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 인하 빙하시대.. '혜자카드' 멸종

김지훈 2022. 1. 15.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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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수수료 수익 급감 비용 절감 나서
작년 192종 등 3년간 600여종 카드 단종


신용카드사가 내놨던 ‘혜자카드’들이 줄줄이 단종되고 있다. 신용카드 업계의 수익성이 나날이 악화되며 카드사들이 혜택이 좋은 상품을 단종시키는 방법으로 비용을 줄여나가는 탓이다. 금융 당국이 10년간 단행해 온 ‘보여주기식’ 결제수수료 인하가 업황 악화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금융소비자와 카드사 양쪽 모두의 불편은 가중되고 있다.

14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7개 전업카드사(신한·KB·삼성·현대·롯데·우리·하나카드)는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신용카드 143종과 체크카드 49종 등 총 192종의 카드에 대해 신규 가입과 유효기간 연장을 중단했다. 2019·2020년(각 202종)을 합치면 지난 3년간 600종에 달하는 카드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셈이다.

단종된 카드 중에는 재테크 커뮤니티 등지에서 ‘혜자카드’로 불리던 것도 적지 않다. 혜자카드란 카드 혜택을 받기 위한 조건은 까다롭지 않으나 돌아오는 혜택은 큰 상품을 뜻한다. 통상적으로 카드사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카드 혜택에 최소 결제금액을 걸거나 최대 적립 가능한 포인트 상한선을 설정하는 등 조치를 취하는데, 혜자카드는 이런 조건에서 상당히 자유롭다.

최근 단종된 대표적인 혜자카드로 신한카드의 ‘더모아(The More) 카드’가 있다. 이 카드는 5000원 이상 결제 건에 대해 1000원 미만 잔돈을 포인트로 적립해주는 카드다. 가령 5800원을 결제하면 800원이, 1만3300원을 결제하면 300원이 적립된다. 최소 결제금액도 낮고 포인트도 무제한으로 적립해준 덕에 짠테크족에게 인기를 끌었다. 선결제 기능을 이용하면 실적조건 없이 결제금액의 2.5%를 포인트로 적립해주는 현대카드 ‘제로카드’도 2020년 5월 단종 수순을 밟았다. 커피전문점에서 무제한 10% 할인 혜택을 자랑하던 KB국민카드 ‘이마트카드’도 2020년부로 신규 발급이 중단됐다.

물론 신용카드가 대거 단종되며 카드업계는 이들을 대체할 새로운 카드를 속속 내놨다. 2020년에 183종, 지난해에는 227종의 신상품이 나왔다. 이들 중 일부는 이미 단종된 카드의 높은 인기를 고려해 수익성을 개선한 후속 모델로 출시됐다. 신한카드는 더모아카드의 후속작으로 ‘잇츠모아카드’를 오는 2월 출시할 예정이고, 현대카드는 제로카드를 이어 ‘제로카드 에디션2’를 내놨다. 하지만 이전보다 혜택 조건 등을 까다롭게 설계한 탓에 소비자들의 호응은 예전만 못한 분위기다.

카드업계는 혜택이 좋은 상품을 단종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원인으로 계속해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카드 수수료율을 지목한다. 정부는 2012년 국회에서 여신전문금융업법이 통과된 이래 3년마다 적격비용을 계산하고 카드 결제수수료를 변경시켜 왔다. 적격비용을 산정해 합리적인 수수료를 산정한다는 취지다. 2012년부터 2015년, 2018년, 2021년 총 4회에 걸쳐 수수료를 인하해 왔다. 이로 인해 감소한 카드사 수수료 매출만 3조900억원에 달한다.

정부는 관계 당국과 회계법인, 카드사 등이 모여 적정한 수준의 비용을 산출했다고 주장하지만 카드사의 입장은 다르다. 카드사 관계자는 “카드사가 적격비용을 산정하는 협의체에 들어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는 요식행위에 가깝다”며 “카드사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정치적 셈법에 따라 인하 여부가 결정된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


문제는 카드업계의 영업 상황이 계속해서 악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카드업계는 팬데믹 기간 늘어난 카드론 등 대출 수요로 지난해에는 호실적을 기록했지만 2019~2020년에는 1317억원의 손실을 봤다. 한 번 내린 수수료를 다시 올리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카드사는 살길을 찾기 위해 비용 절감에 나서고 있다. 혜택성이 좋은 카드를 없애는 것이 주요 방식이다. 정부의 보여주기식 수수료 인하에 금융소비자와 카드사 모두 윈윈(win-win)은커녕 모두 ‘지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수수료 인하 명분으로 내세운 ‘자영업자 보호’가 실효성이 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카드사 관계자는 “자영업자들에게 ‘장사가 안 되는 이유’를 물어보면 항상 상위권에는 임대료나 인건비, 배달 수수료 등 답변이 나오지 카드 수수료가 나오는 경우는 없다”며 “정말 우리(카드사)가 자영업자를 힘들게 하는 원인이라면 수수료가 칼질당하는 10년간 왜 자영업자들의 고충은 그대로인가”라고 반문했다.

수수료 수익이 급감하며 카드업계에서는 “먹고살기 위해 앞으로는 카드회사가 아닌 대출회사가 되는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농담마저 나온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매출 30억원 이하 가맹점을 ‘영세사업자’로 분류해 훨씬 낮은 수수료를 책정했는데, 이들을 모두 합치면 전체 가맹점의 99%가 넘는다”며 “사실상 모든 가맹점에서 수수료 수익이 급감한 지금 우리가 살길은 카드론이나 현금서비스 같은 대출사업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카드사가 카드결제시장의 수익성이 저조할 것으로 판단한다면 소비자에게 혜택 좋은 카드를 제공할 유인도 사라지는 만큼 앞으로도 혜자카드의 연속적인 단종 사태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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