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프리즘] 판박이식 소방관 순직 사고

최모란 2022. 1. 13.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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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모란 사회2팀 기자

소식을 들은 건 꿀맛 같은 휴가를 즐기고 있을 때였다. 한참을 이부자리에서 꿈틀대고 있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평택 청북읍 물류센터(냉동창고) 신축 공사장 화재, 대응 2단계 발령’.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까지 경험상 가연성 물질 등이 많은 물류센터 화재는 결말이 좋지 않았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잔불 정리와 인명 구조를 위해 현장에 투입된 송탄소방서 소속 이형석 소방경(50)과 박수동 소방장(31), 조우찬 소방교(25)가 순직했다.

“소방관 시험에 못 붙게 해야 했다”는 유족의 절규가 낯설지 않았다. 지난해 6월 이천 쿠팡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광주소방서 김동식 소방령의 유가족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소방관 하지 말라고 할 걸…” 울부짖는 유가족을 보면서 펜을 들 수가 없었다.

평택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와 이천 쿠팡 물류창고 화재는 여러모로 판박이다. 순직한 송탄소방서 소방관들과 김 소방령 모두 불길이 누그러진 틈을 타 인명 구조에 나섰다가 화를 당했다.

경기도 평택 물류창고 화재 진압 중 순직한 소방대원들의 동료들이 거수경례로 마지막 예를 표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이들뿐만이 아니다. 지난 10년간 위험직무를 수행하다 희생된 소방관은 모두 49명. 한 해 평균 5명의 소방관이 인명 구조 등을 위해 불길에 뛰어들었다가 스러졌다.

일각에선 소방관들의 순직 원인을 지휘부 탓으로 돌린다. 무리한 진입 결정이 화를 불렀다는 거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달랐다. “불길 속에 사람이 있다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느냐”고 했다. 평택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들 역시 “아직 인부 3명이 안에 남았다”는 현장 관계자의 증언에 현장에 투입됐다.

전문가들은 화재 재발 위험이 있는 곳은 드론이나 로봇을 동원해 내부 상황을 살핀 뒤 진입하도록 하는 등 첨단 안전 장비 도입·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돈이다. 소방공무원은 2020년 4월 국가공무원으로 전환됐지만, 인사권과 예산편성권은 여전히 지자체가 담당한다. 지자체의 재력과 단체장의 의지에 따라 소방력이 달라지는 것이다. 무늬만 국가공무원이다. 김 소방령과 평택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들의 장례가 ‘소방청장(葬)’이 아닌 ‘경기도청장’으로 치러진 것만 봐도 그렇다.

소방관 순직 사실이 알려지면 정부와 정치권은 약속이나 한 듯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 평택 물류창고 순직 소방관들의 빈소를 찾은 정부·정치권 인사들도 “화재 예방 및 소방관 처우 개선 등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순직 사고 때마다 수십 번은 들었던 말이다. 유가족 입에서 더는 “소방관 하지 말라고 할 걸 그랬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이번이 마지막 약속이 되기를 빌어본다.

최모란 사회2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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