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2번 외치고도..28살 소령, 민가 피하려고 조종간 안놨다

김상진 입력 2022. 1. 13. 10:45 수정 2022. 1. 1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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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추락 사고로 순직한 F-5E 전투기 조종사가 민가를 피하기 위해 조종간을 끝까지 놓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공군은 “사고 조사 결과, 고 심정민 소령(28, 대위에서 1계급 특진 추서)이 민간인 피해를 막기 위해 이런 행동을 했던 정황이 포착됐다”고 밝혔다.

13일 공군은 조종사 고(故) 심정민(28) 소령이 지난 11일 기체 추락 당시 민가의 피해를 막고자 죽음의 순간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고 사투를 벌였던 정황이 사고 조사에서 드러났다고 밝혔다. 사진은 순직한 고 심정민 소령. 사진 공군

사고기 추락 지점은 주택 몇 채가 있는 마을과 불과 100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당일 사고기는 수원기지를 이륙한지 1분여 만에 긴급 상황을 맞았다.

먼저 이륙 후 상승해 좌측으로 선회하던 중 항공기 좌우 엔진 화재 경고등이 켜졌다. 심 소령은 상황을 보고하고 긴급 착륙을 시도하려 했지만, 이번엔 조종 계통에 문제가 생겼다. 이내 기체는 말을 듣지 않고 급강하했다는 게 공군의 설명이다.

공군 관계자는 “당시 기체가 급강하하던 상태에서 심 소령이 조종간을 끝까지 놓지 않은 채 가쁜 호흡을 한 정황이 비행 자동 기록 장치에 고스란히 담겼다”고 전했다. 심 소령은 마지막 관제탑 교신에서 비상탈출을 뜻하는 ‘이젝트(Eject)’를 두 번 외쳤지만, 탈출에 실패해 결국 숨졌다.

공군은 이같이 사고기 동선을 공개하면서 기체 결함 여부와 화재 원인 등은 종합적으로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심 소령은 공군사관학교 64기로 지난 2016년에 임관해 5년간 F-5 기종을 조종해왔다. 현재 수원ㆍ강릉기지에서 운용 중인 80여대의 F-5E/F 전투기는 1970년대부터 도입하기 시작한 노후화 기종이다. 이번 사고기는 1980년대 초·중반 대한항공이 국내에서 면허 생산했던 ‘제공호(KF-5E)’라고 공군은 밝혔다.

지난 11일 경기도 화성의 야산에 추락한 F-5E 전투기는 우리 공군이 운용 중인 가장 오래된 전투기 기종 중 하나다. 사진은 훈련 중인 F-5E 전투기. 연합뉴스

군 안팎에선 KF-21 등 차기 전투기 도입사업이 늦어지면서 F-5의 도태 시기를 연장해가며 무리하게 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이번 사고를 포함해 2000년대 이후 추락하거나 충돌한 사고기만 15대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조종사 16명이 순직했다.

공군에 따르면 심 소령은 지난해 11월 호국훈련 유공으로 표창을 받는 등 기량이 뛰어난 조종사였다. 생도 시절 우수한 성적으로 비행훈련을 마쳤으며, 매사 헌신적이어서 특히 선배들의 신망이 두터웠다고 한다. 공군 관계자는 "비행 기량은 물론 어렵고 궂은 일에도 솔선수범하는 동료였다"고 말했다.

심 소령은 결혼한 지 1년이 조금 넘은 신혼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SNS를 통해 심 소령을 애도했다. 문 대통령은 "끝까지 조종간을 붙잡고 민가를 피한 고인의 살신성인은 '위국헌신 군인본분'의 표상으로 언제나 우리 군의 귀감이 될 것"이라고 적었다.

폴 라캐머러 한미연합사령관(유엔군·주한미군사령관 겸직)도 조의했다. 이날 라캐머러 사령관은 "유엔사·연합사·주한미군을 대표해 순직한 대한민국 공군 조종사의 가족과 친지 그리고 공군에 깊은 애도를 전한다"며 "조국과 국민을 수호하다 순직한 그의 희생을 어떤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심 소령의 영결식은 오는 14일 오전 9시 소속부대인 공군 제10전투비행단에서 엄수된다.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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