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리뷰] ESG만 70년째..'찐 ESG'를 고민하고 있다면 이들처럼 하라

윤경희 입력 2022. 1. 12. 17:08 수정 2022. 1. 12.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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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l 닥터 브로너스 CEO
데이비드 브로너

올해 기업의 ESG 움직임이 더 활발해질 전망입니다. ESG란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하죠. 이를 바탕으로 한 ‘ESG 경영’이란 이윤 추구가 목표로 태어난 기업이 돈 버는 것 외에 환경·사회·지배구조의 발전을 위한 사회적·윤리적 가치가 있는 일에 투자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ESG를 실천하고 있는 미국 화장품 브랜드 '닥터 브로너스'가 서울환경연합·노플라스틱선데이와 함께 만든 비누 받침대. 버려진 플라스틱 병뚜껑을 모아 만들었다. [사진 닥터 브로너스]


기업이 여기에 관심을 쏟는 데엔 '생존'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친환경을 실천해 ‘함께 사는 지구 만들기’ 같은 윤리적 신념 이외에도 말이죠. 먼저 '투자 유치'와 '좋은 기업 이미지 쌓기' 같은 사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해외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끌어올 때 기업의 ESG 점수가 낮으면 투자를 받지 못하거든요. 실제로 삼성물산은 2020년 10월 북유럽 최대 규모 자산운용사인 노르디아자산운용의 권고를 받아 석탄 신규사업을 전면 중단하겠다는 선언을 했죠. 한화그룹 또한 같은 해 유럽에서의 태양광 사업을 따내기 위해 분산탄(넓은 지역에 파편을 뿌리는 무기) 사업을 분리했고요.
기업 이미지 측면에서 보면, 주요 소비층으로 부상한 MZ세대 잡기에 이것만큼 필요한 게 없습니다. MZ세대가 추구하는 '가치 소비'와 '선한 영향력'이 기업 이미지에 입혀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죠. 이들의 마음을 사지 못한다면 향후, 아니 당장 사업이 어려워지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일단 여기까지만 살펴봐도 기업이 ESG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해 보이죠?

재활용을 기다리고 있는 플라스틱 병뚜껑들. [사진 닥터 브로너스]


문제는 '어떻게 ESG를 실현할 것인가'입니다. 포장을 줄이고,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기만 하면 될까요. 아니라면, 과연 어떻게 해야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미 ESG를 70년 넘게 실천해온 화장품 브랜드의 CEO에게 만남을 요청했습니다. 바로 미국 비누회사 ‘닥터 브로너스’의 데이비드 브로너입니다. 그는 5대째 가족기업으로 회사를 이끌며 브랜드와 일상에서 ESG를 실천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그와는 줌을 통해 화상으로 만났습니다.


ESG의 시작


닥터 브로너스의 데이비드 브로너 CEO. [사진 닥터 브로너스]
닥터 브로너스는 1948년 시작한 미국 화장품 회사입니다. 이들의 주력상품은 저자극성 친환경 비누. 액체·고체 비누를 만드는데 이것 하나로 얼굴부터 모발·몸까지 전부 사용할 수 있는 올인원 제품입니다. '비누 하나로 몸 전체를 사용하라'고 제안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 비누가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사람과 동물 그리고 지구는 모두 하나'라는 철학이 제대로 담겨있습니다. 닥터 브로너스는 이를 '올원(ALL-ONE)’이라고 부르는데요. 회사가 하는 모든 의사결정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ESG=친환경'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개념이 다르죠. 사람을 포함한 생명체가 지구에서 잘 살아가기 위한 방법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런 기업철학에 많은 사람이 동조했고, 이를 기반한 닥터브로너스의 비누는 지금 코코넛오일과 초콜릿까지 영역을 확장했고, 지난해엔 세계 54개국에서 1초에 1개씩 팔려나갈 정도로 인기를 얻었습니다(퓨어 캐스틸 솝·바솝 기준).
닥터 브로너스의 가족들. 왼쪽부터 데이비드 CEO와 함께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마이크와 리사 브로너. 뒤로 보이는 흑백사진은 창립자인 엠마누엘 브로너다. [사진 닥터 브로너스]

이들의 이야기는 데이비드 브로너 CEO의 할아버지인 엠마누엘 브로너부터 시작합니다. 브로너 가족은 1858년부터 독일 남부 하일브론에서 비누를 만들었습니다. 3대 후계자였던 엠마누엘 브로너는 세계 2차대전 후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했고, ‘닥터 브로너스’란 이름으로 처음 페퍼민트 향이 나는 리퀴드 솝(액상비누)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습니다. 페퍼민트는 엠마누엘 브로너가 가장 좋아했던 아로마였고요.
그는 비누 판매 외에도 전쟁을 겪으며 깨닫게 된 생각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길 원했는데, '전쟁에 반대하고 인종과 종교를 떠나 모두가 하나로 어우러진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 생각을 널리 알리기 위한 강연을 열었고 여기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비누를 나눠줬어요. 그런데 점차 그의 강연보다 비누를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 많아지더랍니다. 그래서 아예 비누 용기에 자신의 철학이 담긴 '모랄 ABC원칙'을 인쇄해 붙여버렸어요. 이것이 지금도 닥터 브로너스가 사용하는 라벨입니다.
ABC원칙이 찍혀있는 리퀴드 솝의 라벨. [사진 닥터 브로너스]
라벨에 쓰인 문구는 "우리는 하나로 함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스스로 노력하고 모두를 위해 일하라" "옳은 일을 하라" 등으로 상당히 철학적입니다. 이 원칙은 지금도 브로너 가족이 사업과 일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 되었고, 데이비드 CEO는 "생명의 공존에 책임을 다하는 것은 우리가 기업으로서 내리는 모든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소"라고 강조했습니다.

E ㅣ 재생 플라스틱 용기 사용만 20년째


눈여겨볼 것은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는 실제 경영 방식입니다. 먼저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원료와 소재는 무조건 유기농이거나 친환경적인 것을 사용합니다. 최근 국내 기업들이 ESG에 접근할 때 가장 먼저 개선하는 제품 용기는 2003년부터 100% 재활용 플라스틱을 사용했어요. 고체 비누의 포장지는 100% 재활용된 종이와 수용성 잉크를 사용하고요. 제품 라벨에는 "매장의 대용량 드럼통에서 리필하세요"라는 문구를 적어놓고 소비자들이 똑같은 통을 다시 재활용하길 권장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친환경적인 행보가 개인의 생활 속에서도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데이비드 CEO의 일상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는데요. 그는 2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채식주의를 지키고 있어요. 자신에게 '인간과 동물에게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부터 채식주의를 고수해 왔답니다. 그는 "어떤 판매점이나 식당에 가도 손에 칼을 쥐고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하더군요. 먹는 것에만 그치지 않아요. 출근할 땐 전기차인 테슬라를 타고, 옷은 햄프(삼베)로 만든 셔츠와 바지만 입는답니다. 생활 깊숙이 친환경이 들어와 있는 거죠.
'외상 후 장애의 유행을 치료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힐 소울(Heal Soul)' 라벨을 사용한 비누는 출시하자마자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다. 합성 원료를 넣어 가격을 싸게 떨어뜨리기 보다는, 유기농 원료를 사용하고 신념에 따른 가치 소비를 제안하는 방식에 소비자가 화답한 것. [사진 닥터 브로너스]

문제는 친환경 행보를 하다 보면 아무래도 원가 상승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업은 이윤 추구가 필수적인데, 어떻게 ESG와 균형을 맞출까요.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진정성을 위해 이윤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합성원료로 만든 것보다 우리 비누는 비싸다. 하지만 고객에게 이를 전달할 때 왜 제품이 비쌀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면, 소비자는 '비싼 가격에도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 우리는 좋은 원료를 파는 농부에게 제값을 지불하고, 효율성이 높은 제조시설을 구축하고, 모델 기용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광고를 자제하는 노력을 한다."

S ㅣ 제품 넘어, 농업 환경 개선까지


인도에 있는 한 농장에서 재생유기농업으로 재배한 페퍼민트 허브를 수확하는 모습. [사진 닥터 브로너스]
그렇다면 포장지를 줄이고 재생 플라스틱을 쓰며, 비닐 테이프 대신 종이테이프를 쓰는 것만으로 ESG를 실천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 고개가 갸웃해집니다. 어떻게 해야 진정성 있는 ESG를 실현할까. 이 질문에 데이비드 CEO는 “지구를 집처럼 대하면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그저 천연 원료를 사용하는 것보다 더 깊은 문제를 다룬다. 친환경 브랜드란 원료를 공급받는 방식부터 시작해, 원료가 어떤 과정을 거쳐 제품으로 완성되며, 어떤 자재를 사용해 제품이 포장되고 진열되는지. 그리고 그 제품과 서비스에 어떤 자원이 사용되는지까지 모든 단계에서 환경을 생각하는 것을 뜻한다. ESG 활동은 어느 정도까지 영역을 확장할 것인지에 따라 달라지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진심으로 도입하느냐와 확실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 활동을 하는 게 중요하다. ”
이런 생각으로 영역을 확장하다 보니 그는 자연스럽게 농업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습니다. 자신이 먹거나, 판매할 비누에 넣을 재료를 얻기 위해서죠. 특히 농부의 교육과 농업 방식의 변화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된 사회 운동에 직접 뛰어들기도 합니다. 구체적인 성과로는 10여년 간의 활동으로 공업용 햄프의 켄터키 주 재배 허가를 받아낸 것을 꼽았습니다. 해당 지역 농부들에게 담배 대신 햄프를 재배하도록 설득하고, 더 나은 수익을 올리도록 비용을 지급하기도 했고요. 해외에서 햄프를 수입할 때 발생하는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동시에, 건강에 해로운 담배 대신 친환경적인 작물이 재배될 수 있도록 한 겁니다.
"파타고니아 같은 브랜드, 여러 사회단체와 뜻을 모아 오랜 시간 관련 법 제정을 위해 싸워왔다. ESG 활동을 통해 신규 고객이 창출된 건 사실이지만, 한 회사를 어떻게 운영할 것이냐에 머무는 게 아니라 정부가 정책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이외의 활동에서도 숫자로 설명할 수 있는 결과가 중요하다."
동물자유연대와 함께 진행한 ‘22마리 사육곰 생추어리 이주 프로젝트’는 웅담 채취 목적으로 사육되다 열악한 환경에 방치된 채 살아가는 사육곰 443마리 중 22마리를 우선 구출해 미국 콜로라도주에 위치한 ‘야생 동물 생추어리 TWAS(The Wild Animal Sanctuary)’로 이주시키는 활동이었다. [사진 동물자유연대]


그가 이야기하는 '숫자'는 매년 자사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올원 리포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로 한해 얼마의 비용을 어떻게 기업철학에 맞춰 기부했는지를 공개하는데, 이를 통해 브랜드가 환경에 미친 영향을 측정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2020년엔 순 매출의 약 8.6%에 해당하는 1600만 달러(약 190억원)를 윤리적 활동을 하는 사회단체에 기부했어요. 한국의 경우 지난해 연말 1억원을 기부했는데, 이 기부금은 지파운데이션과 함께 미혼모 가정의 노후 세탁기 교체, 동물자유연대와 함께 한 22마리 사육곰 생추어리 이주 프로젝트 등에 사용됐어요.


G ㅣ '함께' 잘 살기 위한 급여 체계


제로 웨이스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미국의 닥터 브로너스 직원들. [사진 닥터 브로너스]
ESG 3가지 요소 중 G(지배구조)는 가장 개선하기 어려운 분야인데요. 하지만 지배구조가 우수한 기업은 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 보고서가 있을 정도로 영향을 미치죠. 닥터 브로너스는 한해의 재무 실적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으로 그려 자사 홈페이지에 공시합니다. 경영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거죠.
닥터 브로너스가 자사 홈페이지에 공지한 2020년 재무 실적.
또 눈여겨 볼만한 활동은 2002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최저·최고 시급의 비율 조정입니다. 닥터 브로너스의 최저 시급은 미국 법이 정하는 7.25달러(8600원)보다 3배 높은 22달러(약 2만6000원)부터 시작합니다. 올해는 이를 23.43달러로 인상할 계획이라는군요. 반대로 최고 임금을 받는 임원의 급여는 최저 임금을 받는 직원 급여의 5배까지로 제한했습니다. 물론 이들이 이런 제한을 둔 것은 주가를 올리기 위한 수단은 아니었습니다.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법을 고안하다 나온 결론이었죠.
“CEO가 평균적인 직원 임금의 500배 넘는 연봉을 받고도 하는 시대에 우리는 직원들과 수익을 나누고자 했던 할아버지의 철학을 지키고 있다. 5년 이상 정규 근속 직원의 최저 임금에 맞춰 사내 최고 연봉에 제한을 둔다. 이를 통해 남은 수익은 나누거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복리후생을 제공한다.”

닥터 브로너스의 ESG, 어떻게 보셨나요. 물론 이들의 활동이 ESG의 유일한 정답이라고 할 순 없습니다. 각 기업이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방법은 달라질 겁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포장 쓰레기를 줄이고 친환경 소재를 일부 사용하는 정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겁니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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