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오시범(誤示範)

장주영 입력 2022. 1. 13. 00:25 수정 2022. 1. 13.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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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영 사회에디터

오시범(誤示範)이란 말이 있다. ‘모범을 보임’이라는 뜻의 시범과 달리 국어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말도 아니다. 하지만 군대에서는 이 말이 자주 사용돼 왔다. ‘잘못된 방법을 직접 보여준다’는 뜻으로다. 실제로 신병 교육에서 사격 자세나 제식 따위를 가르칠 때, 조교나 교관은 ‘이렇게 하면 절대로 안 된다’면서 오시범을 보여준다. 오시범이 끝난 후엔 제대로 자세를 알려주는 시범이 이어진다.

출범 1년을 맞이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지난 한 해 동안 오시범만 열심히 보여준 것 같다. ‘살아 있는 권력’의 중대 부패범죄를 수사한다며 야심 차게 출범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2600여 건에 이르는 사건을 접수한 뒤 24건을 수사한 끝에 달랑 1건(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불법 특별 채용 의혹)만 기소했다. 여기에 친정부 성향인 이성윤 서울고검장을 불러 조사할 때 ‘관용차 서비스’까지 제공하면서 중립성 논란을 키웠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건 공수처가 언론인과 야당 정치인은 물론 대선 후보 팬카페 회원까지 무더기로 통신자료를 조회했다는 사실이다. 정부나 공수처에 비판적인 인사는 물론, 수사대상이 될 수 없는 고위공직자가 아닌 사람들을 사찰했다는 의심을 하게 한다. 무용론을 넘어 존폐론 이야기까지 나오는 배경이다. 진보 성향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 등도 통신자료 수집 문제에 대한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11일 공수처는 출범 1년을 맞아 전체 검사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선 최근 논란이 된 통신자료 조회와 압수수색 등의 현안에 대해 난상토론을 벌였다. 통신자료 조회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원론적 의견부터 적정성 문제가 있었다는 자성적 의견 등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모두발언에서 ‘성찰적 권한 행사’를 강조했다고 한다. “적법성을 넘어 적정성까지 고려하며 국민 눈높이에 맞는 수사를 하자”는 건데, 새삼스럽다.

공수처 1년이 남긴 교훈은 명료하다. 논란을 자초하면서 ‘이렇게 가면 절대로 안 된다’는 점만 1년 내내 보여줬다. 이런 오시범을 통해 국민은 불편한 진실도 새삼 깨닫게 됐다. 여전히 우리의 일상은 수사기관과 권력기관에 의해 철저히 감시받고 있으며, 언젠가 나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장주영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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