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이 왜 성인男 위로하나" 청원도..퍼지는 위문편지 논란

이후연 2022. 1. 13.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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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서 확산하고 있는 논란의 위문편지. [사진 온라인커뮤니티 캡처]

최근 불거진 ‘여고생 군 장병 위문편지 논란’이 학생 개인 일탈을 넘어 젠더갈등, 군사 문화에 대한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위문편지 내용이 부적절하고, 군인들이 받았을 마음의 상처와 허탈함에는 대다수가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군 위문편지가 교육적으로 올바른지, 여고생이 성인 남성에게 위문편지를 보내는 게 적절한지 등은 여전히 논란이다.

군 위문편지 논란은 최근 한 장병이 A여고 학생이 보낸 편지 내용을 공개하며 시작됐다. 편지에는 ‘인생에 시련이 많을텐데 이 정도는 이겨줘야 사나이’ ‘눈 오면 열심히 치우세요’ 등 군인을 조롱하는 듯한 내용이 담겼다.

A여고 측은 전날(12일) 학교 홈페이지에 공식적으로 사과문을 올렸다. 학교 측은 “위문편지 내용 중 일부 부적절한 표현으로 인해 본래 취지와 의미가 심하게 왜곡된 점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A여고는 1906년 설립된 사립학교로 1953년부터 결연을 맺은 군 부대에 1961년부터 위문편지를 보냈으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위문방문과 병영캠프 체험도 진행했다.


"위문편지, 롤링페이퍼로 대체 고민 중"


A여고 홈페이지 캡쳐
논란에도 불구하고 A여고는 군인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A여고 교장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안 그래도 아이들과 편지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감사 표현을 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며 “61년 동안 이어져 온 전통인 만큼, 롤링페이퍼 등 다른 방식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내용이 사전에 걸러지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학생인권, 개인정보보호 문제 때문에 일기는 물론, 편지도 내용물을 교사가 볼 수 없는 구조"라며 "그래서 사전에 교육을 철저히 해 왔는데, 문제가 생겨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대착오적" vs "감사하는 마음 표현"


교육계에선 학생의 군 위문편지 유지 여부에 대해 입장이 갈린다. 군 위문편지는 학교 또는 교사의 재량에 따라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다. 서울시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군에 정기적으로 위문편지를 보내는 학교는 드물다”며 “이미 대다수의 학교 현장에선 젠더감수성에도 맞지 않는 데다가 대부분 반강제적로 해 오던 일이라 시대착오적이란 이유로 사라진 지 오래”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교육청 관계자도 “군사문화라는 비판적 시선이 많아 공립학교에서는 군대 관련 프로그램 자체가 많이 사라졌다”며 “학교에 프로그램을 존치 여부를 강제할 순 없지만, 구시대적으로 비춰지긴 한다”고 말했다.

전대원 실천교육교사모임 대변인은 “사립학교가 성적, 대입 등 학업 관련한 변화에는 매우 기민하게 반응하는데 그 외 내부 행정 프로그램은 변화가 거의 없다”며 “구성원이 잘 안 바뀌다보니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관습적으로 해 오던 행사를 계속 진행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여고 위문편지 중단' 국민청원, 10만명 넘어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쳐
여고의 군 위문편지 작성을 중단해달라는 요구도 거세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12일 ‘여자고등학교에서 강요하는 위문편지를 금지해달라’는 청원이 게시됐고, 13일 오후 현재 약 10만2000명이 동의했다. 청원인은 “이번에 위문편지가 강요된 학교 학생들에게 배포된 위문편지 주의점에는 ‘개인정보를 노출시키면 심각한 피해를 볼 수 있음’이라고 적혀 있다”며 “미성년자에 불과한 여학생들이 성인남성을 위로한다는 편지를 억지로 쓴다는 것이 얼마나 부적절한지 잘 아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위문편지가 교육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군인뿐 아니라 소방의 날에는 소방관에게, 경찰의 날에는 경찰관에게 아이들이 감사편지를 써서 보내는데, 다른 누군가를 지켜주는 행동이 고귀하고 중요하다는 걸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했다. 그는 “편지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감사함 없이 억지로 쓰거나 봉사활동 점수 쉽게 따기 위한 편법 정도로 치부되는 게 문제이지 않나 싶다”고 지적했다.

온라인에서는 여전히 A여고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한 공격적인 발언이 이어지고 있으며, 일부 학생의 신상 정보도 유출됐다. 한 지역 학원은 A여고 학생은 원생으로 받지 않겠다고까지 밝혔다. 서울시교육청과 A여고 측은 불안감을 호소하는 학생들에게 상담센터를 연결해주는 등 보호조치에 나선 상황이다. 한 A여고 재학생은 “대한민국 군대가 얼마나 힘들고, 군인분들이 얼마나 고생하시는지 잘 알고 있다”며“일부 학생의 의견으로 학교 전체를 매도하지 말아주셨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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