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탈모에 건강보험? 필수의료 지원이 먼저
탈모 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하자는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캠프의 공약을 놓고 찬반 논란이 뜨겁다. 탈모로 인해 심리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고 사회생활에도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은 건강보험 적용을 반기고 있다. 반면 포퓰리즘 비판을 받은 ‘문재인 케어’로 건강보험 재정 적자 확대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질병이 아닌 탈모에까지 건강 보험을 확대하는 것은 선거를 앞둔 또 다른 포퓰리즘이란 비판도 만만찮다.
건강보험제도의 모태는 1963년 도입된 의료보험법이다. 분단 상황에서 박정희와 김일성 정권의 남북 체제 경쟁이 과열되던 시기에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부각하기 위한 사회보장제도 차원에서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했고, 1988년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로 개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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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과·외과·산부인과 등 빈사상태
저부담·저보장·저수가 개편 필요
」
그 과정에서 한정된 재원 때문에 모든 건강 문제를 보험급여 대상으로 할 수 없다 보니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소한의 보험 급여를 인정하도록 설계됐다. 비필수적 질환이라 일상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분류한 여드름·주근깨·점·사마귀·탈모는 물론, 발기부전·불감증 치료, 쌍꺼풀 수술, 주름살 제거술, 치과 교정 등은 초기부터 건강보험법상 비급여 대상으로 분류해왔다.
건보 재정이 유한한 상황에서 무분별한 건강보험 급여 확대는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비급여 항목을 급여화하면 관련 환자의 보험 급여 수요가 급증한다. 수요가 급증하면 건강보험 재정 지출도 덩달아 늘어난다. 환자의 본인 부담금은 줄어도, 건강보험 재정은 악화한다. 결국 건보 준비금이 줄어들고, 국민 개개인이 지출하는 건강보험료 인상으로 귀결된다. 이 과정에서 제약회사나 실손보험회사는 이익을 보게 된다.
이처럼 건강보험제도는 질병을 치료하되 재원이 한정적이란 이유로 최소한의 수가(酬價·치료비)를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비정상적 급여 구조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는 행정 편의주의에 따라 일률적 건보제도를 도입하면서 재정 부족을 내세워 원가의 70%에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의료기관에 강제해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생사가 걸린 필수 의료에 지원되고 지불해야 할 건강보험 지출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필수의료란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 등 4대 진료과의 일반 진료는 물론이고 수술·중환자실·응급실 등에서 생명 유지의 최전선을 지키는 분야다. 왜곡된 건보 제도로 수십년간 적자가 누적됐고 코로나19로 또 한 번 치명타를 맞은 상태다.
따라서 탈모에 대한 건보 적용 논란 이전에 먼저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건강보험이 저부담·저보장·저수가 체제로 고착되는 바람에 위기에 처한 필수의료 분야를 지원해 살리는 일이 더 시급하다. 또 지역 간 의료서비스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건강보험료를 더 많이 올려야 한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알리고 설득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건보 제도에 대한 국민의 만족도는 세계적으로 높은 편이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정부의 일방적 규제와 의료 수가 통제로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의료진들의 희생이 자리하고 있다. 오죽하면 의사들이 강제적 요양의료기관 지정, 진료 과목별 수가의 불균형, 동일 진료과목 내 행위별 수가 간 불균형을 시정해달라며 2002년과 2014년 두 차례나 헌법소원을 제기했겠나.
탈모든 임플란트든 건강보험 급여 확대 적용 문제는 포퓰리즘 공약으로 덥석 채택할 문제가 아니다. 건보 적용에 들어가는 본인 부담금과 보험자 부담금은 정치인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가뜩이나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건보료가 덩달아 인상된 마당에 다수 국민의 건강보험료 부담을 키우고 있다. 따라서 탈모와 같은 비필수적 질환의 건보 확대 적용 여부는 반드시 사회적 합의를 거치고 건강보험법과 의료법 규정과 절차를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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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라 서울시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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