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못해 괴로운 남자의 마지막 소원
[이정희 기자]
요즘은 사주도 트렌디하다. 전화로 상담도 해주고, 심지어 앱도 있다. 젊은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거리 곳곳에 타로 상점이 눈에 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취업준비의 기로에서 이런 운명론은 종종 의지처가 되기도 한다. 나 역시 답답할 때는 타로 카드를 펼쳐보거나, 사주 앱을 깔아 현실의 지렛대를 삼아볼까 한다.
그러다 재밌는 결과를 만났다. '당신의 전생은?'이라는 문항이었는데 혹해서 클릭을 했다. 과연 나의 전생은? 성균관 유생이었단다. 이어진 내용이 가관이다. 성균관 유생이 된 것까지는 좋았는데, 공부에 전념하는 대신, 음주 가무, 도박에 빠진 이 유생은 가산을 탕진하고, 그 여파로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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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가살 |
ⓒ tvn |
'연기론'의 판타지
바로 이런 연기론(모든 존재를 인연에 의해 일어난 것으로 보는 불교 교리의 핵심적인 개념)에 근거한 한 편의 판타지 월드가 tvN의 <불가살>에서 펼쳐지고 있다.
시청률면에서는 아쉽지만, 드라마는 600년이란 세월 동안 죽지 않은 '영생'의 존재로 타임슬립 판타지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목을 그어 피가 철철 흘러도 금세 멈추는 죽지 않는 존재, 불가살 단활(이진욱 분)에게 죽지 않음은 '업'이 주는 고행이다. 진짜 불가살을 죽여 저주를 푼다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죽고 싶다'는 그의 답이 그의 처지를 말해준다.
불가살인데 원래 불가살을 찾는다는 이 복잡한 이야기를 위해 드라마는 '귀물'이 판을 쳤다던 600년 전 전쟁과 기아, 그리고 귀물에 시달리는 고려라는 전사(前史)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불가살의 저주를 받았다는 한 아이가 등장한다. 저주를 받았다는 무녀의 말 한 마디로 어미는 목을 매었고, 아비는 아이를 버렸다. 당연히 마을 사람들은 아이를 피하고 저주했다. 그렇게 사람 취급도 못 받던 아이를 장수였던 단극(정진영 분)이 구했고 '활'이라는 이름을 주고 양자로 삼았다.
자라서 양아버지의 수하에서 그 누구보다 용맹하게 '귀물' 사냥에 앞장서던 단활, 하지만 족쇄같던 저주를 피할 수 없었다. 단극의 딸과 혼인했지만 저주 때문인지 아들은 눈을 잃었고, 딸은 낳자마자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비극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불가살은 결국 활의 가족을 모두 몰살했다. 그리고 아직은 인간이었던 그의 혼을 빼앗아 불가살로 만들어 버린다.
드라마는 600년 동안 죽지 못한 채 여인을 찾아 헤매는 단활을 중심으로, 그가 찾는 환생한 여인 민상운과 매번 그녀를 먼저 죽이려는 또 다른 불가살 검은 구멍 옥을태(이준 분)가 대립각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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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가살 |
ⓒ tvn |
전설 속 캐릭터들의 환생
<불가살>에는 그슨새를 비롯하여 식탐을 주체하지 못해 사람을 먹는 조마구, 불을 지르는 갑산귀, 물속에서 사람을 끌어당겨 죽이는 터럭손, 머리를 짖눌러 환상을 불러일으켜 죽이는 두억시니 등 우리 전통 설화에서 등장하던 '귀물'들이 등장한다.
단활이 전생에 잃은 가족들이 한 명씩 한 명씩 그의 주변에 나타난다. 그가 불가살임에도 사람의 피를 먹지 않게 만든, 그를 유일하게 사람답게 대해준 양아버지 단극이 전직 형사 권호열(정진영 분)로, 그를 원망하며 죽어간 아내 단솔이 민상운의 동생 민지호(공승연 분)인 식이다. 그들은 600년이 흘러 다시 단활의 주변에 모여든다. 과거의 업이 만들어 낸 인연의 굴레인 것이다.
민상운만 잡아없애면 600년 동안 그를 괴롭혀온 생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워질 것만 같던 단활, 하지만 그가 없앤 귀물들이 그의 혼을 가진 민상운을 쫓고, 과거의 인연들이 그 주변에 모여들자 삶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이처럼 <불가살>의 세계관은 신선하고, 내러티브는 흥미진진하다. 그런데 아쉽게도 막상 드라마를 보면 전개가 답답하다는 인상을 준다. 무엇보다, 첫 회에 선언된 불가살에 저주받은 아이라던가, 불가살에 의해 몰살된 가족처럼 이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기본적 명제인 포악한 불가살의 횡포에 대해 좀처럼 드라마는 해명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주인공 단활은 자신에게 내려진 저주와, 자신과 자기 가족에게 닥친 불운에 대해 한결같이 맹목적이다.
그러다 보니 주인공 캐릭터가 단선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단선적인 건 주인공만이 아니다. 전생의 업을 가지고 태어난 등장인물들은 마치 전생의 마리오네트(실로 매달아 조작하는 인형극)인 것처럼 행동한다. 전생과 환생이 빚어낸 업의 콜라보라는 세계관은 흥미진진하지만 좀처럼 전생의 업에서 한 발도 나서지 못하는 캐릭터들은 답답하다.
드라마 8회, 그래도 단활과 민상운 사이에 감정적 교류가 이뤄지며 이들은 비로소 전생의 그림자로부터 한 발 내딛는다. 이들의 용기가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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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5252-jh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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