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그럼에도, 쇼는 계속돼야 한다

2022. 1. 12.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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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여정 문화평론가


바야흐로 수상의 계절이다. SNS 타임라인은 금박으로 띠를 두른 봉황이 날고 용이 꿈틀대는 상장의 행렬이다. 지난 한 해의 성과를 인정받고, 새해 시작을 격려받는 이 시기에 수상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SNS 친구들의 수상 소식에 ‘정말 축하해요’라는 댓글을 열심히 달면서 기억에 남는 수상자 둘을 떠올렸다. 하나는 한국의 삼십대 여성 뮤지션이고, 또 하나는 영국의 구십대 남성 작가.

2017년 2월의 마지막 날, 2017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노래상 부문에 뮤지션 이랑이 호명됐다. 차분하게 무대로 올라간 그녀는 그야말로 ‘포문’을 열며 시상식장을 저격했다. “친구가 돈, 명예, 재미 세 가지 중 두 가지 이상 충족되지 않는 시상식은 가지 말라고 했는데 시상식이 재미도 없고, 상금도 없다. 명예는 정말 감사하다.” 그러고는 올해 소득이 1월엔 42만원, 2월엔 96만원이 전부라며 자신의 월셋값 50만원을 기준으로 트로피 경매를 시작했다. 트로피는 현장에서 현금 50만원에 낙찰됐다. 이랑의 트로피 경매 소식은 하루 종일 포털의 톱뉴스를 장식했다. ‘재미도 상금도 없다’는 그녀의 발언이 무례하다는 비판도 쏟아졌지만 아마 한국대중음악상 역사상 세간에 가장 많이 회자된 해가 아니었을까. “저는 명예와 돈을 얻어서 돌아가겠습니다. 재미는, 나는 없었지만, 보는 분들이 재미있으셨으니까, 다들 잘 먹고 잘 사세요”라며 쿨하게 내려가는 이랑을 보며 생각했다. 전업 예술인 70% 이상이 월소득 100만원에 못 미치는 현실을 이보다 유쾌하고 도발적으로 고발할 수는 없다고.

또 다른 이는 조지 버나드 쇼다. 1856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나 1950년 영국 런던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94년의 인생을 살면서 60편의 희곡과 5편의 소설을 남겼고, 음악·미술·연극 비평가이자 연설의 왕이었으며, 피아노 연주와 미술 실력도 수준급이었던 이 사람. 그는 1913년 발표한 희곡 ‘피그말리온’의 대성공 이후 동명 영화의 각색자로 참여해 오스카상을 수상하고, 1925년에는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했다. 오스카와 노벨상 동시 수상 기록은 이후에도 깨지지 않고 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지명됐을 때 쇼는 한림원에 한 통의 편지를 띄운다. “그 상금은 해안가에 이미 안전하게 당도한 사람한테 던진 구명 튜브나 다름없습니다.” 수상을 거부한 쇼를 뜯어말린 건 그의 아내였다. 결국 쇼는 마음을 바꿔서 “상은 받겠다. 하지만 7000파운드나 되는 상금은 스웨덴 도서를 영어로 번역하는 사업에 전액 내놓겠다”라고 발표했다. 지금의 환율로는 1000만원 남짓이지만, 현재 노벨 문학상 상금이 13억원 정도니 당시로서도 가치가 있는 큰돈이었을 터다. 사실 쇼는 스웨덴 작가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의 오랜 팬이어서 그의 작품이 번역돼 소개되기를 바랐고, 그 길을 열어주었다. 동시대를 함께 살아간 문학 동지를 위한 쇼의 통 큰 지지가 멋지다.

수상자만 기억할 일이 아니다. 상을 만든 이도 있다. 공연예술계 분야마다 꽤나 큰 상금과 화려한 시상식이 연출되는 상도 있지만, 상금은 없어도 꼭 받고 싶어 하는 상이 있다. 구히서 연극평론가가 1996년 만든 ‘히서연극상’, 그리고 윤중강 국악평론가가 2014년 만든 ‘중강국악상’이다. 누군가의 업적을 기려 그 이름을 넣어 만든 상들이 정작 당사자는 세상을 떠난 뒤여서 수상자 선정에 관여할 수 없다면, 히서연극상과 중강국악상은 모두 두 평론가가 수상자를 선정하고 시상해 왔다. 평생에 걸쳐 부지런히 모든 무대 현장마다 발걸음 하면서 애정 어린 조언과 날카로운 평을 아끼지 않는 평론가가 주는 상이기에 수상자도 기쁘다.

구히서 평론가가 2019년 작고한 이후 히서연극상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지만, 중강국악상은 올해 8번째 수상자 김보라를 선정해 발표했다. 시상식도, 상금도 없다. 다만 10년째 되는 해에 10명의 수상자가 모여 무대를 가지리라는 작은 약속을 가질 뿐. 코로나로 신음하는 시대에 이마저 불투명해졌지만, 그럼에도 희망한다. 쇼는 계속돼야 한다.

최여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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