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이준석 리스크는 소멸했을까

이정민 2022. 1. 13.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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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논설실장

쓰나미급 국민의힘 내분이 일단 봉합됐다. 서로 끌어안고 환호한다. 그런데 객석의 반응은 썰렁하다. 양치기 소년 거짓말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던 기억이 도돌이표처럼 되살아나 환희의 순간을 집어삼켰다.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 급락은 예고된 재앙이다. 정치 신인이라곤 하지만 오락가락 행보로 자질 부족을 드러냈고 가족 비리와 비전·리더십 부재의 늪에서 몇 달째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잦은 실언, 인선 잡음, 부인 김건희씨 논란 등에 사과하며 수없이 고개 숙였지만 뭘 사과했는지 또렷이 떠오르지 않는다. 딱한 노릇이다.

선대위 해체란 극약처방 끝에 윤 후보는 김종인(전 총괄선대위원장)을 손절하고 이준석(국민의힘 대표)과 손잡았다. 중도 대신 2030을 앞세우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툭하면 잠적하고 내부 총질과 후보 흔들기를 반복해온 이준석 대표의 기행을 생각하면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기묘한 ‘커플링’이다. 윤 후보 지지율 하락세가 멈추고 있어서인지 내부 분위기는 나쁘지 않단다. 여성가족부 폐지, 병사 월급 200만원 공약, 멸공 챌린지 등 이대남(20대 남자)을 타겟팅한 캠페인으로, 속된 말로 재미 좀 봤다는 분위기다. 이 대표는 페이스북에 보란 듯이 ‘이틀 걸렸군’이란 글을 남겼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때의 젊은층 지지율 폭등과 비교하며 이대남을 정치 무기화한 전략의 성공을 과시하려는 듯하다. 이대남이란 ‘신대륙’에 깃발 꽂고 조자룡 헌칼 휘두르듯 해온 이 대표가 승리의 비책이라며 내놓은 세대포위 전략도 본격 시동을 거는 모양새다.

「 혐오·분노 자극 이대남 득표 전략
윤석열-이준석 커플링 지지율 반등
변화 기대했으나 ‘청년 꼰대’만 부각
“후보·당 리스크로 확장될까 걱정”

문제는 혐오 마케팅이란 극약처방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대남의 좌절을 정치 마케팅 수단 삼아 페미니즘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고 분노 지수를 높이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전략이 지금껏 보여온 ‘이준석 정치’다. 이젠 여기에 윤 후보마저 올라탄 형국이다. 그렇잖아도 문재인 정권 내내 여야, 진보-보수가 편 갈라 싸우면서 나라와 민생은 만신창이가 됐다. ‘부족(部族)주의’란 조롱까지 듣는 마당이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이다. 극한 처방에 따르는 위험에 경종을 울리는 격언이다. 젠더 갈라치기로 이대남의 표를 좀 더 얻고, 그래서 대선에 승리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번 깊어진 갈등을 치유하는 건 몇 곱절이나 더 어렵다. 세상사나 정치나 마찬가지다. “두 사람의 동조화로 ‘이준석 리스크’가 후보와 당의 리스크로 확장될까 걱정”이라는 중진 의원의 걱정을 기우로만 넘기기 어려운 이유다.

지난 6일은 이 대표 정치인생 최대의 고비였다. 덮고 가자는 윤 후보의 결심이 아니었다면, 의원총회에서 이 대표의 사퇴 결의안이 채택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마이크를 잡은 의원들이 “정신 감정을 받아야 한다”는 격한 말까지 쏟아낼 정도였다고 하니 분위기를 짐작할 만하다. 날개없는 추락이다.

지난해 이 대표가 선출됐을 때, 필자는 이 지면을 통해 0선(選)의 30대 대표에게 낡은 4류정치에 종지부를 찍고 세대교체의 새 바람을 일으켜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을 주문했다. 탁류를 정화할 메기가 되라는 시대적 요청을 무겁게 받아들이기를 진심으로 바라서였다. 그러나 결과는 우리가 보아온대로다.

실망스럽게도 그는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과 태도에서 청년답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고 실수나 잘못도 쿨하게 인정하는 요즘 밀레니얼 세대답지 않게 그는 툭하면 잠적·잠행하는 유치하고 저열한 방식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대표임을 망각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SNS 등을 총동원해 당과 후보를 공격해 긴장을 유발한 뒤 요구사항을 얻어내는 수법은 정치판에서 닳고 닳은 노회한 정치꾼을 연상케한다. 후보에게 ‘연습문제 풀기’를 시키고, 예능프로에 나와선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 되기’보다 ‘내가 되는 것’이 좋다고 당당히 말하는 데선 청년의 패기가 아니라 권력의 달콤함에 취한 청년 꼰대의 교만을 보게된다. 정권교체를 위한 갈망으로 그를 밀어줬던 국민들로선 난감한 일이다.

청년에 희망을 거는 건 그들이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지나온 과거는 누구나 얘기할 수 있다. 쉽다. 그러나 도래할 미래는 알 수 없다. 부단히 학습하고 연구하고 성찰해야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실력이 있어야 한다. 지난한 일이다. 한국 정치가 4류의 질곡에서 못벗어나는 것도 미래 담론을 얘기하지 못하고, 과거를 재단하고 청산하는 데만 에너지를 낭비하기 때문이다. 미래세대의 대표를 자처하는 이 대표가 미래 담론을 주도하지 않는 건 실망스럽다. 애당초 이 방면으론 의지가 없었거나, 그게 아니라면 그 역시 무능한 탓일게다. 6일 의총장에서 이 대표는 또 뛰쳐나가면 대표를 사퇴하겠다며 단합을 다짐했다고 한다. “윤 후보가 어떤 실수를 해도 방어할 자신이 있다”며 ‘충성 발언’도 했다. 윤 후보와의 커플링도 지금까진 그런대로 순항이다. 그렇다면 ‘이준석 리스크’는 이제 소멸한 것일까. 답 대신 질문이 떠오른다. SNS를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기자들을 몰고다니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걸 큰 정치인이라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 하는 물음 말이다.

이정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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