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로 해결되지 않는 고질적 방송조작 [박정선의 엔터리셋]

박정선 2022. 1. 16.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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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때녀' 이전엔 '패떴' '정글의 법칙' 등도 조작 논란
"방송 제작 윤리 기준과 시스템 전면 재점검 필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SBS 축구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에 대한 심의 검토에 나섰다. 프로그램에 대한 민원이 수십 건에 달하면서다. 방심위는 “편집 조작의 경우 보통 공정성 규정이 적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SBS

방심위 규정 제9조(공정성)에는 ‘방송은 제작기술 또는 편집기술 등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대립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 특정인이나 특정단체에 유리하게 하거나 사실을 오인하게 하여서는 아니된다’는 규정이 있다.


‘골때녀’의 조작 의혹이 불거진 건, 지난달 22일 방송이다. 해당 방송 이후 두 팀의 점수 획득 순서가 편집된 사실이 시청자들에 의해 밝혀졌고 이틀 후 제작진은 편집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SBS는 지난달 24일 “방송 과정에서 편집 순서를 일부 뒤바꿔 시청자들에게 혼란을 드렸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편집에 주의를 기울여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른 방송분에서도 득점 순서가 뒤바뀐 정황이 드러나며 프로그램 자체의 문제로까지 논란이 번지자 SBS는 제작진에 대한 징계와 교체와 두 번째 사과를 내놓으면서도 “축구를 사랑하는 팬들의 성원 속에 성장했음을 잊지 않겠다”며 “여자 축구를 향한 출연진의 진심을 잊지 않겠다. 2022년 새해에는 더욱 진정성 있는 스포츠 예능으로 거듭나 시청자 여러분께 돌아오겠다”라고 밝히면서 프로그램 폐지에는 선을 그었다.


두 차례에 걸친 사과와 제작진에 대한 징계·교체를 단행하고 결방한 끝에 현재는 방송을 재개한 상황이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지에 대해선 의문을 표하는 이들이 많다. 그간 SBS 예능프로그램과 관련해 여러 차례 조작 논란이 불거지면서, ‘조작’이 SBS의 고질병처럼 인식되면서다.


앞서 2008년부터 2010년가지 방송된 SBS 인기 예능 ‘패밀리가 떴다’의 경우 일반인 출연자들의 대화 순서까지 가이드 수준으로 적힌 방송 대본이 공개되면서 비판을 받았고, ‘정글의 법칙’도 2013년 출연진이 방문한 곳이 관광 프로그램의 일부로 밝혀지면서 논란을 겪었다.


비단 SBS의 문제만은 아니다. 최근 TV조선 ‘아내의 맛’은 조작 논란 이후 함소원이 하차하고 프로그램은 폐지됐다. 또 엠넷 ‘프로듀스 101’과 ‘아이돌 학교’ 등은 시청자 투표를 조작해 순위를 바꾸거나 임의로 탈락자를 결정하면서 형사 사건으로까지 번졌다. 이 밖에도 관찰 예능 프로그램들에서 설정 촬영이 의심되는 사례가 무수히 등장한다. 이 같은 사태들은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불신을 부추기는 발단이 됐다.


고질병처럼 이어지는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근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도 이런 반복된 조작, 편집 때문이다. 사회적인 비판은 물론 사법적 처벌까지 뒤따랐음에도 여전히 조작에 대한 경각심 없이 방송을 만든다는 건, 그만큼 조작이 당연시 되어 왔다는 말과 같다. 어느 한 프로그램만의 문제가 아니라 방송가 전체의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골때녀’에 감독으로 참여하고 있는 김병지는 한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조작이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하는데, 저희들은 편집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죄송하다. ‘골때녀’를 예능이 담겨 있는 스포츠로 봤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런 범주는 편집에 의해 재미있게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고 사과했다. 예능이 워낙 편집을 기본으로 여기기 때문에 선수 출신인 김병지조차도 편집을 받아들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혹여 논란이 되기라도 하면 제작진 교체나 프로그램 개편 또는 폐지 등으로 위기를 모면해 온 것도 사실이다. 이미 뿌리 깊게 박힌 인식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결국 ‘골때녀’와 같은 사태가 또 반복될 것이라는 걱정도 무리는 아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방송사들은 방송 제작 윤리 기준과 시스템을 전면 재점검하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부터 내놔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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