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내놓고 기찻길 걷던 사람들.. 기적 만들어낸 소년
[김봉건 기자]
자동차 도로가 전무하고, 기차역마저 없어 사람이 오갈 데라고는 오직 기찻길밖에 없었던 외진 산골 마을.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가려고 해도 반드시 터널을 여러 개 거쳐야 하고, 강물 위의 교량을 아슬아슬하게 건너야 하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열차가 통과하는 시간에 때 맞추어 이동하지 못할 경우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 실제로 마을 사람들의 다수는 이러한 연유로 목숨을 잃어야 했다.
이 마을에 사는 준경(박정민)은 통학을 위해 왕복 5시간이나 소요되는 이 길을 매일 걸어다녔다. 그는 자신과 마을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이러한 현실이 무척 답답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직접 행동에 나서기로 작정한다. 청와대에 관련 민원을 제기한 것이다. 그것도 무려 50여 차례나.
▲ 영화 <기적> |
ⓒ 롯데엔터테인먼트 |
영화 <기적>은 평소 우주를 꿈꿔오던 한 영특한 소년과 마을 주민들이 합심하여 산골 마을의 숙원 사업인 간이역을 직접 일군다는 이야기다. 1980년대가 시간적 배경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민자역으로 알려진 '양원역'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 영화 <기적> |
ⓒ 롯데엔터테인먼트 |
기관사인 준경의 아버지(이성민)는 무뚝뚝한 원칙주의자였다. 아들 준경과 함께하는 식사 시간에도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마주보고 앉은 두 사람은 그저 밥 먹는 일에만 열중했다. 그나마 아주 가끔씩 오가는 말들은 대부분 짧고 형식적인 단어들뿐이었다. 직업 특성상 가족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아 그런 걸까. 왠지 데면데면한 두 사람의 관계에는 성격적인 부분 말고도 무언가 특별한 사연이 감춰져 있는 듯했다.
준경의 누나 보경(이수경)은 늘 준경의 곁을 맴돈다. 돌아가신 어머니 대신 살뜰히 동생을 챙겨주었던 보경. 덕분에 두 사람 사이에는 비밀 따위란 전혀 없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아픈 사연이 존재한다. 이 영화가 판타지 장르로 분류될 수 있었던 데엔 이러한 배경이 자리한다.
▲ 영화 <기적> |
ⓒ 롯데엔터테인먼트 |
영화는 준경으로부터 시작된 작은 노력이 간이역 설립으로 이어지게 하는 놀라운 결과뿐 아니라 아픈 사연으로 인해 가족 간 풀리지 않던 해묵은 감정까지 사르르 녹이는 과정을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치환하여 스크린 위에 옮겼다. 여기에 준경과 라희의 풋풋한 로맨스까지 덤으로 얹어 놓아 보는 재미를 더했다. 국내 최초의 민자역 설립이라는 실화를, 동화적 판타지로 승화시킨 감독의 재간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인 1980년대의 시대상을 오감을 통해 살펴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로 다가온다. 특별히 배경음악으로 삽입된 김완선의 노래 <기분좋은 날>은 이러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코로나19 시국이 길게 이어지면서 모든 게 여의치 않은 상황. 이런 때일수록 기본을 돌아보게 되는 건 인지상정이다. 기적이란 어쩌면 준경의 천재적인 두뇌와 이를 발휘하는 일도, 최초의 민자역 설립이라는 놀라운 성과도, 그리고 준경과 라희가 풋풋하게 이어가던 예쁜 로맨스가 아니라, 각기 간직해 온 아픈 사연으로 인해 조금은 거리감을 느껴오던 가족이 온기를 되찾고 가족애로 서로를 보듬게 되는 따스한 과정 아닐까?
▲ 영화 <기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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