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완의 시선] 대선 끝나면 세금 예고장 날아온다

주정완 입력 2022. 1. 14. 00:22 수정 2022. 1. 14.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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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완 논설위원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이제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대표적인 경제 이슈인 부동산을 보면 일단 주택가격 급등세는 꺾인 모습이다. 정부가 공식 통계로 사용하는 한국부동산원 보고서를 살펴보자. 지난 10일 기준으로 서울의 주간 아파트값 상승률은 0.02%에 그쳤다. 특히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에선 올해 들어 아파트값이 하락세로 돌아섰다. 더 늦으면 평생 집을 사지 못할 것으로 걱정한 청년 세대의 ‘패닉 바잉’(공황 매수)이 몰렸던 곳이다.

이런 흐름이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정당화하는 건 아니다. 문 대통령도 실패를 인정하고 사과한 마당에 기획재정부가 ‘경제 분야 36대 성과’에 주거안정을 끼워 넣은 건 낯뜨거운 일이다. 지난해 12월 ‘2022년 경제정책방향’ 발표에 이런 내용을 포함한 데 이어 최근에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자화자찬하는 내용으로 페이스북에 올렸다. 기재부 당국자들의 눈에는 집값과 전·월셋값 급등으로 고민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이삿짐을 싸야 했던 서민이 보이지 않나 보다.

「 3월에 아파트 공시가 인상 발표
현 정부 임기 내 절차 완료 예정
주택값 안정돼도 세금은 더 올라
대선주자들 ‘사탕 공약’ 주의해야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서 가장 큰 실책을 꼽으라면 과도한 세금과 ‘임대차 3법’을 꼽을 수 있다. 주택시장의 상식은 보유세를 많이 올리면 거래세는 내리는 것이다. 보유세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집을 팔려고 내놓게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정부는 보유세와 거래세를 한꺼번에 껑충 올려버렸다. 결과적으로 집을 사기도, 갖고 있기도, 팔기도 어려운 상황을 초래했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최근 유튜브에서 전한 청와대 회의의 풍경은 충격적이다. 그는 “대통령 앞에서 청와대 핵심이 양도차익 100% 과세를 언급하자 고성이 오가며 싸웠다”고 소개했다. 부동산 시장의 작동 원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이념만 앞세워 고집을 부린 게 화를 자초했다는 얘기다.

대선 후보들은 이렇게 무조건 조이고 틀어막는 식의 부동산 세금은 안 된다고 보는 듯하다. 세부 내용에선 차이가 있지만 시장의 작동 원리를 고려한 조세 정책은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대선 이후를 기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함정’을 주의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조세법률주의에 따라 부동산 세금을 완화하려면 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줘야 한다. ‘규제 본능’의 거대 여당이 대선 이후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설지는 미지수다. 현재 국회 의석수를 고려하면 야당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해도 당장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더 큰 문제는 대선 직후 정부가 발표할 아파트 공시가격이다. 국토교통부는 매년 3월 중순 이후 아파트 등 공동주택 공시가격 안을 공개한다. 이후 주택 소유자와 지방자치단체 등의 의견을 들은 뒤 4월 말 공시가격을 결정한다. 올해의 공시가격 결정권은 오는 5월 출범하는 새 정부가 아니라 현 정부에 있다는 얘기다. 공시가격이 오르면 재산세·종합부동산세 등도 따라 오른다.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등에도 큰 영향을 준다. 당장 세금 고지서가 날아오는 건 아니지만 공시가격 인상은 세금 인상 예고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이미 한참 전에 올해 아파트 공시가격을 대폭 인상하겠다고 예고했다. 2020년 11월 김현미 장관 시절에 국토부가 발표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이다. 현실화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표현이고 사실은 인상이다. 2020년 시세의 69% 수준이던 아파트 공시가격을 2030년에는 90%까지 올린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집값이 전혀 오르지 않고 안정되더라도 공시가격은 꾸준히 오를 수밖에 없다.

현실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해 서울의 아파트 공시가격은 19.9% 올랐다. 2007년 이후 14년 만에 가장 높은 인상률이다. 현 정부가 공시가격 결정권을 쥐기 시작한 2018년 이후 4년 연속 두 자릿수로 올렸다. 이미 국토부는 올해 서울에서 단독주택(10.56%)과 토지(11.21%)의 공시가격을 모두 두 자릿수로 올리겠다고 예고했다. 이런 마당에 아파트 공시가격을 올리지 않을 리가 없다. 오세훈 시장의 서울시가 공시가격 인상 속도가 과도하다며 낮춰달라고 요청했지만 국토부가 받아들일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국토부는 오는 25일 표준지·표준주택 가격을 결정해 공시할 예정이다.

공시가격 논란이 커지자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올해 보유세를 매기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기발한 발상이지만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럴 때일수록 납세자들은 얄팍한 셈법을 앞세운 정치권의 ‘사탕발림’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주정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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