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누구나 밥 먹을 땐 고개 숙인다

2022. 1. 12.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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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고종 22년)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 선생께서는 설교에서 "천지만물이 모두 한울을 모시고 있다. 그러므로 이천식천(以天食天)은 우주의 상리(常理)"라고 했다.

"추운 겨울 어느 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앉아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밥이 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밥뚜껑 위에 한결같이/ 공손히/ 손부터 올려놓았다."(고영민의 시 '공손한 손' 전문) 또 생일 등 특별한 날 밥상 앞에서, 동학에서 나오고 지금은 도농 비영리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의 캐치프레이즈이기도 한 '밥이 하늘이다'는 말을 떠올리기도 하는데 이는 사람의 한평생이 '밥'과 연관돼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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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무 시인·서울디지털대 교수


“날거나 걷거나 높거나 낮거나/ 살아있는 모든 짐승은 먹이 앞에서는 고개를 숙인다/ 음흉한 조물주가 한 가지만은 공평하게 만드신 것이다.”(문숙의 시 ‘중년’ 부분)

1885년(고종 22년)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 선생께서는 설교에서 “천지만물이 모두 한울을 모시고 있다. 그러므로 이천식천(以天食天)은 우주의 상리(常理)”라고 했다. 사람들이 흔히 먹고 있는 음식도 한울의 일부이기 때문에 사람이 한울의 일부인 음식을 먹는 것은 바로 ‘한울로써 한울을 먹는 것’이 되는 셈이란 뜻이다. 밥이 하늘인 이유는 밥이 그만큼 생존에 필수적이라는 것과 함께 밥이란 하늘처럼 누구 혼자 독점할 수 없고 함께 나눠야 할 대상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살면서 ‘밥은 먹었느냐? 밥은 먹고 사느냐? 밥벌이는 하느냐? 언제 밥 한번 먹자’ 등등의 인사말을 주고받는데 이때의 밥이란 사람 사는 정(情)이요 호상 간 소통을 뜻한다. 흔히들 의식주(衣食住)라 하지만 실제 생활에 있어선 의(衣)와 주(住)가 식(食) 앞에 설 수는 없다. 여북해야 ‘수염이 석 자라도 먹어야 산다’는 옛말이 전해오겠는가. 그렇다. 남녀노소,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밥을 먹을 때는 고개를 숙여야 하듯 밥보다 상전은 없기 때문이다. 이같이 밥이 지닌 의미가 거룩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밥을 둘러싼 온갖 추문이 끊이지 않고 있으니 밥 앞에서 까닭 없이 송구한 마음이 들 때가 없지 않다.

힘든 일을 마치고 밥을 먹을 때 불쑥, 절로 떠올려지는 시가 있다. “추운 겨울 어느 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앉아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밥이 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밥뚜껑 위에 한결같이/ 공손히/ 손부터 올려놓았다.”(고영민의 시 ‘공손한 손’ 전문) 또 생일 등 특별한 날 밥상 앞에서, 동학에서 나오고 지금은 도농 비영리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의 캐치프레이즈이기도 한 ‘밥이 하늘이다’는 말을 떠올리기도 하는데 이는 사람의 한평생이 ‘밥’과 연관돼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어느 날 저녁에 밥맛 좋기로 소문난 식당에서 밥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러저러한 상념에 잠긴 적이 있다. 이 좋은 밥을 먹고 어떤 이는 사랑을 하러 가고, 어떤 이는 빚 독촉을 하러 가고, 어떤 이는 이별을 통보하러 가고, 어떤 이는 과외 하러 가고, 어떤 이는 주먹질하러 가고, 어떤 이는 대리운전 하러 가고, 어떤 이는 야간경비 서러 가고, 어떤 이는 고향 가는 열차 타러 가고… 어떤 이는 음미하듯 천천히 밥을 먹고, 어떤 이는 허겁지겁 쫓기듯 밥을 먹고, 또 어떤 이는 가축이 사료를 삼키듯 밥술을 뜬다…. 어느 날 식당에서는 더러 밥이 사람들을 먹기도 한다.

숟가락을 엎어 놓으면 그 형상이 무덤 같다. 생사의 거리가 이만큼 가깝고 멀다. 숟가락을 엎는 날 죽음이 마중오리라. 밥사발을 엎어 놓으면 이것 역시 그 형상이 무덤을 닮아 있다. 죽음이란 밥사발을 엎어 놓는다는 뜻이리라. 사정이 이러하니 우리는 매 순간의 삶에 소홀함이 없어야 하리라. 한 사발의 밥이 얼마나 중한지 건강할 때는 잘 느끼지 못한다. 습관처럼 끼니때마다 삼시 세끼를 챙겨먹고 사니 밥 먹는 일이 당연지사라고 여기기 쉽다. 그러다가 몸이 아파 눕게 돼 밥 한 끼를 먹는 일이 형벌같이 고통스러울 때에 이르러서야 밥이 귀한지를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어쩌다 병문안을 가게 되면 얼른 누운 자리 박차고 일어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 한 그릇 깨끗이 비우기를 소원하는 이들이 적잖은 것을 보게 된다.

‘얼굴반찬’이란 말이 있다. 왜 안 그렇겠는가. 다른 건 몰라도 밥만큼은 여럿이 둘러앉아 흥성흥성 즐기는 것이 제격이요, 제맛이다. 혼자 먹는 밥처럼 청승맞은 일도 없다. 예전의 밥상은 두레밥상이 많았다.

이재무 시인·서울디지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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