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사라진 민주공화국 : 시위공화국 대한민국

2022. 1. 12.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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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대통령 선거의 해를 맞았다. 민주화 이후 8번째 대선이다. 이번 선거에서 뽑힐 대통령 임기를 끝으로 우리는 민주화 40주년을 마감하는 해(2027년)와 대한민국 수립 80주년을 여는 해(2028년)를 맞는다. 올해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민주화 40주년과 대한민국 수립 80주년을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맞이할 것인가?

우리 자신에게 조용히 묻자. 대한민국은 80년과 40년의 무게에 걸맞는 발전과 안정, 성숙과 품격을 갖추었는가? 발전은 분명하나, 안정과 성숙과 품격은 아직 멀다. 오늘날 세계 10위권을 기록하고 있는 경제·기술·국방·무역 부문을 보면 대한민국 80년과 민주화 40년은 기적에 가까운 발전도정이었다. 그러나 안정은 민주화 이후 완전 거꾸로였다.

「 승자독식으로 민주공화국 실종
갈등공화국·시위공화국이 대체
권력 독점과 강경 저항의 악순환
연합·연립·공동·통합정부가 해법

‘중앙시평’을 통해 자주 강조한대로 한국은 민주국가들 중 가장 갈등이 높은 나라의 하나다.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대통령 및 의회의 선거제도와 권력구조 때문이다. 특히 대통령 선거의 승자독식 때문이다. 대통령 권력은 한국에서 갈등의 가장 큰 요인이다. ‘일부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제도 덕분에 대통령은 ‘100% 승자독식’에 근거해 대권을 휘두른다. 단단히 잘못된 제도다. 의회 역시 민의와 의석수는 전혀 비례하지 않는다.

국제비교에 따르면 높은 비례성·대표성과 낮은 갈등지표는 같이 간다. 한국은 대통령과 의회를 통해 비례적·절차적·제도적으로 대표되지 않는 민심은 모두 거리로 달려간다. 선거를 통한 민의대변 기제의 오작동과 한계를 이보다 더 분명하게 보여주는 징표는 없다. 물론 그 실패의 책임은 대통령과 의회다. 충격적인 시위통계를 보자.

민주화의 절정인 1987년의 시위는 1만1370회였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 대화와 타협에 기반하여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이 존중되던 기간 동안 시위는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노태우 정부는 연평균 9663회였고, 김영삼 정부는 1만1338회, 김대중 정부는 2만1820회였다. 김대중 정부 시기의 외환위기로 인한 시위 증가를 제외한다면, 세 정부 모두 민주화 이후 최초의 정부, 최초의 문민정부,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와 사회안정을 동시에 성취하였음을 알 수 있다. 노무현 정부는 평균 2만6449회로 중간 정도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평균 3만8778회로 급증하고, 특히 2010년(5만4212회) 이후는 폭증하였다. 광장의 시위로 인해 탄핵에 직면했던 박근혜 정부는 평균 4만5517회였다. 문재인 정부는 어떨까? 물경 평균 8만345회였다. (17년은 공히 박근혜-문재인 정부 통계에서 제외). 민주화의 절정 1987년을 기준으로 볼 때 대체 몇 배인가?

상위 10개 연도를 보면 더욱 놀랍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시기는 10위 안에 한 해도 없다. 이명박 정부부터 현재까지 진영대결 악화와 대의기구의 문제해결 능력 저하가 얼마나 심각했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들은 승자독식을 통해 보수공화국 또는 진보공화국, 우파공화국 또는 좌파공화국을 추구하는 데는 성공하였는지 모르지만, 온전한 민주공화국의 달성에는 실패하였던 것이다.

민주공화국을 대신한 것은 시위공화국이었다. 1~3위는 모두 문재인 정부 시기다. 횟수도 압도적이다. (1위 2019년 9만5266회를 필두로, 2위 2020년, 3위 2018년) 촛불 시위가 절정이었던 해보다도 훨씬 더 많다. 충격이다. 거리의 시위대결·진영대치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준다. 박근혜 정부는 5·6·7·9위를, 이명박 정부는 4·10위를 기록하였다. (8위는 2017년)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 촛불시위의 중심 구호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였다. 진영대결로 민주공화국이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탄핵사태 이후 탄핵연대를 기반으로 진영을 초월한 입법연대·정책연대로부터 시작하여 연합·연립·공동·통합정부를 수립하여 민주공화국을 실현하자고 간절히 반복한 까닭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맞이한 것은 절반의 진보공화국과 최고의 갈등공화국·시위공화국이었다.

승자독식이 아닌, 대화와 타협의 민주공화국을 실현하자. 그리하여 시민들을 시위에서 해방시켜 안온한 일상으로 돌려보내자. 이번 대선의 이토록 작은 후보들 누구도 연합·연립·공동·통합정부가 아니고는, 대권 독점을 통해 이토록 성장한 대한민국을 이끌 수 있는 능력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진영 독점으로 인한 보수공화국과 진보공화국, 갈등공화국과 시위공화국이 연장될 뿐이다.

연합·연립·공동·통합정부를 통해 대권 없는 나라를 시작하자. 민주공화국의 최고 이론들이 구명하였듯, ‘권력독점과 강경저항’, ‘진영대치와 최고 갈등’, ‘승자독식과 국정단절’은 늘 한 짝이다. 권력독점은 늘 나라를 정면 대치와 최고 갈등의 악순환이라는 ‘영원한 수렁’으로 빠뜨린다. 이번 대선으로 참 민주공화국을 실현해 그 끝없는 수렁에서 벗어나자. 진보-보수가 함께 80년과 40년의 무게와 기쁨을 감당하자. 출발은 만악의 근원인 승자독식과 권력독점, 즉 대권의 철폐다. 연합·공동·통합정부에 민주공화국의 길이 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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