대회 우승 멤버였다. 추신수(SSG)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김태균(은퇴) 등과 대표팀 주축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체격(1m 71㎝)이 작다는 이유로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해, 고려대에 진학했다. 고려대 선배였던 박용택은 정근우를 "쥐똥만 한 녀석이 운동을 열심히 했다. 승부욕도 엄청났다. 예쁜 후배였다"라고 회상했다.

정근우는 현역 시절 파이팅이 넘쳤다.

2005년 SK(현 SSG) 2차 1라운드로 입단한 정근우는 김성근 감독을 만나 '최고 2루수'로 성장했다. 정근우는 "김성근 전 감독님이 치는 펑고를 너무 많이 받았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훈련했다"고 말했다. 덕분에 그는 2007년과 2008년, 2010년 등 SK에서 세 차례나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를 꼈다.

고등학교 때 입스(심리적 요소로 공을 정확히 던지지 못하는 증상)를 느꼈다. 대학 때, 그리고 프로 입단 후까지 무려 세 번이나 입스가 왔다. 많은 선수가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은퇴하지만, 정근우는 끝내 이겨냈다. 팔꿈치 수술도 세 번이나 받았다. 당시 의사가 "이런 팔로는 야구를 못 한다"고 했을 정도였다. 정근우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과 싸워 이겼다.

공격과 주루도 뛰어났다. 프로 통산 1747경기에 출장해 타율 0.302(1877안타) 121홈런 722타점을 기록했다. 정확성도 뛰어났지만, 작은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장타력까지 갖춘 2루수였다. 끝내기 안타도 16개(KBO리그 최다 기록)를 때려낸 바 있다. 통산 371도루를 기록했고, 역대 최초로 11년 연속 20도루를 찍었다. 골든글러브 2루수 부문 3회(2006년, 2009년, 2013년), 득점왕 2회(2009년, 2016년)를 수상했다. 키움 히어로즈 김혜성은 "공수가 완벽했던 2루수"라고 말했다.

정근우(가운데)가 2008년 베이징올림픽 결승전에서 쿠바를 꺾고 금메달을 따자 이승엽(왼쪽)에게 달려가 안기고 있다. 맨 오른쪽은 류현진.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국가대표로도 맹활약한 정근우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2015년 WBSC 프리미어12 우승 등에 기여했다. 대표팀 통산 성적은 40경기 타율 0.324 10도루 OPS(출루율+장타율) 0.843이다. 2021년 한국시리즈 MVP(최우수선수)를 수상한 KT 위즈의 2루수 박경수는 "정근수 선배님이 대표팀에서 보여준 좋은 플레이와 임팩트는 2루수 중에서도 '넘사벽'이라고 생각한다"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정근우는 2014년 한화 이글스와 4년 총 70억원의 FA(자유계약선수) 계약으로 이적했다. 2+1년 총 35억원의 두 번째 FA 계약 후에는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했다. 나중에는 외야수와 1루수로 나섰다.

2019년 말 2차 드래프트에서 LG 트윈스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정근우는 '2루수'로서 마지막 기회를 얻었고, 결국 1년을 더 뛰고 은퇴했다. 그는 "포지션 변경에 방황하면서 여러 고민도 했는데 (LG로 옮겨) 다시 한번 2루수로 뛸 기회를 얻었다. 감사드린다. 어떤 선배가 '한 자리를 10년 지키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난 '10년 넘게 할 거야'라고 다짐했는데, 2루수로 은퇴해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2020년 11월 11일 열린 정근우의 은퇴식. 그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 밝은 표정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연합뉴스.

KBO리그 역사상 가장 많이 2루수로 출전한 선수가 바로 그다. 김경기 스포티비 해설위원은 "2루수는 꾸준히 활약하기 힘든 포지션이다. 어떤 2루수가 팀에 가장 큰 도움을 줬을까 생각해보니 정근우가 떠올랐다. 2루를 대표하는 선수"라고 평가했다.

양상문 전 롯데 감독은 "정근우는 공수 능·력과 파이팅을 모두 보여줬다. 이상적인 2루수의 모든 조건을 갖췄다. 팀 공헌도도 높았다"라고 평가했다. 김종국 KIA 타이거즈 감독은 "같이 뛰어본 선수 중에는 정근우가 가장 좋은 2루수다. 지도자의 눈으로 봐도 그렇다. 공·수·주 모두 독보적이었다. 근성도 뛰어났다. 신체 조건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이를 이겨냈다"라고 말했다.

2020년 신인왕 KT 소형준은 "정근우 선배님은 수비도 좋았지만, 타석에서 상대 배터리와 야수진을 흔들 수 있는 타자였던 것 같다. 투수 입장에서 상대하기 힘들었다"라고 했다. 지난해 신인상을 받은 KIA 이의리는 "악바리 같은, 근성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표현했다.

이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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