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주노동자·장애인.. 통계로 본 불평등

김남중 2022. 1. 13.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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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불평등한 선진국
박재용 지음
북루덴스, 464쪽, 1만8000원


여성가족부를 해제하거나 양성평등부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한국에서 남녀간 평등은 이미 충분히 이뤄졌으며, 젊은 층에서는 남성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게 이 주장의 근거다. 과연 그런가.

2009년 이후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남성보다 높아졌다. 하지만 2018년 조사에 따르면 여성은 전체적으로 남성이 받는 임금의 64.8%를 받고 있다. 20대엔 여성 임금이 남성의 92.1%로 꽤 근접하지만 30대가 되면 80%, 40대는 62.5%, 50대는 52.8%로 뚝뚝 떨어진다.

같은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어도 남성이 여성보다 임금이 높다. 2014년 기준 정규직 남성은 평균 326만원을 받는데 정규직 여성은 219만원을 받는다. 비정규직 남성은 평균 176만원을 받는데 비정규직 여성은 117만원을 받는다.

정규직의 성별 분포도 보자. 남성의 정규직 비율은 45세까지 일정하게 유지되는 반면, 여성은 20대 후반에 최고로 올라갔다가 30세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든다. 출산과 자녀 육아기를 거친 여성이 다시 노동을 시작할 때 제공되는 일자리가 대부분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군복무 때문에 취업과 커리어에서 손해를 본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성들은 임신과 육아 때문에 손해를 본다. 여전히 많은 여성이 육아를 위해 직장을 그만둔다. 2018년 통계를 보면 육아휴직을 쓴 뒤 회사에 복귀하지 않은 여성 비율은 300∼999인 대기업에선 9.6%, 1000명 이상 대기업은 2.7%였지만 100인 이하 기업은 36.3%나 됐다.

현재 주요 국가 중에서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20%가 안 되는 곳은 한국과 일본밖에 없다. 2급 이상 고위공무원 중 여성 비율은 5.5%에 불과하다.

2018년 금융감독원 공시 자료를 분석한 결과, 30대 기업 남녀 임직원 비율은 81대 19로 나타났다. 임원 비율만 보면 여성은 평균 4% 수준이다. 신규 채용은 어떨까. 2013년 보도된 자료에 의하면 30대 기업의 신규 채용에서 여성 비율은 31.8%로 집계됐다. 당시 300인 이상 대기업 사업장의 평균 월 급여는 429만원이었다. 하지만 30대 기업에 다니는 여성 중 350만원 이상 급여를 받는 비율은 16.5%에 불과했다.

가장 선망하는 일자리인 대기업은 남성들에게 유리한 조건이다. 20대 여성들은 그래서 시험을 통해 쟁취할 수 있는 공무원 등의 일자리에 매진하게 된다. 이들과 시험을 통해 경쟁하는 20대 남성은 여성을 경쟁자로만 여기게 된다. 하지만 ‘이대남’은 30대 이후 벌어지는 여성들의 경력단절 문제는 보지 못하고 있다.

통계는 윤곽을 보여준다. 정확한 통계를 갖고 있다면 소모적인 논란을 피할 수 있다. 통계는 또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을 드러내고 익숙한 얘기를 재고하게 만든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통계를 보자.

외국인 노동자는 132만명 정도로 전체 노동자의 7% 수준이다. 한국 원양어선 선원의 73.3%가 외국인 노동자이며 누군가를 고용해 농사일을 시키는 경우 3분의 1이 외국인 노동자다.

생산직에 종사하는 이주 노동자를 보면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비중이 70.5%이다. 주당 50∼60시간과 60시간 이상 일하는 비율이 각각 21.0%, 14.4%다. 내국인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 격차는 OECD 22개국에서 한국이 가장 크다. OECD 평균은 1.15배였으나 한국은 1.55배였다.

이런 통계는 이주 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돈 벌어 간다거나 우리가 그들을 먹여 살린다는 얘기를 돌아보게 한다. 그들은 한국인이 기피하는 산업현장에서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받으며 장시간 노동으로 우리를 먹여 살린다고 할 수 있다. 이주 노동자가 없으면 당장 어선이 뜨지 못하고 농산물을 수확할 수 없고 작은 공장들은 문을 닫아야 한다.


‘불평등한 선진국’은 통계를 통해 한국 사회의 현실을 그려낸다. 통계와 수치를 통해 세계를 설명하는 작업을 해온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나 스티븐 핑커의 ‘다시 계몽’을 연상시키는 책이다. ‘1.5도, 생존을 위한 멈춤’ ‘웰컴 투 사이언스 월드’ 등 주목할만한 과학 저술을 발표해온 박재용씨가 각종 통계를 동원해 사회 분석에 도전했다.

이 책은 한국의 현실, 그중에서도 불평등에 초점을 맞췄다. 비정규직, 청년, 외국인 노동자, 여성, 장애인, 노인, 지방, 모자가정, 노숙인 등의 현실을 데이터로 들여다본다. 불평등으로 일그러진 대한민국의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경제규모로 보면 분명 선진국이지만 선진국 시민의 삶을 사는 인구는 상위 20% 정도에 불과하다. 국가재정 건정성은 최상위지만 공적 지출은 바닥이다.

노인들은 평등 정책에 반대하는 경우가 많지만 불평등의 가장 큰 피해자 중 하나다. 우리나라 노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44.0%로 OECD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다른 나라 노인 빈곤율은 미국(23.1%)을 제외하고 모두 20%를 넘지 않는다. 여성 노인의 빈곤율은 더 심각하다. 2019년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금 수급률을 보면 남성은 71%인데, 여성은 35.9%밖에 되지 않는다.

자살률 세계 1위라는 부끄러운 기록도 노인 빈곤이 주요 원인이다. 85세 이상 우리나라 노인층의 10만명당 자살자 수 67.4명은 유럽연합의 24.8명의 2.7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책을 읽으며 데이터를 보면 장애인, 비정규직, 이주 여성, 모자가정 등이 남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얘기임을 알게 된다. 등록 장애인은 261만8000명(2019년 기준)으로 전체 국민의 약 20분의 1이다. 장애인 비율은 연령이 높을수록 더 늘어나 60대에선 10명 중 1명이, 80대 이상에서는 3명 중 1명이 장애인이다. 전체 가구 중 장애인이 있는 가구는 15.91%다. 장애인과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건 우리 가족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비정규직도 마찬가지다. 무기계약직을 포함하면 비정규직은 874만명으로 전체 임금 노동자의 44.5%에 이른다. 특수고용 노동자까지 포함하면 비정규직은 절반이 넘는다. 일하는 사람 둘 중 하나가 비정규직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줄이는 것은 남을 위한 일이 아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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