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솨이 미투 20분만에 지운 배후…군대 뺨치는 中 '비밀조직'
장관급 차관만 10명 매머드급 조직
20분, 4일, 1일.
중국의 테니스 스타 펑솨이(彭帥·36), 독립기자 장쉐(江雪), 궈위화(郭于華·66) 칭화대 사회학과 교수가 최근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뒤 삭제되는데 걸린 시간이다. ‘중국의 입’으로 불린 후시진(胡錫進·62) 환구시보 전 편집인도 삭제를 비껴가지 못했다. 무차별 ‘삭제 신공’의 배후에는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이하 중선부)가 있다.
부부장만 10명, 매머드 조직 중선부
마오쩌둥(毛澤東)은 일찍이 “붓(筆杆子·비간쯔)과 총(槍杆子·촹간쯔)은 정권 탈취의 두 가지 무기이고, 정권을 공고히 하는 두 가지 무기”라며 중선부를 군대와 동급으로 중시했다. 중선부의 권력은 매머드급 조직에서 드러난다. 황쿤밍(黄坤明·66) 중선부장은 ‘당과 국가 지도자’로 불리는 권력서열 25위권의 정치국위원을 겸한다. 황쿤밍 부장의 지휘를 받는 부부장은 총 10명에 이른다. 문화산업과 관광을 총괄하는 문화관광부, 방송을 감독하는 광전총국, 중국중앙방송(CC-TV), 국정홍보처 격인 국무원신문판공실, 인터넷 검열과 정책을 책임지는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등 책임자가 모두 중선부 부부장을 겸직한다.
중선부는 중국 국정 운영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조직이다. 지난 2019년 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처음 고발한 리원량(李文亮) 우한(武漢) 중앙병원 안과의사 이후 최근 시안(西安) 봉쇄의 실상을 기록한 장쉐(江雪) 기자의 글까지 가차 없는 ‘삭제 공정’에 중선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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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삭제·민감어 지정 ‘3종 신공’
중선부의 여론 관리 범위는 중국을 넘어서고 있다. 지난해 12월 8일 미국의 탐사보도 전문 인터넷 언론 ‘프로퍼블리카’는 펑솨이 선수의 미투(#MeToo) 고발 직후 중선부의 달라진 대응 방식을 뉴욕타임스와 함께 보도했다. 장가오리(張高麗·76) 전 부총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펑솨이의 지난해 11월 2일 밤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글은 게재 20여분이 지나 자취를 감췄다. 곧 ‘테니스(網球)’란 단어가 ‘민감어’로 지정됐다. 민감어는 SNS 게시와 검색이 불가능한 단어를 말한다. 여론 확산을 막는 수단이다. 중국 내 인터넷을 통제한 중선부는 해외로도 눈을 돌렸다. 나오미 오사카, 노박 조코비치 등 유명 선수들이 #펑솨이는어디있나(#WhereIsPengShuai)라는 해시태그를 달며 중국 비판 대열에 동참하자 방어에 나섰다. 국영방송사 CGTN의 테니스 전담기자 선스웨이(沈詩偉)를 동원해 펑솨이의 사진을 선 기자의 트위터에 올렸다. 선 기자가 펑솨이와 식사하는 영상, 어린이 테니스 대회에 참석한 영상을 연속으로 해외 트위터에 올렸다.
“가짜 계정으로 역공까지”
방어에 머물지 않고 역공에도 나섰다. 프로퍼블리카에 따르면 97개의 가짜 트위터 계정과 매크로 기술을 동원해 “펑솨이를 괴롭히지 말라”는 영문 메시지를 쏟아냈다. 주로 베이징 시간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집중 게시했다. 후시진 환구시보 전 편집인은 “세계 여자프로테니스협회(WTA)가 펑솨이에게 서방의 중국 공격을 돕도록 강요하고 있다”며 지원 사격했다. 또 중국에 우호적인 싱가포르 신문의 주중 특파원에게 펑솨이 인터뷰를 알선해 사건을 마무리했다.
독립기자 장쉐가 시안의 봉쇄 실상을 기록한 “장안십일(長安十日, 장안은 시안의 옛 이름)”은 완전 삭제까지 나흘이 걸렸다. 지난 4일 확진자 발생 지역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심장병 수술 시기를 놓쳐 아버지를 잃은 소녀의 이야기 등을 담은 장 기자의 글은 중국 안팎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당국도 즉각 삭제하지 못했다. 여론이 가라앉길 기다린 검열 당국이 7일 1차 삭제했지만 3시간 뒤 글이 ‘부활’했다. 이후 8일 완전히 사라졌다. 장안십일이 실렸던 웨이신(微信·중국판 카카오톡) 공공계정 ‘묵존격물’은 2주간 폐쇄 조치를 당했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이 10일 보도했다.
삭제 신공은 후시진 전 편집인도 피하지 못했다. 지난 5일 후 전 편집인은 자신의 웨이보에 “장쉐의 문장은 지금 인터넷에 잘 걸려있다. 우리 사회가 비평에 마땅히 가져야 할 개방과 포용을 보여준다”라며 “개인적으로 그녀가 평안하기를 바란다. 팡팡(方方·67, ‘우한일기’의 작가)이 쭉 평안했듯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 글 역시 장쉐의 글과 함께 사라졌다. ‘장안일기’가 걸렸던 웹페이지에는 ‘내용이 규정을 위반했다’는 안내문만 남았다.
비판적인 여성 노학자 궈위화 칭화대 교수도 당했다. 궈 교수는 8일 공공계정에 “시안, 시안은 오래 평안(長安)한가?”란 글로 시안 봉쇄를 피해 8일간 도보로, 백 여 ㎞를 자전거로, 겨울 강물을 수영으로 탈출한 시민들의 사연을 실었다. 궈 교수의 글은 하루 만에 사라졌다. 중국의 한 네티즌은 “장쉐의 글은 4일간, 궈위화의 글은 겨우 하루 살아남았다. 그녀들은 이렇게 ‘사회적으로 칭링(淸零·제로 코로나)’ 당했다. 당국은 여론을 봉쇄하면 코로나바이러스까지 소멸시킬 수 있다 여기는가”라며 항의했다.
장 기자의 글이 삭제되자 중화권 네티즌은 장쉐 지키기에 나섰다. 해외 네티즌 루난(魯難)은 트위터에 장 기자의 근황을 전하며 당국이 손쓰지 못하도록 여론을 조성했다. 루난은 10일 “방금 장쉐와 통화했다.…‘장안십일’ 발표 후 관련 부처에서 그녀에게 해외 언론에 적게 말하라는 요구가 있었다”는 글과 장 기자의 사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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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선부 해체 주장 교수 행방 묘연
중국 안팎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중선부의 ‘활약’은 계속될 전망이다. 앤마리 브래이디 뉴질랜드 캔터베리대 교수는 중선부를 해부한 중문 번역서 『중공을 세일하라(推銷中共, 2015)』에서 “중앙선전부는 당의 ‘선전·사상공작영도소조’의 행정관리 기구로 이데올로기 업무를 모두 책임진다”며 “매우 비밀스러운 조직으로 주소와 전화번호를 전혀 공개하지 않는다”고 알렸다.
자오궈뱌오(焦國標·59) 전 베이징대 신문학과 교수는 지난 2003년 중선부의 폐단을 조목조목 지적한 『토벌중선부』란 글에서 중선부 해체를 주장했다. 자오 교수는 중선부를 해체할 수 없다면 적어도 ‘선전부공작법’을 제정해 선전부를 관리 감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자오 교수는 2005년 해직당한 뒤 2012년 ‘국가권력 전복 선동혐의’로 형사 구류를 당한 후로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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