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아픔의 현장엔 언제나 '한교봉'이.. "더 낮은 곳 향할 것"

박지훈 2022. 1. 14.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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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재정비한 한국교회봉사단
한국교회봉사단(한교봉) 새 임원진이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사랑의교회에서 열린 ‘2022 나눔과 섬김의 비전 선포예배’에서 내빈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교봉을 이끌게 된 목회자들은 이날 발표한 ‘한국교회 나눔과 섬김의 비전 선언’을 통해 “어떠한 대가나 보상 없이 순수하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했다. 강민석 선임기자


2007년 12월 7일 오전 7시쯤이었다.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유조선이 해상 크레인과 충돌하면서 원유 1만2547㎘가 유출됐다. 국내에서 터진 사상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였다. 검은 바다를 마주한 어민들은 한숨만 내쉬었다. 해변은 검게 변했고 어장은 ‘기름밭’이 됐다. 전문가들은 태안 앞바다가 생태적으로 완전히 복구되기까지 10년 넘는 세월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당시 서해안에는 방제 작업에 참여하려는 자원봉사자의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리고 그 중심엔 한국교회가 있었다. 누군가는 기름 유출 사고를 즈음해 한국교회가 벌인 자원봉사 활동을 이렇게 평가하곤 한다. “한국교회사에서 3·1운동 이후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이었다고.

한국교회봉사단(한교봉)은 당시 자원봉사에서 한국교회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한교봉을 중심으로 한국교회는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 하나로 뭉쳤다. 가장 마지막까지 ‘현장’을 지켰다. 기름 유출 사고는 한국교회의 힘을 보여주면서 한교봉의 위상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한교봉, 새로운 출발선에 서다

한교봉이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사랑의교회에서 개최한 ‘2022 나눔과 섬김의 비전 선포예배’는 이 단체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행사였다. 예배는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 때 보여준 모습처럼 한국교회가 ‘나눔과 섬김’의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선포한 자리이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바닥까지 떨어진 한국교회의 위상을 봉사의 정신을 통해 끌어올릴 것을 다짐했다.

새 임원진에는 한국교회의 내로라하는 지도자들이 추대됐다. 김삼환(명성교회 원로) 목사가 총재를 맡았고 명예이사장에는 장종현(예장백석 총회장) 목사, 법인이사장엔 오정현(사랑의교회) 목사가 각각 임명됐다. 대표단장과 상임단장엔 각각 김태영(전 예장통합 총회장) 소강석(전 예장합동 총회장) 목사가 추대됐다. 이들은 ‘한국교회 나눔과 섬김의 비전 선언’도 발표했다.

설교자로 나선 김장환(극동방송 이사장) 목사는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 당시 한국교회가 벌인 일들을 언급하며 한교봉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했다. 김 목사는 “나 역시 그때 차출돼서 온종일 쭈그리고 앉아서 기름을 닦았다. 한교봉이 알려진 것도 그때부터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님은 ‘작은 자들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며 “교도소 재소자, 탈북자, 독거노인, 장애인 등이 우리 사회의 ‘작은 자’일 것이다. 우리는 이들을 섬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삼환 목사는 환영사를 통해 “개구리헤엄을 칠 때를 생각해보자. 두 팔로 물을 밀어내면 몸이 앞으로 쭉쭉 나간다. 한국교회의 두 팔은 봉사와 복음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교회의 이미지를 쇄신하는 방법은 봉사에 있다”며 “한교봉이 열심히 소외된 이들을 섬기면 코로나 후유증도 말끔히 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밖에 그간 대표회장을 맡아 한교봉을 이끈 정성진(크로스로드선교회 대표) 목사는 퇴임사를 통해 “교계의 힘찬 일꾼들이 한교봉을 맡아줘서 기쁜 마음으로 떠난다”고 했고, 오 목사는 “낮은 자세로 한교봉을 섬기겠다”고 말했다.

축사를 맡은 내빈들의 덕담과 당부도 눈길을 끌었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한국교회가 그간 사회 발전에 얼마나 공헌했는지 잘 알고 있다”며 “코로나의 그늘이 짙은 상황에서 한교봉이 소외와 단절을 겪는 이들에게 따뜻한 힘이 돼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해가 죽음의 바다가 됐을 때 한국교회는 그곳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며 “정부가 살필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에 한국교회가 있었다. 앞으로도 많은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지구촌의 아픔과 함께한 한교봉의 역사

한교봉은 한국교회가 사회 복지 분야에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봉사를 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다. 한국기독교사회복지협의회(2006년 12월 21일 설립)가 모태라고 할 수 있다. 한교봉은 ‘섬기면서 하나 되고 하나 되어 섬기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국내외에서 다양한 사역을 벌였다. 자연재해와 각종 사고로 신음하는 곳이 있다면 가장 먼저 현장으로 달려갔다.

한교봉의 역사를 살피면 지난 15년간 지구촌에서 벌어진 아픔의 현장을 되짚어보게 된다. 국내에서 이들은 원폭 피해자 가족, 위안부 피해 할머니, 쪽방촌 주민의 든든한 뒷배가 돼주었다. 태풍이 휩쓴 미얀마, 지진으로 삶의 터전이 사라졌던 아이티와 중국, 쓰나미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던 일본에서도 다양한 구호 사역을 통해 나눔을 실천했다.

한교봉이 창립 10주년을 맞아 2017년 발간한 자료집에는 한교봉 고문인 손인웅(덕수교회 원로) 목사의 글이 실려 있다. 손 목사는 한교봉을 “분열로 상처받은 한국교회의 일치 운동을 구현하는 연합의 심부름꾼”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한교봉은) 교회나 교단이 미처 살피지 못한 틈새의 이웃들을 발굴하는 첨병이었다”며 “한국 기독교의 사회적 섬김의 방향과 비전을 갈구하는 구도자로 그 역할을 다하고자 노력했다”고 적었다.

한교봉의 미래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교봉의 대표단장을 맡은 김태영 목사는 13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앞으로도 한교봉은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는 성경 말씀을 붙들고 낮은 곳으로 향할 것”이라며 “고통당하는 이들을 위해 ‘찾아가는 섬김’ 사역을 펼칠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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