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읽기] 불안은 우리를 크게 한다

2022. 1. 12.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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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

불안은 인류의 속성이다. 공자는 “발전하지 못하고 퇴보하거나 타락하면 더 이상 군자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군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적 없는 소인들도 가만있으면 지루하고 퇴보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니 뭔가를 해야겠는데, 내게 이런 불안감은 독서의 가장 좋은 동력이 된다.

최은영, 김초엽, 정유정. 세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동시대 국내 작가이고, 지난 연말 ‘올해의 책’에 꼽히면서 한국문학의 가치를 빛냈다고 평가된 인물들이다. 연말에 몇몇 지인과 만나 각자 마음속 ‘올해의 책’이 무엇인지 이야기했는데,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가 거론됐을 때는 나도 읽은 책이라 안심됐던 마음이 『밝은 밤』『지구 끝의 온실』『완전한 행복』이 발설되자 바람 앞의 등불처럼 약해져 불안으로 일렁거렸다. 1년 내내 독서를 해왔건만 나는 왜 이 책들을 못 읽은 걸까라는 자책과 함께.

「 불안감 클수록 책에서 답을 찾아
우리 삶에는 수많은 샛길이 존재
긴장한 만큼 더 멀리 날 수 있어

불안은 거리를 산책할 여유 따위 주는 법 없이 종종걸음으로 집에 돌아와 방구석에 홀로 있게 만든다. 몸을 웅크린 채 마음을 다른 데 내주지 않고, 영상물 같은 건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자신을 더 좁은 곳에 가두었다. 이것은 독자가 한 해를 마감할 때 놓친 책들에 대한 불안감으로 더욱 독서에 몰두하게 되는 모습이며, 이러한 침잠이 부박한 자아에 깊이를 조금 더해준다.

떠올려보면 나는, 우리는 불안이 쌓아 올린 탑이다. 불안하면 전화 걸어 친구를 만나는 사람도 있지만, 내향형 인간이자 불안의 근원점을 찾아 해소해보려는 탐색자들은 주로 질문을 하고, 책을 읽는다. 책 안에 답이 있을까. 직접적인 대답은 잘 보이지 않지만 길을 더 멀리, 복잡하게 낼수록 사안을 단순하게 보지 않게 할 샛길을 많이 만들 수 있다. (이럴 때는 오히려 불안을 주제화한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 같은 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샛길은 현대에도 많지만 고대와 중세에도 숱하게 있고, 묵은 길이어서 땅이 더 단단한 느낌이다. 가령 나는 샛길에서 소크라테스와 공자를 만났다. 소크라테스 시대에 아테네 시민들은 비극을 관람하면서 웅크리며 연약한 마음가짐을 취했는데, 그것이 어떻게 공감력을 키워 훌륭한 시민이 되게 했는지를 읽는 것은 현대의 독자나 연극 관람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일깨워준다. 춘추시대에 모두가 한 가닥 줄에 매달린 개미처럼 제 살길을 찾아 국경을 넘나들 때 사람들 인성의 왜곡과 혼란을 투철하게 파고들었던 공자와 맹자를 읽고 나자 ‘공의(公義)’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불안의 좋은 점은 무엇일까. 첫째, 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치열해지고 행동의 동력이 된다. 둘째, 그 답을 찾다 보니 곁길에서 의외의 것들을 수확한다. 셋째, 불안이 탐색전으로 이어질 때 자아의 형질이 조금씩 변형된다. 넷째, 독서할 때 작중인물 이야기를 살아 있는 사람의 삶인 양 전해 받음으로써 그가 내 육체를 빌려 연장되도록 만든다는 느낌이 삶의 명분을 엿가락처럼 계속 늘려준다.

불안해하는 성격임에도 다행인 점은 체념하는 마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불안의 책』 속 주인공을 통해 페소아는 불안한 자아가 체념의 정서로 흘러가는 것이 얼마나 쉽고 자연스러운가를 보여주지만, 사실 그 책의 메시지는 정반대 지점에 있을지도 모른다. 페소아는 불안해서 그런 주제를 다뤘을지언정 그로 인해 수많은 글을 트렁크째 남겨놓았고, 그 글들은 사후에도 아직 채 정리되지 못할 만큼 양질의 것이기도 하다. 불안은 어쩌면 그에게 사후 불멸하는 명예를 안겨주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책은 독자의 불안을 잠식시켜주지만 저자나 편집자에게는 불안의 매체가 된다는 것이다. 독자는 책 읽는 시간만큼은 돈과 권력 등 세속의 가치를 잠시 잊을 수 있으나 편집자는 원고를 읽는 순간부터 자본을 생각하고, 저자 역시 그 비슷한 마음의 경로를 걷게 된다. 그러니 불안할 때 독자의 지위로 남는다는 것은 얼마나 안심되는 일인가. 독자는 안전하고 땅에 붙박인 것처럼 부유하지 않을 수 있으며, 절필에 비해 절독이란 건 거의 없는 현상이지 않은가.

불안이 팽팽하게 우리의 정신을 당기는 것은 그다음에 곧 발사가 있기 때문에 충분히 버티도록 만든다. 팽팽해서 터질 것 같은 활시위가 당겨지면 자유롭게 날아가는 일만 남는다. 게다가 더 당겨질수록 더 멀리 날아갈 수도 있다. 타이완의 저술가 탕누어도 불안을 새로운 돌파구로 인식했다. “일종의 침체와 초조의 상태는 계속 압력을 쌓아갈 것이다. 그러나 일단 돌파구가 뚫리면 맑은 바람이 들어오고 완전히 새로운 시야가 사람들 앞에 펼쳐진다.”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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