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재기..이젠 적벽대전 복수전?

입력 2022. 1. 13. 08:39 수정 2022. 1. 1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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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한 박사의 '당신이 모르는 三國志'] (37)
조조의 고민
‘촉’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군웅들이 중원 서쪽으로 몰려들 무렵, 손권은 정반대 행보를 보였다. 그는 동쪽에 집중했다. 유비와 협정을 맺어 함께 조조의 형주 진출을 견제하면서 합비를 건너 서주로 침공해 산동 반도로 갈 계획을 세웠다. 잘하면 요동까지 점령할 수 있는 전략이면서, 중원 동쪽 일대를 모두 평정하게 된다. 이것은 손권이 유비와 불가침 협정을 맺어 촉 침공을 구경만 하고, 형주 침공을 미뤘던 이유를 설명해준다.

그러나 손권이 합비로 치고 올라가기는 쉽지 않았다. 조조는 이미 손권의 전략을 충분히 예측하고 있었다. 서쪽에 집중하면서도 합비성의 방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오나라 군대로 육지에서 조조군을 상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 조조의 회복력이 놀랍도록 빨랐다. 회복했다기보다는 상처를 싸매고, 백성의 고통을 강요하면서 만신창이 몸을 일으킨 것이지만, 그것도 능력은 능력이다. 일반적인 지도자는 백성을 쥐어짜도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조조의 괴물 같은 회복력의 배경에는 탄탄한 관료제와 재능 우선주의 인재 등용이 있었다. 고대 국가였지만 조조가 이끌던 위나라의 행정력은 다른 지역에 비해 차원이 달랐다. 같은 정책이라도 관료제의 기초가 제일 오래되고 탄탄한 위나라 행정력이 제일 빳빳하고 효과적이었다.

인재를 뽑을 때는 재능을 우선시했다. 국력이 회복될 조짐이 보이자 조조는 대대적인 인재 등용 명령을 내렸다. 이때 이런 말을 한다.

“꼭 청렴한 선비가 나라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능력은 있어도 도덕적 비난을 받아 침체된 인재를 찾아라. 오직 재능만이 추천 기준이다. 그동안 추천을 받지 못하고 (사회적 제약 탓에)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 소국에 사는 인재를 찾아서 추천하라.”

조조는 시대의 변화를 정확하게 읽었다. 난세에는 배경보다 능력이 중요하다. 실제 프랑스 대혁명 당시 귀족이라는 이유로 장교가 된 이들은 능력으로 장교 자리에 오른 평민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조조는 삼국 전쟁을 시작하기 전부터 역사의 흐름, 시대 변화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미 수많은 전투에서 지겹도록 체험을 했다. 삼국 시대는 이제 재능을 갖춘 사람만 살아남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여기서 말하는 재능은 시험 성적이 아니다. 난세에 뛰어들 용기, 의지, 실천력이 관건이다.

21세기 우리 사회에서도 하지 못하는 ‘능력 우선주의 등용’을 조조는 실천했다. 우리가 조조의 정책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계량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사회가 한순간에 가문과 문벌을 타파하고 실력 위주 사회로 바뀐 것도 아니다. 조조가 죽고 위나라가 망할 때까지도 정계와 군부는 2세, 3세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상층부의 모습이다. 문벌 사회란 실력자가 전혀 출세 못하는 사회가 아니다. 실력자 승진 한계선의 문제다. 그들이 비록 승진에 한계가 확실하고, 2선, 3선에 몰려 있다 해도, 동시대 다른 나라에 비해 2선, 3선의 건강성과 역동성이 다르다면 경쟁에서 승리한다. 조조는 난세의 흐름에 올라타 성공하고자 하는 자들의 욕망을 정확히 읽었고 이들을 적극 등용했다. 적벽대전에서 궤멸적인 피해를 입고서도 3년 만에 재기에 성공한 배경이다.

조조의 괴물 같은 회복력에 골치가 아파진 것은 손권이었다. 물론 손권도 대단한 지도자다. 서쪽에 판을 벌려주고 그 틈에 동쪽을 치는 전략을 동시에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문제는 상대였다. 조조는 손권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자였다. 만약 위나라 지도자가 조조가 아니었다면, 손권의 계책은 정확히 적중했을지도 모른다.

▶적벽대전 이후 공백이 깨지다, 다시 시작하는 전쟁

211년 봄, 북방에서 반란이 발생했다. 적벽대전 소식이 전해진 후다. 거리가 있었던 탓에 패전 소식이 다소 늦게 전해졌다. 태원과 대릉(지금의 허베이·랴오닝성 일대) 등 조조가 요서 정벌을 통해 다져놨던 지역에서 반란이 터진다. 조조가 약해졌다고 생각한 유목 민족이 반기를 들었다. 큰 위기일 수도 있는데, 조조는 하후연과 서황을 파견해 신속하게 진압에 성공했다. 이런 유목 부족의 반란은 두 가지가 관건이다. 주변 부족이 얼마나 빠르게 호응하느냐, 진압군이 얼마나 신속하고 안전하게 불을 끄느냐다.

삼국지 위서 하후연전과 서황전에 의하면 하후연은 서황을 대동하고, 20여개 진영을 함락했다. 반란군 수뇌였던 대릉성을 포위한 뒤 공략해서 반란군 수뇌였던 상요를 죽였다.

이 기록은 짧지만 상요를 포위해 달아나지 못하게 하고 죽였다는 것은 강력하고 빠르게 반란은 진압했음을 말해준다. 과거 요서 기병을 제압했던 조조의 기병 부대는 여전히 강력하고 빨랐다.

뒷마당에서 일어난 소란은 진압했지만 대전략을 두고 조조는 여전히 고민이 컸다. 동쪽 유수를 건너 오를 침공할 것인가? 형주에 증원군을 보내 유비를 없앨까? 삼국지의 한 축이지만, 아직 등장하지 않은 서쪽 촉을 평정해 삼국 정립의 가능성을 없애버려야 하나?

통일 중국을 위해서는 모두가 치러야 할 전쟁이지만 우선순위가 문제였다. 보통의 리더는 이럴 때 복잡한 상황판을 들여다보고 또 살펴보다 가장 위험이 덜한 방법을 찾는다. 위험의 개수를 세는 리더도 있다. “A안은 위험이 3가지입니다. B안은 1가지입니다” “그래 그러면 B안이 낫겠네” 하는 식이다. 조조가 다른 이유는 이런 방정식에 말려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조 같은 리더는 당위성을 본다. ‘무엇이 당장 해야 할 일인가’를 고려했다. 안전한 일보다는 ‘자신에게 필요한 일’을 우선순위로 뒀다. 예상 가능한 ‘위험’은 장애물로 보지 않았다. 그에게 계산되는 위험은 불안 요소가 아니다. 위험(risk)이 아닌 과업(work)이다. 격파해야 할 장애물이자 격파할 방법을 찾아야 할 도전 요소일 뿐이다.

당위성을 두고 조조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동쪽을 노리는 손권의 위험, 형주의 반을 타고 앉은 유비의 성장, 모두가 당장 출병해야 하는 이유였다. 과거 연주에서 사방에 적을 두고 도겸, 여포와 싸울 때가 더 쉬웠다고 한탄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방법을 찾는 게 문제였지 우선순위는 분명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무한정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사이에 적은 성장하고, 돌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늘어난다는 것은 좋지 않은 신호다. 어쨌든 조조는 주도권을 쥐어야 속이 풀리는 성격이다. 기상이 좋지 않다고 웅크리고 앉아서 날씨가 호전되기를 기다리는 스타일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복잡하던 조조의 머리를 가볍게 해준 것은 ‘돌발 상황’이었다. 211년 상요의 반란을 진압하는 사이에 장로가 한중을 제패했다. 조조는 즉시 탁상을 엎었다. 조조의 최우선 목표는 한중으로 정해졌다. 특급 전령이 태항산맥을 넘어 산서성에 주둔 중인 하후연의 군단을 향해 달려갔다. “즉시 군단을 이끌고 회군하라, 한중으로 간다.”

적벽대전 후 3년 만에 천하의 지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임용한 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 / 일러스트 : 정윤정]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42호 (2022.01.12~2021.01.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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