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창업자들은 손잡고 일하며 변화를 읽는 사람"

권혜숙 2022. 1. 12.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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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마켓컬리 당근마켓 직방 발굴하고 투자한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
"'제2 벤처붐' 거품 아냐.. 스타트업에 젊은 인재들 몰려와"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는 2011년부터 스타트업의 성장 가능성을 직접 상담해주는 유튜브 채널 ‘쫄투(쫄지말고 투자하라)’를 진행하는 등 후배 창업자들에게 멘토링과 교육을 통해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나눠주고 있다. 최현규 기자


“미국은 코로나19 이후 창업 열풍이 불고 있고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사)도 200여개에서 400개 정도로 빠르게 늘고 있어요. 한국도 비슷합니다. 이커머스 1등 기업인 쿠팡이 유니콘을 넘어서 미국 상장 첫날 시가총액 100조원을 찍었죠. 패션 쪽에서는 지그재그가 1조원에 팔렸고 에이블리는 올해 유니콘이 될 것으로 보고 있어요. 그 뒤에 29CM를 비롯한 몇천억원대 회사들이 버티고 있죠. 식료품에서는 마켓컬리가 4조원 규모로 평가받고요. 스타트업이 빠른 속도로 활성화되고 있어요.”

바야흐로 제2의 벤처붐이다. 국내 벤처·스타트업 투자 금액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연간 5조원을 돌파했고 유니콘 기업은 15개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당근마켓 직방 마켓컬리 등을 발굴하고 성장을 도운 26년차 벤처캐피털리스트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는 “지금은 2000년대 초 벤처 붐과 거품 붕괴 때와 다르다”며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송 대표는 KAIST 전산학 석사로 삼성전자 엔지니어 출신이다. 삼성이 미국회사와 합작한 현지 벤처캐피털사에 파견되면서 스타트업 투자에 입문했다. 귀국 후 MVP창업투자를 설립해 메디포스트에 5억원을 투자해서 100억원을 벌었고, 이노와이어리스에 13억원을 투자해 168억원을 거둬들이며 화제를 모았다. 2008년 캡스톤파트너스를 세운 후 중국 텐센트로부터 총 800억원을 투자받았다. 최근에는 세계 1위 기업용 채팅 메신저 센드버드로 25배, 명함관리 앱 ‘리멤버’를 운영하는 드라마앤컴퍼니로 9배의 투자수익을 올린 바 있다.

-당근마켓 직방 마켓컬리 버킷플레이스(오늘의집) 에이블리 플린트(별이되어라!)… 포트폴리오가 화려합니다. 설립한 지 3년이 안 되는 초기 단계 기업에 주로 투자하시는데, 10년 이후를 보는 긴 호흡으로 투자하는 건가요.

“그렇죠. 미국 연구를 보면 창업 후 유니콘이 되는 평균 기간이 7년 정도로 짧아졌어요. 상장하기까지는 평균 13년이 걸리고요. 한국에서 가장 빨리 유니콘이 된 회사가 당근마켓일 거예요. 5, 6년 걸렸죠. 한국은 유의미한 데이터가 많지 않은데 미국에서 스타트업이 유니콘이 될 확률은 0.1%도 안 돼요.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죠.”

-확률이 그렇게 낮으면 창업하겠다는 의지가 꺾이겠는데요.

“꼭 유니콘이 되지 않아도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제대로 하는 팀은 10개 중 7개가 잘 엑시트(상장이나 M&A 등을 통해 투자를 회수하는 것) 돼요. 저희가 투자한 회사를 예로 들면 중고나라가 애드포스 인사이트라는 블록체인 관련 회사를 사갔고요, 티몬이 모바일 플랫폼 ‘피키캐스트’를 운영하는 아트리즈를 사갔어요. ‘탤런트 애퀴지션(talent acquisition‧인재 확보)’이라고, 사람을 보고 회사를 사는 거예요. 제일 좋은 투자는 좋은 사람에게 투자하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


-투자를 결정할 때 숫자보다 사람을 본다고 하셨던데, 그런 의미로군요.

“초기 투자에는 숫자가 없거든요. 매출이나 영업이익이 없고 제품도 없을 때가 있어요. 창업 초기에 죽음의 계곡이라는 ‘데스밸리’가 있어요. 자금 조달이 어려워서 많은 회사가 그 시기에 떨어져 나가는 거죠. IT기업의 경우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3년까지 그 구간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때는 3F가 투자한다고 해요. 패밀리, 프렌즈, 풀(fool‧바보).”

-사람의 어떤 점을 보는 건가요.

“그 사람의 이력, 자세를 보는 거죠. 저희는 창업 실패로 신용불량자가 된 창업자에게도 투자했어요. 그분은 한번 실패했지만 팀 구성을 잘했고 국내에는 없는 새로운 사업을 하고 있어요. 근성도 있고요. 실패를 경험하고도 잘 헤쳐오신 분들은 겸손하고 불요불굴의 의지가 있죠.”

-투자한 스타트업 중에 폐업하는 회사가 없지 않을 텐데요. 언급하신 3F처럼 주변의 피해도 커지고요.

“저희가 지금까지 투자한 회사가 224개인데 10% 정도가 말 그대로 망한 것 같아요. 가족을 끌어들이고 마지막에 친구들도 끌어들였다가 폐인이 된 사례도 있어요. 저는 창업자들에게 실패할 가능성을 반드시 염두에 두고 회사에 들어갈 돈을 한정해야 한다는 말을 꼭 해요. 자금이 초과될 상황이 됐을 때 아무도 투자하지 않는다면 멈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 된다 싶을 때 빨리 접을 줄 알아야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재창업과 패자부활의 기회가 주어지려면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가 필요하죠.

“미국에 있으면서 창업을 3~5번씩 한 사람도 많이 봤어요. 실패의 충격이 크지 않아서 가능한 거예요. 우리 문화는 오랫동안 한번 칼을 뽑으면 뭐든 베야 한다고 가르쳤지만 요즘 창업자들은 똑똑해졌어요. 어느 대표는 ‘회사에 10억원이 있는데 접어야겠습니다’라고 했어요. 직원들 퇴직금 정산하고 빌린 돈 갚겠다고요. 모든 시도를 해봤던 상황이어서 저희도 (손해를 보지만) 동의를 했어요. 최선을 다한다고 사업이 꼭 성공하는 건 아니잖아요.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조언하고 돕는 게 또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코로나19라는 위기 상황이 스타트업에는 오히려 기회가 됐습니다.

“뉴욕대 스콧 갤러웨이 교수는 팬데믹 때문에 세계가 디지털로 전환되는 10년치 혁신이 1년 동안 한꺼번에 일어났다고 했어요. 한국도 같은 상황이에요. 쿠팡으로 생필품 사고 배달의민족으로 커피 한 잔까지 배달시켜 먹는 사람들은 코로나19가 끝나도 다시 직접 장보러 가거나 음식 사먹으러 나가지 않을 거예요. 10년씩 앞당겨진 변화의 수혜를 가장 크게 입은 기업이 모두 플랫폼‧인터넷 기반 스타트업들이에요. 미국과 한국 유니콘의 70%가 플랫폼기업입니다.”

-캡스톤이 초기 투자한 스타트업 중에 요즘 가장 주목받는 곳이 아기 유니콘인 1인용 화덕 피자 프랜차이즈 고피자입니다. 오프라인 기반이어서 의외라고 생각했는데, 인공지능(AI)을 이용하는 푸드테크 기업이라고요.

“고피자는 첫 출근한 직원도 똑같은 피자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AI가 토핑을 어디에 몇 개 올릴지 도와줍니다. 로봇팔도 매장에 도입했고요. AI는 이제 기본 기술이고 앞으로는 ‘AI+x’를 잘 해내는 스타트업이 성공할 거예요. AI에 x라는 미지수를 더하면 확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사업의 몫이 가장 큰 것은 건강 의료 의식주 같은 기본 욕구를 채워주는 것이고, 이것이 AI와 결합하면 큰 변화를 만드는 거죠. 저희가 투자한 회사 중 이미 절반 이상은 AI를 접목해서 쓰고 있어요.”

-국내 벤처 투자 규모가 2020년, 2021년 거푸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습니다. 스타트업계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커진 것일까요, 아니면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렸기 때문일까요.

“복합적이라고 생각해요. 금리가 낮고 부동산 투자가 막히면 갈 곳은 주식 투자와 벤처 투자죠. 투자가 늘어서 유니콘이 생기기도 하지만 유니콘이 생기면 또 투자가 늘어요. 한국에서 유니콘이 하나 탄생할 때마다 투자액이 2000억~3000억원씩 늘어요. 아직 자료가 나오지 않았지만 지난해 벤처투자시장 누적 투자금이 6조원 정도 될 것 같아요. 그런데 미국은 상반기에만 150조원을 투자했어요. 한국은 벤처캐피털이 투자한 것만 집계한 것이라서 차이가 있지만 투자액이 적어도 미국의 10%는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 가야 할 길이 먼 거죠.”

-지난해 벤처투자시장의 역대급 호황을 놓고 거품 논란도 있는데요.

“절대 아니죠. 2000년이 거품이었던 이유는 좋은 창업이 늘지 않으면서 기존 회사들의 밸류만 올라갔던 거예요. 지금은 우수한 인재가 모이고 있어요. 젊은이들이 모두 공무원이 되겠다면 한국의 미래는 없을 거예요. 최근에는 의사, 변호사, 해외 명문대 MBA 출신들이 창업 생태계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저는 이들이 한국의 미래를 결정할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20대 부자 순위를 한번 보세요. 2000년 벤처 붐이 일었을 때 창업자 10명이 순위에 있었지만 2010년에는 한 명도 없어요. 암흑기예요. 2020년에는 창업자 11명이 있어요. 서정진 김범수 김택진 김정주…. 크래프톤의 장병규를 비롯해 앞으로 오를 창업자도 많습니다. 이게 건전한 시그널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의 능력으로 부를 이룬 분들이 많아지면 당연히 젊은 친구들이 스타트업 업계로 올 수밖에 없죠.”


-취업보다 도전을 택하는 젊은 창업자들이 계속 늘어날 거라고 보시는군요.

“분명한 건 대기업에서 아주 적은 확률로 성공하는 것보다 보람이 클 수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쿠팡 임원들이 스톡옵션을 잘 가지고 있었으면 대기업에서 CEO까지 올라야 벌 수 있는 정도의 금액을 상장할 때 벌었을 거예요. 크래프톤에도 몇백억 부자가 상당수 생겼을 거예요. 창업하면 망할 확률이 높다고 해도 효율이 높은 거죠. 조금씩 변동은 있겠지만 스타트업으로 들어오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지는 추세는 계속될 거예요.”

-지금까지 지켜본 성공한 창업자들에게는 어떤 공통된 특징이 있나요.

“첫째, 될 때까지 파고드는 독한 사람들이에요. 한 가지를 위해서 다른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고요. 다른 쓸데없는 일을 안 한다는 점에서 집중력이 굉장히 좋은 거죠. 둘째,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법을 아는 친구들이에요. 창업은 아이디어가 전부가 아니에요. 창업에서 제일 어려운 게 사람을 모으고 협력과 협업을 끌어내는 거예요. 셋째, 세상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회사가 알려지는 데 2, 3년이 걸리니까 그때 벌어질 일을 예측해야 하죠. 고객과 시장을 지켜보면서 내가 잘하고 있나, 내가 틀린 건 아닌가, 계속 바꿔가고 적응하는 능력이 필요해요. 그러려면 빨라야 하고 실행력이 있어야 하고 변화할 수 있어야 하고요.”

-창업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착각이나 실수는 무엇인가요.

“‘내가 좋은 물건을 만들면 사람들이 써줄 거야’라는 독불장군들이 있어요. 천만의 말씀이죠. 회사가 망하는 가장 큰 원인은 고객이 쓰지 않을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거예요. 현재 있는 것보다 살짝 좋아져서는 굳이 고객이 움직이지 않아요. 문자를 보내던 사람들이 한 번에 카카오톡으로 옮겼던 것처럼 확 좋아져야 돼요. 쿠팡 원터치 결제는 복잡하지 않게 한번 클릭하면 되잖아요. 다른 데는 다 박스로 배달하는데 쿠팡의 패키지는 박스가 아니에요. 박스가 아닌 걸 처리할 수 있는 물류센터를 가진 곳이 쿠팡밖에 없어요. 이런 게 기술이거든요.”

“벤처캐피털리스트가 창업자들에게 ‘갑’ 아니냐고요?”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가 질문을 듣고 웃었다. “최근 3, 4년은 좋은 창업자들이 투자자를 골라요. 저희도 열 번 중에 세 번 정도는 퇴짜를 맞아요. ‘우리 투자를 받아 주세요’ 조르고 부탁하는 경우도 있어요.” 최현규 기자


-한국의 창업 환경은 어떤가요. 한때는 ‘한국에는 차고가 없어서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안 나온다’는 우스갯소리처럼 창업을 할 공간부터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요.

“창조경제혁신센터부터 정부 기관, 대학에 공짜 공간이 얼마나 많은데요. 장소는 물론이고 창업자 친화적인 환경이 많이 갖춰져 있어요. 노무현정부에서는 한국벤처투자를 만들고 처음으로 모태펀드를 조성했어요. 박근혜정부 들어서는 그래도 창조경제가 한국 벤처 생태계에 큰 역할을 했고 문재인정부도 대대적으로 지원했고요. 초기 창업을 위한 정부 지원금과 다양한 프로그램만큼은 전 세계에서 수준급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다면 창업 활성화를 위해 어떤 부분들이 개선돼야 할까요.

“대학이 바뀌어야 합니다. 한국 창업 생태계에서 대학이 가장 뒤떨어져 있다고 생각해요. 미국이나 중국과 비교하면 대학생 창업률이 절대적으로 낮아요. 대학이 교수 창업과 실험실 창업을 더 장려하고 좋은 창업자들이 많이 나타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보완과 노력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4만개가 넘는 스타트업을 탄생시킨 스탠퍼드대처럼 미국 대학은 교수와 학생‧졸업생이 몇 개의 기업을 창업하고 몇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는지를 내세우는데 한국 대학은 고시에 몇 명이 합격했고 취업률이 얼마인지를 자랑한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대학생은 변화의 시작점이자 변화의 핵심 세대예요. 먹고, 입고, 놀고, 소통하는 방법이 어떻게 바뀌는지 새로운 기회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능력이 있어요. 그래서 대학생 창업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만든 제품과 서비스로 세상을 바꾸려는 대학생 창업자들이 늘었으면 합니다.”

권혜숙 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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