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시시각각] 대선판 떠도는 '파판드레우 공약'

김동호 2022. 1. 12.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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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위기 불렀던 사탕발림 정책
우리 대선판에도 선심성 공약 넘쳐
국민의 신중한 선택이 마지막 보루
지난 2015년 6월 30일 그리스는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지원받은 15억4000만 유로(약 1조9000억원)를 갚지 못해 사실상 디폴트(국가 부도) 상태가 됐다. 이날 그리스의 한 국민이 길거리에 있는 쓰레기통을 뒤지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그리스인들의 고단한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블룸버그]

남성은 빠르면 20대 초반부터 탈모가 진행된다. 숱이 줄어들어 금세 나이 들어 보인다. 그러니 탈모로 고민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그 인구가 1000만 명에 달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 공약이 젊은 남성층에서 폭발적 호응을 얻었다. 이들 사이에 ‘이재명 심자’는 말까지 퍼졌을 정도다. 여기에 고무된 이 후보는 임플란트 건보 혜택을 지금보다 늘리고, ‘일하는 노인’의 국민연금 감액을 조정하는 공약도 내놓았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소확행’ 전략이 잘 먹히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소확행 공약은 벌써 44개에 달한다. 이 중 상당수는 국민이 원하는 것들이다. 정치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누가 계산할지는 분명히 해야 한다. 공짜 점심이 없듯 나라에서 주는 것도 공짜가 없다. 건보 재정으로 탈모약을 먹고 임플란트 심으려면 결국 세금 등을 통해 내 주머니에서 반드시 그 비용을 치러야 한다.

이 후보의 가려운 곳 긁어주기 시리즈는 새삼 놀랄 일이 아니다. ‘기본 시리즈’는 그의 간판 정책이다. 올해 경기도에선 그가 설계한 대로 청년 기본소득, 청년 기본대출, 농민 기본소득, 지역화폐 발행 지원, 일산대교 통행료 지원이 모두 현실화했다. 국가와 시·도에서 지원하는 복지라면서 돈 주겠다는데 싫어할 사람이 없다. 경기도에서는 대체로 반응이 좋다고 한다. 이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이 현금 복지정책을 국가 차원의 전국적 단위에서 본격화하려고 한다.

최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제치고 지지율 1위로 달리자 거침이 없다. 이 후보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 추가 지원과 관련해 “최소 1인당 총액 100만원 정도는 맞춰줘야 한다”면서 추경을 통해 설 전에 당연히 지원이 가능하다고 공언했다. 재원 조달 문제 때문에 이틀 만에 보류하겠다고 했지만, 기획재정부에 탓을 돌리고 있어서 언제 또 꺼내 들지 모른다. 기재부와 대립각을 세운 그는 대통령이 되면 예산 편성권을 청와대로 이관한다는 구상을 밝혔다. 방송에 출연해선 “국민의 위임을 받은 권한을 행사하니 국민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기재부를 압박했다.

안 그래도 관여하지 않는 곳이 거의 없는 제왕적 대통령으로 유명한 한국의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예산까지 직접 관장하면 어떻게 될까. 중립 의무를 가진 행정부의 독립성이 위태롭게 되고 여당의 청와대 거수기 관행이 심화하면서 국회의 견제 기능도 무뎌지게 된다.

다시 점심값 얘기다. 탈모약·임플란트 비용은 누군가 반드시 내야 한다. 그래야 병원 의료진에 일한 값을 주고, 의료품도 구매할 수 있다. 그 돈은 결국 국민이 내는 건강보험료로 충당한다. 더구나 ‘문재인 케어’로 의료재정은 점차 바닥을 보이니 국민 부담은 더 늘어난다. 전 국민에게 지원금 100만원을 채워주려면 올해 74조원인 적자 국채 발행 규모를 100조원 안팎으로 늘리는 수밖에 없다. 연내 국가 채무 1100조원 돌파가 불 보듯 명확해진다.

급증하는 국가채무
급증하는 국가채무


선심성 현금 복지는 국가를 위험에 빠뜨린다. 1981년 그리스 총리에 취임한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는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다 주라”고 했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 공무원 증원, 전 계층 무상의료, 연금 지급액 인상 등 포퓰리즘 정책으로 11년간 장기 집권했다. 이 사탕발림 정책으로 그리스는 2010년 국가부도의 위기에 직면해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났다.

윤석열 후보는 어떻게 할 것인가? 복지에 대해 명확한 메시지를 내놓아야 한다. 병사 월급 200만원처럼 득표 경쟁을 위해 맞불 놓고 보자는 자세로 나오면 퍼주기 복지에 호응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스처럼 국민이 원하면 어쩔 수 없다. 다만 과도한 재정 확대는 취약계층을 더 어렵게 한다. 재정을 남발하면 결국 세수 확대가 필요하고 기업의 투자와 고용이 위축돼 경제가 활력을 잃게 된다. 일본이 그랬다. 타산지석이다. 국민의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

[관련기사 더 읽기]
☞그리스 위기 https://www.joongang.co.kr/article/6593246
☞포퓰리즘의 결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872031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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