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몰살한 13살 막내아들의 '기막힌' 살해 동기
[이인미 기자]
통상의 범죄 다큐멘터리와는 아주, 썩, 상당히, 완전히 다른 다큐멘터리 작품이 있다. 제목은 <더 모티브: 왜 소년은 가족을 죽였나?>다. 제목에 '동기(the motive)'가 들어있지만, 작품은 동기를 밝혀주지 않는다. 동기를 밝혀주기는커녕 일부러 더 헷갈리게 만든다고 말해야 옳을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간단한 검색으로도 확인할 수 있듯 이 작품에 대한 간단비평 말고 진지한 리뷰는 국내외를 통틀어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그런데 적은 리뷰들 대부분은 이 영화를 두고 "당황스럽다, 짜증난다, 화난다"는 평을 적어두었다..
이 작품이 시청자들에게 일종의 '두뇌 게임'을 제안한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가설?)들을 열거하는데, 진짜 딱 거기까지만 하고 뚝 끝난다. 그러니까 시청자들은 이 작품이 다루는 사건을 이해하기 위하여, 또 왜 이 작품이 그 사건을 다루었는지, 열심히 두뇌를 써서 알아내야 하는 것이다.
단, 추리과정 자체를 즐길 필요가 있다. 영화는 그 어떤 질문에도 이른바 정답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작품을 만든 이들은 몇 년 전 <터미널에서의 죽음(Death in the Terminal/ 2016)>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도 만들었는데, 그 작품에서도 그런 방식을 취했다고 한다.
자, 이제 <더 모티브>가 도대체 어떤 작품인지 파헤쳐보기로 하자. <더 모티브>는 1986년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엔카렘'에서 한밤중에 일어난 온 가족 몰살 사건을 다룬다. 사건현장에서 살인범이 체포되었는데, 살인범인즉 그 집의 막내아들(13살)이었다.
그런데 살인의 결과물(?)도 있고, 살해 흉기(M16)도 있었으며, 살해 주체(범인)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그 범인(아이)의 살인 동기가 명확지 않았다. 방금 전에 제 손으로 온 가족을 살해해놓고도 감정의 동요도 없이 차분히 앉아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수사관들은 당황했다. 이후 아이의 정밀검진을 맡은 신경정신과 의사와 교수들은 자신들이 평생 공부해온 법의학 지식을 뒤집어야 하나 걱정했다. 그리고 아이의 친지와 지인들은 소스라치듯 놀랐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총을 쐈기에 시신은 끔찍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아버지의 얼굴 반쪽은 창문 커튼 뒷쪽에서 찾았다. 어머니의 두개골은 불규칙하게 파손되어 피를 뿜고 있었다. 2층에는 소년의 누나들이 잠자던 자세 그대로 총살(?)되어있었다. 심지어 (큰누나의 경우 군복무 경력도 있는데) 아랫층에서 울린 총소리를 듣고 일어나 대응한 움직임이 전연 없었고, 총을 들고 나타난 동생에게 저항을 한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누나들은 이불을 턱 밑까지 얌전히 올리고 반듯이 누운 채로 죽어있었다. 게다가 아이는 누나 중 한 명이 뭐라 말하려 했을 시점에 총을 쐈기에 누나가 하려던 말을 끝까지 들을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 영화 포스터 <더 모티브> |
ⓒ 넷플릭스 |
M은 살인이 있기 직전에 아버지에게 M16을 다루는 방법을 배웠다고 진술했다. 모두가 감탄할 만큼 지능지수가 높은 M은 총기작동법을 단번에 완벽히 익혔다. 이튿날 살인 당일, M은 잠을 자다 꿈에서 영화 <빠삐용>의 한 장면을 보았고(온 가족 살해범이 등장하는 장면), 근처 교회당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었다. 그 직후 "가라"라는 음성을 따라 침대에서 일어났고 안방으로 들어가서 M16을 사용해 부모님을 살해했다.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 누나들을 죽인 다음, M16을 탁자에 놓아두고 옷을 갈아입은 뒤 이웃집으로 건너갔다.
청소년담당 수사관에게, M은 침착하게 말했다. 자신이 총을 들었고, 온 가족 네 명이 다 그 총에 맞아 살해됐지만, 자기가 그들을 살해한 게 아니며 미지의 목소리가 자기를 사주했다고 주장했다. 나중에 M은 변호사에게 '초록색 몸'이 자기에게 살인을 시켰다며 이전 진술을 부분적으로 수정했다. 그러나 자기가 의도적으로 살해한 게 아니라는 주장은 초지일관 고수했다.
그런데 M은 온 가족의 죽음에 대해 전연 슬퍼하지 않았다. 설령 자기가 의도적으로 죽이지 않았다는 게 사실이라 해도 온 가족이 죽었는데 상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듯, M은 단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M은 자기 가족이 매장된 묘지에 도착했을 때 몹시 차분했고, 현장검증을 할 때도 침착했다.
M은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그의 죄목은 '1급살인'이 아니라 '과실치사'였다. 살인 동기(의도성)를 특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형법상 '1급살인'이면 M이 범죄자라서 유산상속권을 박탈당하지만, '과실치사'로 판명나면 생존자가 되어 M은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다. 사건 당시 M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M은 변호사에게 자기가 유산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처음부터 명확히 콕 집어 요구했다.
▲ 영화 스틸컷 요시 아르논(변호사)의 모습. |
ⓒ 넷플릭스 |
그러더니, 에피소드4에 이르러 그는 자기의 가설을 누설한다. 가설의 내용인즉 'M의 아버지의 아동학대'였다. 아동학대 피해자가 누나들이었는데, M은 누나들의 학대에 비해 자기만 홀로 왕자 같은 대접을 받는 상황에서 절대적 무력감을 느꼈기에 M이 온 가족을 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변호사는 법정에서 이 가설을 주장하고 증명했다. 그래서 M이 9년형 중 1/3을 감형받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런데 그 가설을 전격 신뢰하는 사람은 변호사 아르논, 그리고 아르논에게 그 가설을 전해듣고 M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여기자(루씨에 요벨), 감형을 선고한 판사에 국한될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M이 만일 학대당하는 누나를 폭력적 방식으로라도 구하고 싶었다면 가해자인 아버지만 죽이면 됐지, 누나는 왜 죽였는가? 그리고 엄마는 또 왜? 이 질문들 앞에선 그 가설이 좀 무력해지는 감이 없지 않다.
그런 데다 M의 가족들을 가깝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전적으로 그 가설이 부당하다고 반박한다. 아동학대가 아무리 비밀리에 오랫동안 진행된다 할지라도 (아이의 주눅이 든 태도라든가, 뭔가 표시가 나기 때문에) 이웃과 친지들에게 완전히 은폐되기는 어려운 까닭이다. 실제로 누나를 1년간 주1회 상담했던 학교 상담선생님조차 아동학대 정황이 없었다고 못박았다. 그렇게 자주, 그렇게 오래 상담을 했을 경우 평범한 아이가 자기의 학대상황을 암시적으로라도 발언하지 않았을 리 없다고 부연했다.
▲ 스틸컷 <더 모티브>: 앞의 남성은 성인이 된 M, 그리고 뒤에 보이는 여성이 루씨에 요벨 기자. |
ⓒ 넷플릭스 |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오래도록 M의 가정에 아동학대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그 집 식구들 중 아무도 살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설(심증)만 있을 뿐 물증도 없고, 아예 팩트 체크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다.
영화 관람을 마친 후, M의 살해동기에 대해 수도 없이 많은 질문들을 생각해 봤지만 뚜렷한 답을 얻기 어려웠다. 영화 관람 뒤에 다른 이들은 또 다른 심각한 질문들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모든 질문들에 대한 답 또한 <더 모티브>에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어쩌면 이 영화의 미덕일 수도 있고, 반대로 악덕일 수도 있다. 어떻든 중요한 건, 이 영화가 관객을 수동적 반응자로는 결코 대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런 류의 게임이 본인의 취향이라면 이 영화를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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