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수의 시선] 패스 위기에 놓인 방역패스

조강수 입력 2022. 1. 13. 00:40 수정 2022. 1. 13.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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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등 3종 교육시설 방역패스와
확진자 응시 제한은 기본권 침해
법원 판결·결정, 방역정책 전환점
"강제보다 자발적 백신 접종 유도"
대형마트·백화점 방역패스가 적용된 지난 10일 정부의 방역지침에 전면 반대하고 나선 손현준 충북대 교수를 비롯한 백신 미접종자들이 충북 이마트 청주점에서 방역패스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청주=뉴시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지난 2년간 많은 것을 앗아갔다. 항상 웃던 친구가 픽 쓰러지더니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노쇠한 친척은 인사도 없이 떠나갔다. 장례 없이 한 줌의 재로 돌아갔다. 무덤을 못 만드니 꽃다발도 사치다. 우울한 소식은 통계청도 전해온다. 지난해 사회적 고립도가 34.1%로 역대 최고였다. 국민 3명 중 1명이 정신적, 신체적,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할 곳이 없다고 한다.

그나마 의미있는 전갈은 법원에서 왔다. 지난 연말 서울중앙지법 민사31부(김지숙 부장판사)가 판결을 하나 선고했다. 2020년 11월 교육부(시·도 교육감)가 시행한 초·중등 1차 임용시험에서 코로나19 확진자라는 이유로 응시를 제한당한 수험생이 44명 있었다. 국가가 이들에게 1000만원씩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것이다. 지난 4일엔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이종환 부장판사)의 집행정지 결정문이 나왔다. 학원·독서실·스터디 카페 등 3종 교육시설에도 방역패스(백신접종증명·음성확인제)를 적용하겠다는 정부 조치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판결의 피고는 국가를 대리하는 법무부 장관, 결정의 피고는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다.
법원 판결·결정문은 코로나19와 관련한 정부 정책이 헌법에 규정된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지를 조목조목 지적한다. 판결문부터 보자. "이 사건 응시제한은 법적 근거 없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응시생들의 균등한 공직 취임 기회를 침해했다" '모든 국민은 (...) 공무담임권을 가진다'는 헌법 25조 위배! "피고가 2020년 12월 시행한 수학능력시험, 작년 1월 변호사 시험, 이후 국가공무원 시험 등 확진자에게도 격리된 장소에서 응시 기회를 제공했던 점에 비춰 불합리한 차별." 헌법 11조 평등 원칙 위배! 땅땅!
임시 조치임에도 결정문의 파급력은 더 컸다. 청소년 방역패스에 대해 "백신 접종 여부는 개인의 권리인데 방역 패스는 정부가 백신을 맞으라고 강요하는 정책"이라고 판단했다. "그로 인해 백신 미접종자 중 시험, 취직시험 등에 대비하려는 사람이나 (...) 학습권이 현저히 제한 (...) 교육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직접 침해 (...) 나아가 코로나 백신 접종을 완료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되므로( ...) '신체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행사하지 못하게 된다." 헌법 10조(개인 인격권과 행복추구권) 위배!
정부 정책과 국민 기본권의 이익이 충돌할 때 정부 쪽에 유리한 판결을 내릴 수도 있다. 진실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마지막 심판은 신(神)의 영역이다. 판사들은 법정의 정의를 고민한 뒤 손해배상을 명하고 방역 정책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방역 패스를 패스(※적용의 멈춤)하라'는 메시지다.
팬데믹 초기의 카페·식당·영화관 등 출입 제한은 공동체를 위해 감내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문제는 전 국민의 기본권·생존권 위협이다. 학원·독서실 등에 이어 대형 마트, 백화점, 복합 쇼핑몰 등으로까지 확대되면서 방역 패스의 모순이 속속 드러났다. 마트 근무는 되고 쇼핑은 안 된다? 버스·지하철 타고 마트 앞까지 갈 순 있어도 들어가진 못한다? 상식의 한도를 넘어서니 반발한다. 정보 데이터와 현장 경험이 축적되면서 무리수가 뭐고 과잉이 뭔지 알게 된 것도 한몫했다. 한 판사의 말이다.
"정부가 국민에게 '중대하게 불리한 처우'를 하려면 과학적·합리적 이유를 갖고 설득하고 필요 최소한도로 해야 한다."
K방역은 처음엔 공고해 보였다. 국민도 기꺼이 따랐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때 금 모으기 열풍이 일자 장롱 속에 모셔뒀던 금붙이를 들고 나왔던 것처럼. 정부는 의료진의 사투와 자영업자의 희생을 발판으로 일부 성과가 나자 자화자찬 늪에 빠졌다. 오판까지 겹쳐 단계별 '위드 코로나'는 좌초했다. 3월 대선을 코앞에 두고 정치 방역의 유혹에 빠질 우려도 상존한다.
이번 결정이 행정편의주의적 방역 정책의 흐름을 바꾸는 변곡점이 되기를 바란다. 의사 등 1000여 명이 제기한 17곳의 방역패스 관련 소송의 결과도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에서 곧 나올 예정이다. 결정문 안에 해법도 있다.
"피고인 보건복지부 장관이 방역패스를 적용하는 조치를 시행하기 전부터 국민 대다수가 코로나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조치를 신속히 해왔다. (강제 조치보다 인센티브 중시를 통해) 자발적인 백신 접종을 유도함으로써 위중증률과 치명률을 통제하는 것이 방역 당국이 우선적으로 취해야 할 최소침해적 조치다."

조강수 논설위원

조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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