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도인가 극초음인가..무의미한 논쟁에 체면만 구긴 국방부 [이철재의 밀담]

이철재 2022. 1. 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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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체면을 구겼다.

지난 11일 북한이 자강도에서 극초음속 미사일이라고 주장하는 미사일을 쐈다. [노동신문=뉴스1]

지난 5일 북한이 극초음속 미사일을 쐈다고 주장하자, 7일 합동참모본부와 국방과학연구소 관계자들까지 불러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자처하면서다.

국방부는 이 자리에서 5일 북한의 미사일이 극초음속 미사일이 아닌 탄도미사일이라고 강조했다. 근거로 탄두부가 원통형이기 때문에 극초음속 미사일처럼 수평비행할 수 없고, 최고 속도는 마하6 수준이며 이후 속도가 훨씬 떨어졌다는 사실을 댔다.

그러나 11일 북한이 보란듯 최고 속도 마하10의 미사일을 쐈다. 국방부가 판정패한 분위기다. 국방부의 스텝이 어떻게 꼬였을까.


포물선을 그리지 않는 극초음속 미사일

극초음속 미사일에서 극초음속은 마하5(시속 6120㎞) 이상을 뜻한다. 최고 속도가 마하5 이상이라고 무조건 극초음속 미사일이 아니다. 일반 탄도미사일도 상승속도와 하강속도가 마하5를 훨씬 웃돈다.

탄도미사일(맨 위), 극초음속 활공체(가운데), 극초음속 순항미사일의 비행 궤도. GAO


장영근 항공대 항공우주ㆍ기계학부 교수는 “탄도미사일과 극초음속 미사일의 기준은 속도가 아니다”며 “명확한 정의는 없다”고 말했다.

극초음속 미사일이 탄도미사일과 다른 점은 비행 궤도다.

탄도미사일의 궤도는 상승→정점→하강의 포물선 탄도를 그린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포물선 궤도로 날지 않는다.

탄도미사일이 자유낙하하면서 탄도미사일의 하강속도가 빠르지만, 탄착지점을 예상할 수 있어 요격이 가능하다.

그래서 나온 게 기동형 재진입체(MaRV) 탄도미사일이다. 국방부가 7일 백브리핑에서 5일 북한 미사일이 바로 MaRV 미사일이라고 설명했다.

MaRV는 요격이 쉽지 않은 탄도미사일이다. MarV의 탄두부는 포물선 궤도로 떨어지지 않고, 기동한다. 탄착지점 앞에서 살짝 위로 솟구치다 다시 떨어진다. 이른바 풀업(pull-up) 기동이다. 좌우로 움직이는 트러스트(thrust) 기동도 한다.

러시아의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인 9K720 이스칸데르가 MaRV 방식이다. 9K720은 풀업 기동을 여러번 할 수 있다고 한다. 또 이 미사일은 고도 50~80㎞에서 정점을 찍고 하강하한다. 정점 고도가 낮으면 레이더에 걸리는 시간이 줄어들 수 있다.

지난해 1월 14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 기념 열병식에서 KN-23 단거리탄도미사일 '북한판 이스칸데르' 개량형이 등장하고 있다. 뉴시스


북한의 SRBM인 KN-23은 모양과 비행이 9K720과 비슷해 ‘북한판 이스칸데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언 윌리엄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미사일 방어 프로젝트 부국장과 같은 외국 전문가는 북한의 KN-23 개발에 러시아가 연관됐다고 의심하고 있다.


우주선처럼 상하, 좌우로 날아가

극초음속 미사일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지난 2019년 중국 건국 70주년 기념일 행사에 등장한 중국의 극초음속 미사일 둥펑(DF)-17. 연합


하나는 극초음속 활공체(HGV)다. 현재 나온 극초음속 미사일이 대부분 HGV다. 러시아의 Yu-71(Yu-74) 아방가드르, 중국의 DF-ZF가 HGV다.

탄도미사일의 탄두부에 HGV를 단 뒤 발사한다. 정점 고도에서 발사체에서 HGV가 떨어진 뒤 낙하한다. 탄도미사일처럼 자유낙하하지 않고 물수제비 튕기듯 통통 여러차례풀업을 할 수 있다. 또 수평비행을 하면서 오른쪽 또는 왼쪽으로 방향을 틀 수 있다. 일각에서 HGV를 우주선(spacecraft)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HGV는 종말단계 비행 속도가 마하5 이상이지만, 탄도미사일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느리다.

12일 북한 관영매체가 공개한 사진에서 나온 ‘극초음속미싸일 시험발사 계획’에 보면 11일 미사일의 비행은 600㎞ 지점에서 풀업을 하고, 700㎞ 지점에서 좌선회하도록 계획됐다.

지난 12일 북한 관영매체가 공개한 사진 속 극초음속미싸일비행계획을 확대한 모습. 네이선 헌트 트위터 계정


또 다른 방식이 극초음속 순항미사일(HCM)이다. 마하5 이상의 속도를 가진 순항미사일이다. 러시아의 3M22 지르콘이 극초음속 순항미사일이다.


"기술이 낮다고 위험도 낮을 순 없어"

문제는 MaRV와 HGV의 비행 궤도가 비슷하다는 점이다. 둘 다 풀업 기동을 한다. 차이점은 MaRV가 종말단계 후반부에 풀업 기동이나 트러스트 기동을 하고, HGV는종말단계 전체에서 글라이더처럼 돌아다닐 수 있다.

지난 11일 북한이 쏜 극초음속 미사일의 탄두부. 원뿔 모양이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연구위원


국방부는 북한의 5일 미사일이 풀업 기동과 선회 기동이 뚜렷하지 않다는 근거로 MaRV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앤킷팬더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 등 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북한의 5, 11일 미사일을 MaRV로 보는 견해가 많다.

국방부가 MaRV로 인식한 이유 중 하나가 탄두부 모양이다. HGV는 쐐기 모양으로 생겼는데, 북한이 5일 미사일은 원뿔 모양이라는 점이다.

미국 육군이 개발 중인 장거리 극초음속 무기(LRHW)의 탄투부에 다는 활공체. 원뿔 모양이다. 미 육군


그런데 장영근 교수는 “활공체(탄두부)가 쐐기 모양보다는 작지만, 원뿔 모양도 우수한 제어 능력을 갖고 있다. 활공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미국 육군이 개발 중인 장거리 극초음속 무기(LRHW)의 활공체도 원뿔 모양”이라는 사실을 덧붙였다.

북한이 아직 본격적인 HGV 수준에 이르지 않았지만, 지난해 9월 28일, 지난 5일, 11일의 미사일 발사가 HGV 개발 목적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북한의 미사일 기술 수준이 한국보다 낮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을 걱정하는 여론이 높아진다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지지하는 여론이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국방부의 7일 백브리핑 배후에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극초음속 활공체(아래)와 기동형 재진입체(위)의 비행 궤도. RAND


사실 북한의 5, 11일 미사일이 MaRV냐, HGV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류성엽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AK-47과 같은 자동소총은 낮은 수준의 기술이지만, 전 세계에서 대량살상무기에 준하는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기술 수준이 낮다고 위협 수준도 낮다고 생각하면 큰 오류”라고 지적했다.


북한 극초음속 미사일에 민감한 미국

북한이 11일 오전 미사일을 쏘자 미국은 이날 서부 지역의 공항에 15분간 항공기 운항을 중단했다. CNN은 당시 미군이 북한 미사일의 텔레메트리(원격 전파 신호)를 분석한 결과 알래스카의 알류샨 열도나 서부 캘리포니아 해안을 공격할 수도 있다고 파악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11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등장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존 화성-15형이 실렸던 9축(18바퀴) 이동식발사차량(TEL)보다 길어진 11축(바퀴 22개)에 실려 마지막 순서로 공개됐다. 북한은 미국을 노린 전략무기로 ICBM 개발에 힘쓰고 있다. 뉴시스


결과적으론 잘못된 경보였다. 미국은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지난해 9월 28일 1차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 후 다음 날 북한 측 입장을 대변하는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화성 계렬(계열)의 전략무기(극초음속 미사일)가 날아오른 것은 2017년 11월 29일 화성포-15형의 시험발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된 이래의 사변”이라고 보도했다. 북한에서 전략무기는 미국을 노린 무기라는 뜻이다.

조선신보는 또 전략무기를 ▶초대형 핵탄두 ▶1만 5000㎞ 타격 능력 ▶극초음속 활공비행 전투부(HGV) ▶수중ㆍ지상 고체발동기(엔진) 대륙간탄도로케트(ICBM) ▶핵잠수함ㆍ수중발사핵전략무기(SLBM) 등으로 꼽았다. HGV를 전략무기로 분류한 것이다.

정부 소식통은 “한ㆍ미는 북한이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2017년과 같이 미사일 도발을 계속 벌이려는 게 아니냐고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극초음속 미사일 요격 불가능하진 않지만 어려워

마이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은 지난해 10월 중국의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를 ‘스푸트니크 순간’에 가깝다며 큰 위기감을 드러냈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속도가 빠르고, 고도가 낮기 때문에 요격이 힘들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14일 미국 해군은 함정에 설치한 레이저로 드론을 격추하는 시험에 성공했다. 레이저는 극초음속 미사일 요격 수단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 출력이 부족해 요격에 당장 투입할 수는 없다. 미 해군


미국은 러시아ㆍ중국의 극초음속 미사일에 대한 방어망을 쌓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미국 미사일방어국(MDA)은 저궤도 극초음속ㆍ탄도 추적 우주 센서(HBTSS) 인공위성과 글라이더 단계 요격체(GPI) 개발에 착수했다. 군사 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씨는 “미국이 방어에 전력을 다하고 있지만, 그만큼 방어가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명국 전 방공포병사령관은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은 러시아ㆍ중국과 비교하면 걸음마 단계”라며 “지금까지 3차례 쐈던 극초음속 미사일은 현재 요격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권명국 전 사령관 “미사일이 풀업 기동을 하면 속도가 줄어든다. 탄착지점에 대한 계산을 다시 빨리하면 된다”며 “지금 요격 체계의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고, 요격 미사일을 개량해 기동성을 높이면 된다”고 제시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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