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리포트] 치료·간병·보호 '1인3역'.. 코로나 감염 확산 저지 최선봉

장선욱 2022. 1. 11. 21:3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광주시 코로나 전담병원 '헤아림요양병원'
방호복을 입은 광주 일곡동 헤아림요양병원 관계자들이 코로나19 확진자들을 병원으로 이송하고 있다. 헤아림요양병원은 지난해 초 전국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 전담병원 지정을 신청했다. 헤아림요양병원 제공


지난 9일 오후 광주시 지정 코로나19 전담요양병원 단체 카톡방은 흡사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이름이 ‘코로나여 물럿거라! 헤아림이 간다!’인 카톡방은 눈코 뜰 새 없이 병원 현황을 멤버들에게 공유한다. 광주지역 ‘코로나19 치료·방역 상황실’ 역할을 성실히 떠맡고 있는 것이다. 1년여간 병원을 거쳐 간 코로나19 감염자는 무려 1900여명이다.

코로나19 이겨내는 수호천사

광주지역 코로나19 전담병원이 감염병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지난해 1월 광주시가 전담병원으로 지정한 헤아림요양병원은 각종 노환에 시달리는 어르신 대신 코로나19 환자들을 돌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동안 면역력이 약한 노인전문병원을 운영한 경험을 살려 노인들의 코로나19 예방·치료에는 더욱 필사적이다.

K-방역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광주 방역·치료 체계의 심장부에는 코로나19 전담병원을 선제적으로 자청한 푸른뫼의료재단과 헤아림요양병원이 자리하고 있다. 민간병원이 감염병 전담병원 지정을 신청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수익성 담보도 쉽지 않을뿐더러 감염병 환자 치료를 전담하게 되면 혹시나 하고 감염을 우려하는 다른 환자를 모두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헤아림요양병원은 지난해 1월 전국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 전담병원을 자청했다. 병원 경영난을 불러올 자충수라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 일보다 귀한 일은 없다는 신념이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신관 6개층 240여 병상을 코로나19 확진자에게 전부 내주면서도 노인 전담치료에 전력을 다한다는 각오를 다졌다. 겨울철 독감과 맞물린 트윈데믹의 불안감이 고조되던 시점에서 유독 감염에 취약한 노인들을 떨쳐버릴 수 없어서였다.

전담병원은 질병관리청이 중증병상, 준중증병상, 전담병원, 생활치료센터로 구분하는 코로나19 전담 치료기관 가운데 하나다. 광주의 경우 전남대와 조선대병원이 중증, 준중증 병상으로 함께 지정돼 있다. 헤아림은 요양병원 중에서는 유일하게 전담병원 4곳 중 1곳이 됐다. 전담 병상이 240개로 빛고을전남대병원 81병상, 보훈병원 30병상, 조선대병원 12병상에 비해 규모가 월등히 크다.

코로나19 전담병원 지정까지

“2년 전 언론에서 겨울철 트윈데믹을 걱정하는 보도를 접하고 예감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곳저곳 전화로 문의를 해봤어요. 만일의 감염확산에 따른 특단의 대비는 거의 없더군요.” 2020년 크리스마스 휴일에 광주시청을 작정하고 방문한 한우성 헤아림병원 기획실장의 생생한 회고다.

한 실장은 인구가 밀집한 수도권에 비해 ‘청정지역’이라는 사실을 은근히 뽐내온 광주시 등은 비교적 느긋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로부터 불과 1주일쯤 후인 2021년 1월 초 광주시로부터 전담병원 지정 공문과 통보를 받자마다 헤아림병원 임직원들은 우선 입원 중인 노인 환자 200여명을 다른 요양병원으로 급히 옮겨야 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와 보호자들의 반발은 만만치 않았다. 부속 어린이집도 감염 위험을 고려해 폐원 조치했고, 갑작스런 상황에 학부형들의 원성도 감당해야 됐다. 시간은 너무나 부족했고, 코로나 전담 병동을 만들기 위한 공사도 난관의 연속이었다.

그나마 ‘전담병원 지정’을 가정하고 미리 계획을 잡아본 것이 시간을 단축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헤아림병원은 결국 2021년 1월 8일 코로나19 확진환자를 받았다. 광주시가 전담병원 지정에 나선지 1주일도 되지 않은 시간에 만들어 낸 작은 기적이었다.

감염병전담병원 1년, 백서 준비

“전담병원 지정 신청을 직원들에게 처음 발표했을 때는 정말 암울했습니다. 의사, 간호사, 요양보호사 할 것 없이 전체 인원 100여명 중 60%가 그만두겠다고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최대한 설득해서 최소 인원을 꾸리고, 일부는 파견 인력 지원을 받아 병동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에도 일부는 가족들의 결사반대로 중도에 그만 두셨어요. 의료인력 충원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결국 지금까지 남아 1년을 버텨주고 계신 분들이 존경받아야 할 숨은 영웅들이시죠.” 파란만장한 1년간의 숱한 기억을 더듬는 서미숙 간호부장의 가녀린 음성이 갑작스럽게 떨렸다.
의료진이 코로나19 확진자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헤아림요양병원 제공


한 겨울에도 땀에 흠뻑 젖는 방호복을 입은 채 밤낮으로 계속되는 격무로 만성피로와 우울감을 호소하는 직원들의 모습은 쉽게 아물지 않을 코로나19 시대의 절절한 아픔으로 남았다.

하지만 엄마와 함께 입원했다 퇴원하면서 삐뚤빼뚤한 글씨로 고맙다는 손편지를 남기고 간 유치원생이나 손수 운영하는 반찬가게의 밑반찬을 정성스레 보내주신 환자, 크고 작은 감사의 답례품들을 남기고 퇴원하신 수많은 확진자 등은 코로나19의 기세가 꺾이지 않는 어려움을 버티는 원동력이 됐다.

헤아림병원은 코로나19 전담병원 1년의 흔적들을 정성껏 모아 ‘COVID-19 백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역시 그 누구도 아직까지 시도하지 않은 신선한 발상이다. 이 백서가 앞으로 닥쳐올지 모를 새 감염병 대비의 교과서가 되었으면 하는 게 헤아림병원 임직원들의 간절한 소망이다.

헤아림 요양병원이 걸어온 길
광주 유일의 코로나19 전담요양병원인 푸른뫼의료재단 소속 헤아림요양병원 전경

광주시가 지정한 코로나19 헤아림전담병원은 2003년 설립된 푸른뫼의료재단 소속이다. 2007년 120병상의 노인전문병원으로 문을 연 첨단참사랑요양병원을 토대로 성장해온 재단과 헤아림 요양병원은 2020년 5월 보건복지부 인증의료기관으로 선정됐다. 면역력 강화를 위한 임보크 클리닉과 암센터를 별도 운영하고 있다.

현재 본관 6개층 240여개 병상과 구관 2~3층 60여 병상을 코로나19 확진 환자와 의료진의 전용공간으로 활용해 치료와 간병, 보호자 역할까지 1인3역을 하면서 감염확산을 막는 최선봉에 서 있다.

최중호 푸른뫼의료재단 이사장
“유사시 전체 요양시설, 전담병원 전환하는 제도·지원책 절실”

“2년 전 첫 확진자 발생 이후 월별로 따졌을 때 광주·전남은 지난달 역대 가장 많은 3471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됐습니다. 사망자와 오미크론 변이도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로 절대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됩니다.”

광주시 지정 코로나19 요양전담병원을 진두지휘 중인 최중호(52·사진) 푸른뫼의료재단 이사장은 9일 “경험이 쌓이다 보니 앞으로 닥쳐올지 모를 새로운 감염병에 대한 대비책을 남모르게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코로나19와 싸우는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위험수당 등을 지급하고 면역증강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지만 그들의 노고에 비하면 아무것도 보잘것없다”며 “그동안 정부와 지자체가 시행한 방역정책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토대로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대책을 세우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최 이사장은 “같은 바이러스성 감염병이라고 해도 종류와 성격에 따라 역학조사 단계부터 차별화된 세부적 대응이 절실하다”며 “무증상, 경증 밀접접촉자나 확진 의심자들을 격리해 진단검사를 받게 할 것이냐 아니면 위중증 확진자에게 병상 배정을 집중할 것이냐는 문제를 고민해봐야 할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 특히 “유행 기간이 1년을 넘게 되면 사회적 거리두기 피로도와 소상공인 피해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게 된다”고 전제한 뒤 “방역정책의 유연한 대처와 사전 시나리오가 꼭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호흡기로 감염되는 질환에 가장 취약한 65세 이상 고령자 600만 명 중 10% 정도가 요양병원이나 요양시설에서 집단생활을 하는 현실을 볼 때 유사시 전체 요양시설을 전담병원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제도와 지원책이 절실하다”며 “병간호 등 돌봄 인력의 확보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K-방역이라는 말 속에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방역 당국자뿐 아니라 수많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고통스런 희생, 의료진들의 헌신적 노력, 전 국민의 동참 덕분”이라며 “부디 2022년이 코로나 극복의 원년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한양대 출신인 그는 벤처사업가를 거쳐 푸른뫼의료재단 이사장으로 최근 2년 사이 1주일 평균 한 번 정도밖에 귀가하지 않을 만큼 코로나19 방역·치료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