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어느 재벌 3세의 #멸공 놀이

이동훈 2022. 1. 13.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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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소셜미디어에서 70만명이 넘는 팔로어를 거느린 인플루언서다.

중국 보복 우려에도 굴하지 않는 그의 거침없는 #멸공 게시물에 윤석열 대선 후보를 비롯한 보수 성향의 국민의힘 의원들이 '멸콩 챌린지'로 화답하고, 이에 맞서 더불어민주당 측 인사들은 신세계 불매운동까지 나설 정도로 대선을 앞둔 정치권이 #미투 운동 버금가는 색깔 논쟁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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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금융전문기자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소셜미디어에서 70만명이 넘는 팔로어를 거느린 인플루언서다. 웬만한 셀럽 부럽지 않게 ‘용진이 형’이라는 호칭이 곁들여진 가십성 동정이 하루가 멀다 하고 기사화된다. 재벌들 일상을 쉽게 접하지 못하는 필부들이 ‘사이다’ 발언과 참신한 아이디어로 소통하는 그의 ‘인싸’ 면모에 호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리라. 새해가 되자 그의 영향력은 더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과거 군사정권 당시 유행했지만 요즘은 일상의 언어에서 퇴장한 #멸공 구호를 붙인 게시물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국민의 안보 콤플렉스까지 소환시키고 있다. 지난해 말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자꾸 되뇔 때만 해도 내 ‘뇌피셜’로는 이유를 알 길이 없었다. 중국에 서운한 감정을 드러낸 걸 수도 있겠다는 추측만 할 뿐이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이후인 2017년 중국에 진출했던 이마트를 20년여 만에 반강제로 철수한 것이 추측의 근거였다.

중국 보복 우려에도 굴하지 않는 그의 거침없는 #멸공 게시물에 윤석열 대선 후보를 비롯한 보수 성향의 국민의힘 의원들이 ‘멸콩 챌린지’로 화답하고, 이에 맞서 더불어민주당 측 인사들은 신세계 불매운동까지 나설 정도로 대선을 앞둔 정치권이 #미투 운동 버금가는 색깔 논쟁에 빠져들었다. 여야 대결 구도가 심각해지자 정 부회장은 왜 자신은 사업만 열심히 하려는데 정치로 끌어들이려 하느냐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언제 미사일이 날아올지 모르는 불안한 매일을 맞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느끼는 당연한 마음을 얘기한 것”이라면서 사업가로서 국제무대에서 북한의 위협에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당하는 현실을 토로한 것뿐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정 부회장이 간과한 한 가지는 국내 주식시장에 공개된 신세계그룹 산하 회사의 총수로서 그는 이미 사사로운 기업인을 뛰어넘은 공인의 영역에 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국민이 평생 피 같은 월급에서 모은 노후자금이 굴지의 신세계 계열사에 들어가 있다. 정 부회장과 그의 여동생 정유경씨가 각각 18.56%로 최대 주주인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국민연금이 2대 주주로 10.86%, 12.71% 지분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다수 국민의 이해와 직결돼 있다. 멸공 논쟁 속에 지난 10일 신세계백화점 주가가 6.8%나 폭락하는 등 계열사 시가총액이 2000억원 이상 증발한 것은 오너 입의 무게를 실감케 한다. 이날 하락은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재작년 3월 이후 최대 폭이다. 공교롭게도 북한이 다음 날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자 그는 또 이 소식을 인스타에 올려 관심을 유도했지만 코스피 지수는 조용했다. 오히려 신세계백화점 주가는 전날보다 소폭 올랐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그의 거침없는 멸공 발언이 백화점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생계를 망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글들이 넘쳐난다.

지난해 9월 증여세를 낼 목적으로 광주신세계 지분 52.08%를 신세계에 20%의 프리미엄까지 얹어 2285억원에 5000%가 넘는 이익을 보고 처분해 개미 투자자의 공분을 샀던 ‘과거’까지 소환되고 있다. 지난해 연초부터 50% 가까이 올랐던 광주신세계 주가는 사흘 연속 추락해 지난해 9월 14일 최고가 대비 20%나 떨어졌다. 신세계는 이후 배당을 높이는 등 소액주주 달래기에 나섰으나 주가는 120일 이동평균선 밑에서 헤매는 등 ‘먹튀’ 사건은 현재 진행형이다. 법적으론 문제가 없다지만 총수로서의 이런 행동이 코리안 디스카운트 원인을 오롯이 북한 탓으로만 돌릴 수 있는 건지 필부들은 묻고 있다. 소셜미디어 소통도 중요하지만 사업가로서 그가 거느린 신세계 그룹의 지붕 밑 건사가 더 절실해 보이는 이유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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