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2번 외치고도..28살 소령, 민가 피하려고 조종간 안놨다
지난 11일 추락 사고로 순직한 F-5E 전투기 조종사가 민가를 피하기 위해 조종간을 끝까지 놓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공군은 “사고 조사 결과, 고 심정민 소령(28, 대위에서 1계급 특진 추서)이 민간인 피해를 막기 위해 이런 행동을 했던 정황이 포착됐다”고 밝혔다.
사고기 추락 지점은 주택 몇 채가 있는 마을과 불과 100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당일 사고기는 수원기지를 이륙한지 1분여 만에 긴급 상황을 맞았다.
먼저 이륙 후 상승해 좌측으로 선회하던 중 항공기 좌우 엔진 화재 경고등이 켜졌다. 심 소령은 상황을 보고하고 긴급 착륙을 시도하려 했지만, 이번엔 조종 계통에 문제가 생겼다. 이내 기체는 말을 듣지 않고 급강하했다는 게 공군의 설명이다.
공군 관계자는 “당시 기체가 급강하하던 상태에서 심 소령이 조종간을 끝까지 놓지 않은 채 가쁜 호흡을 한 정황이 비행 자동 기록 장치에 고스란히 담겼다”고 전했다. 심 소령은 마지막 관제탑 교신에서 비상탈출을 뜻하는 ‘이젝트(Eject)’를 두 번 외쳤지만, 탈출에 실패해 결국 숨졌다.
공군은 이같이 사고기 동선을 공개하면서 기체 결함 여부와 화재 원인 등은 종합적으로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심 소령은 공군사관학교 64기로 지난 2016년에 임관해 5년간 F-5 기종을 조종해왔다. 현재 수원ㆍ강릉기지에서 운용 중인 80여대의 F-5E/F 전투기는 1970년대부터 도입하기 시작한 노후화 기종이다. 이번 사고기는 1980년대 초·중반 대한항공이 국내에서 면허 생산했던 ‘제공호(KF-5E)’라고 공군은 밝혔다.
군 안팎에선 KF-21 등 차기 전투기 도입사업이 늦어지면서 F-5의 도태 시기를 연장해가며 무리하게 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이번 사고를 포함해 2000년대 이후 추락하거나 충돌한 사고기만 15대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조종사 16명이 순직했다.
공군에 따르면 심 소령은 지난해 11월 호국훈련 유공으로 표창을 받는 등 기량이 뛰어난 조종사였다. 생도 시절 우수한 성적으로 비행훈련을 마쳤으며, 매사 헌신적이어서 특히 선배들의 신망이 두터웠다고 한다. 공군 관계자는 "비행 기량은 물론 어렵고 궂은 일에도 솔선수범하는 동료였다"고 말했다.
심 소령은 결혼한 지 1년이 조금 넘은 신혼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SNS를 통해 심 소령을 애도했다. 문 대통령은 "끝까지 조종간을 붙잡고 민가를 피한 고인의 살신성인은 '위국헌신 군인본분'의 표상으로 언제나 우리 군의 귀감이 될 것"이라고 적었다.
폴 라캐머러 한미연합사령관(유엔군·주한미군사령관 겸직)도 조의했다. 이날 라캐머러 사령관은 "유엔사·연합사·주한미군을 대표해 순직한 대한민국 공군 조종사의 가족과 친지 그리고 공군에 깊은 애도를 전한다"며 "조국과 국민을 수호하다 순직한 그의 희생을 어떤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심 소령의 영결식은 오는 14일 오전 9시 소속부대인 공군 제10전투비행단에서 엄수된다.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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