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렁증 극복하고 명품조연 오른 '패셔니스타', 이한위

입력 2022. 1. 13. 08:39 수정 2022. 1. 15.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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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경의 '배우 열전'] (7)
'감초의 매력, 끼와 낯가림 사이' 이한위
그에게는 내 나름의 동지 의식 같은 게 있다. 동년배로서 느끼는 공감대가 많아서일 것이다. 안성맞춤인 역할뿐 아니라 어떤 역이든 필요해서 도움을 청하면 따지지 않고 와줄 것이라는, 작가로서 배우에 대한 믿음 같은, 그런 것.

‘우리가 남인가요’라는 일일 연속극에 나이트 제비 역할로 출연한 것이 첫 인연이었다. 몇 회 나오지 않는 배역이었기에 그때는 대화 한번 나눌 기회가 없었다. 본격적인 인연은 ‘백만송이 장미’부터다. 그는 주인공들이 근무하는 회사 부서의 팀장 역할이었다. 고정 배역이어서 만날 기회가 많았다. 어느 날 대본 연습 시간에 맞춰 방송국으로 갔더니 녹화가 아직 덜 끝나 있었다. 대기실에서 대본을 들고 긴장한 표정의 이한위를 볼 수 있었다. 대사도 많지 않은 데다 이미 연기 경력 십수 년의 베테랑이 왜 저렇게 긴장하나 좀 의아했다. 혹시 대사가 입에 붙지 않아 그런가 싶어 물었더니, 카메라 울렁증이 있다는 게 아닌가. 대본 연습이나 회식 자리의 그는 외향적인 사람으로 보였고 말을 재미나게 잘하는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카메라 울렁증이라니, 선뜻 납득되지 않았다.

‘유리의 성’과 ‘오늘만 같아라’를 같이하면서 울렁증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는 선천적으로 낯가림이 심하고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성격을 바꾸기 위해 고교 시절 연극반 활동을 했는데, 그것이 그의 내면의 잠자고 있던 끼를 자극했다고. 대학을 졸업하고 탤런트 공채 시험을 봐서 단번에 합격한 후, 배우로 취직했다며 의욕에 불탔다고 한다.

광주에서 올라와 배우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 의욕이 꺾이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연기 전공자도 아닌 데다 사투리 억양까지 배어 있는 등, 다른 동료들과 비교되는 약점을 의식하다 보니 늘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나. 무엇보다 잘하고 싶었지만 잘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신인에게 완성품을 요구하듯 작은 실수 하나에도 격려보다는 질책이 날아왔다. 경쟁이 심한 그런 분위기는 가뜩이나 소심하고 내성적인 그를 더욱 주눅 들게 했고 결국에는 울렁증을 갖게 만들었다.

카메라 앞에서 크고 작은 실수들이 생기다 보니 출연 기회가 줄어들고, 그래서 무명 시절이 제법 길었다. 그러다 2006년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개성적인 성형외과 의사 역할로 강한 인상을 남겼고, 그 뒤로 그는 많은 영화에서 감초의 매력을 발산하며 재미를 선사했다. ‘유리의 성’을 할 무렵에는 ‘대한민국 영화는 이한위가 출연하는 영화와 출연하지 않는 영화로 구분된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수더분한 중년 역할을 많이 맡았지만, 그는 방송가에서는 잘 알려진 패셔니스타다. 독특한 색깔과 과감한 디자인을 선호하고 파격적인 센스를 자랑한다. 함께 작업할 때 눈에 띄는 그의 패션은 늘 화제가 됐고 옷을 사는 데 많은 돈을 쓴다고 스스로 고백하기도 했다. 이제 생각해보니 그의 독특하고 튀는 패션 감각은 자신의 소심함과 낯가림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었던 것 같다. 연기는 대본에 한정되고 연출에 제약을 받기도 하지만 자신의 내면에 꿈틀거리는 끼를 남의 간섭받지 않고 표현하기에는 패션만큼 좋은 방법이 없지 않은가.

그런데 어느 날 보니 그의 패션이 평범해져 있었다. 그는 40대 후반에 늦은 결혼을 했다. 드라마를 하다 좋은 인연을 만났고 나이 차가 제법 나는 아내의 용감무쌍한 돌진에 항복(?)해 결혼까지 이르게 됐다. 그의 결혼식에서 그를 아는 후배들은 “도둑도 모자라 대도”라며 연신 부러움의 대사를 날렸다.

간통 전문 형사의 아찔한 결백 증명 프로젝트를 다룬 영화 ‘간기남’에 출연한 이한위.
▶‘복면가왕’에 출연했을 정도로 노래 실력도 출중

몇몇 지인은 축하하는 마음 한편에 염려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가 결혼이 늦어진 것은 패션과 골프에 빠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고 파격적인 패션과 골프를 포기하지 않는 한 결혼 생활이 순탄할까 싶은 걱정도 조금 있었다. 결혼 후 연이은 출산으로 세 자녀를 두더니 주변 염려와 달리 빠르게 남편과 아버지가 돼갔다. 부부가 한동안 고정적으로 ‘아빠본색’이라는 TV 예능에 출연했는데 정말 행복해 보였다. 부인은 남편 이한위만 보면 터지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고, 그도 그런 아내를 몹시 예뻐하는 게 화면에서도 고스란히 보였다. 부부의 가식 없는 모습이 설정이나 연기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았고 그는 평범한 남편과 아버지가 돼가고 있었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 연착륙하는 이한위가 보기 좋으면서도 그의 독특한 패션 감각이 사라져가는 게 조금은 아쉬웠다. 가끔 만나면 그는 “이제 아이가 셋이라 옷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며 농담 섞은 엄살을 부렸다.

최근 오랜만에 지인의 전시회에서 그를 만났다. 모자를 쓰고 가죽점퍼에 카고 바지를 입은 그를 보고 반갑게 “패셔니스타가 돌아왔다”고 하니 “정신 차렸다”며 정색했다. “이제 다시 옷에도 투자하느냐” 물었더니 천연스레 “옛날 옷으로 돌려 막기를 하고 있다” 해서 빵 터졌다. “결혼 전에 투자해둔 보람이 있어 지금 옷장에 있는 옷만으로도 한동안은 더 돌려 막기가 가능할 것 같다”고 말하는 그가 멋져 보였다. 자상한 남편이자 성실한 가장인 이한위도 보기 좋지만, 패션에 진심인 배우 이한위도 가끔 볼 수 있었으면 싶다.

이 글을 쓰기 전 그에게 전화를 걸어 “이제 울렁증은 완전히 극복했느냐” 물었다. 아직도 새 역할을 만나면 기본적인 울렁증은 있단다. 그런데 이제 그 울렁증은 설렘의 다른 모습으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아직도 처음 만난 감독이나 작가에게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지만 설렘으로 받아들인 덕분에 연기할 때 집중력과 폭발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또 그 울렁증이 자신에게 교훈을 남겼다고 했다. 신인인 후배들이 울렁증을 갖지 않도록 자신이 먼저 다가가게 됐다는 것. 신인 시절 자신에게 다가와주지 않은 선배보다 다가와준 선배를 기억하고 있고, 자신을 질책한 감독보다 격려해준 감독을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다가와준 선배와 격려해준 감독 덕분에 지금의 자신이 있는 것이라고도 했다. “자신을 만난 후배가 그의 격려와 친밀감으로 용기를 얻고 그래서 자신의 끼를 발휘하고 무명 시절을 한 단계라도 건너뛰기를 바란다”며 얘기를 끝맺었다.

그는 최근 라디오 방송 가요 프로 진행을 맡았다. 이한위는 ‘복면가왕’에 출연할 정도로(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장렬하게 1라운드에서 탈락했지만) 노래 실력을 자랑한다는 사실을 빠뜨릴 뻔했다. 그는 술은 잘 못 마셔도 노래는 아주 구성지게 잘 부른다. 그래서 그런지 가요 프로 진행자가 어쩐지 그와 아주 잘 맞아 보인다. 이제 낯가림을 벗어던진 그의 끼는 마이크 앞에서 유감없이 발휘될 것이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 마음은 조금 초조하고 몸은 쉴 틈 없이 바빠 보이지만, 그런 그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이한위의 아빠본색! 파이팅!

[최현경 한국방송작가협회 부이사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42호 (2022.01.12~2021.01.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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