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정] 'K리그판 더 라스트 댄스' 울산의 '푸른 파도'가 남긴 가능성

서호정 기자 2022. 1. 11.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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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영원불멸의 명제를 통해 특별한 감동을 준다. 하지만 스포츠를 소비하는 이들은 이제 경기와 라이브 중계를 넘어선 영역까지 요구한다. 선수단만의 성역과도 같았던 라커룸, 훈련장, 숙소 안까지 카메라가 들어가 리얼한 과정 그 자체를 보여주는 걸 향유하길 원한다. 이전에는 몇몇 구성원의 증언을 통해서만 전달됐던 모습이 필터링 없는 영상으로 전달되는 시대가 빠르게 바뀌어가는 미디어 지형 안에서 자리 잡았다. 


2020년 ESPN이 제작해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통해 전세계에 공개한 '더 라스트 댄스'는 스포츠 컨텐츠의 새로운 방향타가 됐다. 종목의 경계를 넘어 가장 위대한 스포츠인의 대명사인 마이클 조던과 그의 소속팀 시카고 불스의 1997-98시즌 미공개 500시간 영상을 기반으로 한 이 다큐멘터리는 선풍적인 인기를 일으켰다. 조던의 환상적인 시즌을 영상으로 기록해 놨던 NBA의 선견지명과 10부작의 다큐멘터리를 세계에 공유할 수 있는 넷플릭스라는 거대 미디어 플랫폼, 조던을 비롯한 당시 구성원들의 참여가 만든 역작이었다.


스포츠 다큐멘터리 제작 붐은 국내에도 불어 닥쳤다. K리그에도 많은 팀들이 시즌 결산 다큐를 앞다퉈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물을 만든 구단은 울산현대다. 시즌 중 리얼타임 방식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푸른 파도'를 다양한 플랫폼에 진입시켰다. 특히 OTT 플랫폼 왓챠에는 확장판 버전을 공개, 예능 중심의 스포츠 컨텐츠 속에서 선전하며 K리그 컨텐츠의 새 가능성을 보여줬다. 울산은 우승이라는 목표에 또 한번 좌절했지만, 어느 시즌보다 팬들은 만족시키는 양질의 컨텐츠를 내놓으며 팬프렌들리 클럽의 이미지를 공고히 했다. 그 중심에는 단연 '푸른 파도'가 있었다.


울산이 어떤 목적과 과정을 통해 트로피를 넘어 팬들을 흡입시키는 컨텐츠를 만들었을까? 앞으로의 목표와 과제는 무엇일까? 부임 후 스쿼드 강화를 통한 성적 향상과 더불어 브랜드 아이덴티티 형성과 뉴미디어를 활용한 인하우스 컨텐츠 강화로 팀 이미지를 재고시킨 김광국 대표이사와 긴 이야기를 나눠봤다.


- 최근 스포츠 팀들이 영상을 기반으로 한 컨텐츠 확보에 열을 올리는 흐름 속에 울산도 해당 영역을 꾸준히 강화하고 있습니다. 짧은 호흡의 컨텐츠가 아닌 긴 호흡의 다큐멘터리를 시즌의 메인 컨텐츠로 삼은 이유는 뭔가요?
구단과 선수들의 진정성을 팬들에게 온전히 전하기 위해 다큐멘터리 콘텐츠를 기획하게 됐습니다. 다만, 시즌이 종료된 후 40~50분 분량으로 공개되는 기존 다큐멘터리 포맷이 아니라, 시즌 중 팬들과 호흡을 같이하고 여운을 최대한 빠르게 교감하는 '리얼 타임' 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를, 나아가 회당 15~20분 분량으로 제작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 몰입할 수 있는 차별화된 영상물을 제작하고 싶었습니다.


요즘의 영상 트렌드인 1분 미만의 영상(숏폼) 콘텐츠의 장점과 다큐멘터리가 가진 진정성을 잘 조화시키는 것이 '푸른 파도'의 기획 의도 중 하나였습니다. 시즌 중 선수단의 모습을 가능한 빠른 시간에 팬들에게 전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 바쁘게 영상을 제작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습니다. 공개 일자가 다가오면 구단 직원들과 영상팀은 밤을 새우고,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고민을 해야 했지만, 약 35만명의 팬들이 '푸른 파도' 시리즈를 지켜봐 주셔서 보람차고 뜻 깊은 프로젝트였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  진정성 있는 서사 중심의 다큐멘터리는 아무래도 팀에 대한 애착이 있고, 이해도가 높은 팬들과 달리 새로운 팬 층이 진입하기엔 낯설거나 장벽이 높은 감도 있지 않았을까요?
'푸른 파도' 기획 초기의 고민이기도 했습니다. 울산현대 팬들을 위한 콘텐츠이지만 잠재적 울산현대 팬, K리그 라이트 팬들을 위한 콘텐츠가 된다면 더 큰 경쟁력을 가진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획 단계에서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울산현대 그대로의 모습을 매력적으로 담자"로 정해졌습니다. 뻔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울산현대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축구팬들도 궁금해하는 라커룸 토크, 선수들의 사생활, 출퇴근길 모습, 팬들의 인터뷰를 넣으면 분명 더 매력적인 콘텐츠가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울산현대 팬들은 팀의 내밀한 모습을 보고 만족하고 축구팬, K리그 팬들은 과감히 공개된 K리그 팀의 솔직한 모습에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습니다. 홍명보 감독, 이청용, 조현우, 이동경 등 유명 선수들의 출연 그리고 그동안 울산현대가 쌓아온 서사들이 위 의도와 잘 어우러져 K리그 내 이야깃거리를 양산해 낸 것 같습니다.


-  거대 OTT 플랫폼과 손잡은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왓챠에 진입하게 된 과정, 컨텐츠에 대한 왓챠 측의 평가도 궁금합니다.
울산현대의 이야기, 좋은 콘텐츠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나아가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OTT서비스에 '울산현대'라는 이름을 올리고 K리그 팀의 독자적인 콘텐츠가 최초로 OTT에 유통되는 성과를 달성하고 싶었기에 여러 OTT 담당자들과 '푸른 파도' 게재에 대해 논의를 나눴습니다. 그 결과 저희의 목표인 구단 '홍보' 그리고 영상을 통한 '수익 창출'을 두 가지 목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실현시켜줄 플랫폼인 '왓챠'와 함께하게 됐습니다.


생소한 영상 검수와 영상물 등급심의, 기타 등록 과정을 거치며 2021년 10월 8일 첫 게시를 시작했습니다. 구단 공식 유튜브에 올라간 영상보다 약 5~10분 길어진 확장판으로 왓챠에 공개된 '푸른 파도 : 확장판'은 첫 공개일 그리고 주말 동안 왓챠 내 TV프로그램 2위까지 기록했으며, 2021년 10월 시청률 상위 5% 안에 들기도 했습니다.


10월 8일 첫 오픈 후 편당 시청 분수를 볼 때, '스포츠 스타에 기반한 케이블 예능 프로그램'보다도 상당히 높은 시청 분수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왓챠 측에서는 "푸른 파도는 국내 축구 스포츠계의 한 획을 그은 울산현대 구단의 스토리이며, 시청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다큐멘터리"라면서 "이를 스트리밍 서비스할 수 있어서 기쁘고, 더 많은 이들이 감상하길 바란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  이런 팀 내부를 낱낱이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는 자연스럽게 팀의 치부나 안 좋은 상황도 드러나게 됩니다. 홍명보 감독과 선수들의 의사는 어땠나요?
홍명보 감독과 선수들은 다큐멘터리 촬영 제안에 대해 흔쾌히 응했습니다. 홍명보 감독은 이전의 인터뷰를 통해 "울산에 와서 팬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지 고민했고, 쉽게 결정을 내렸다. 팬들이 라커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다면 우리 팀을 더더욱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 것처럼 적극적으로 다큐멘터리 촬영에 협조해 줬습니다. 홍명보 감독은 지난 런던 올림픽 다큐멘터리 촬영 그리고 해외에서 활약할 때의 개방적인 미디어 경험을 '푸른 파도'에 부여해 줬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는 장르인 다큐멘터리의 특성상 기쁜 부분도 아픈 부분도 모두 짚고 넘어가려 노력했습니다. 실제로 2021 K리그1 마지막 라운드를 앞두고 공개된 '에피소드 8 : 우리는 웃을 수 있을까'의 마지막 부분에서 당시 주장 이청용 선수에게 "우리는 마지막에 웃을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진 것처럼 선수들에게 다소 감정적이고 과감한 질문을 했을 때도 선수들이 솔직하고 성실하게 응해줘서 좋은 영상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  다큐멘터리 제작에 투입되는 인원이나 비용도 대충 알고 싶습니다. 
다큐멘터리의 배급과 기획을 담당하는 팬&미디어팀 그리고 울산현대의 영상팀이 함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습니다. 기획, 촬영, 편집, 배급에 총 8명의 인원이 참여해 울산현대의 2021시즌을 고스란히 담아냈습니다. 특히, 다큐멘터리의 영문 번역에는 유소년 영어 강사도 참가해 영상의 완성도를 한층 높였습니다.


K리그와 FA컵 나아가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과 본선까지 담아야 했기에 경비도 상당 부분 지출했습니다. 사실 구단의 모든 모습을 담기 위해서는 구단 모든 구성원들의 협조가 필요했고 또 구단의 민낯을 드러내는 영상 특성상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했습니다. '푸른 파도' 제작에는 한 구단의 정성이 고란스히 담겼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각본이 있는 컨텐츠가 아닙니다. 결국은 팀이 목표로 했던 우승에 성공하지 못하며 다큐멘터리의 결론부가 해피엔딩이 아닌 다음 시즌에 대한 열린 결말 정도로 마무리됐습니다. 사실 결론부를 생각하면 리얼 타임 방식에 대한 우려가 내부에서도 발생하지 않을까요?
'푸른 파도'의 기획 의도 중 하나는 선수단의 진정성, 우승과 승리를 향한 염원을 팬들에게 전하는 것 그리고 영상을 통해 한 시즌 전체를 리얼 타임으로 팬들과 호흡하는 것 이었습니다.
 
'푸른 파도'를 보셨던 분들은 이번 다큐멘터리가 구단과 선수들이 우승과 승리 간절히 원하고 팀을 사랑하는 모습을 잘 담았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결론의 해피엔딩을 떠나 선수들과 팬들이 소통하는 매개체 역할을 했기 때문에 구단 내부적으로는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021시즌 대구 FC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를 내밀하게 담은 이유도 다음 시즌에 대한 열린 결말로 시리즈를 마무리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 기인합니다.


-  제목을 푸른파도로 짓게 된 이유는요?
목표를 위해서 끊임없이 몰아치는 모습, 해안 도시인 울산을 상징하는 요소, 울산현대의 상징색인 푸른색을 담는 '파도'가 지난 시즌 우리가 전하려는 이야기의 전부를 함축하고 있어 제목을 정하게 됐습니다.


- 이런 시도는 팀의 사관(史官) 역할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한 시즌에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쌓이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다음 시즌에도 제작이 될까요?
다가오는 시즌에도 제작할 예정입니다. 홍명보 감독 또한 "이런 다큐멘터리가 선수들과 팀의 기록을 남기는 뜻깊은 기록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에피소드 9 : 파도가 끝나는 곳에서' 발표와 같이 후속 시리즈 제작을 알렸습니다. 새로운 구성과 내용으로 한층 더 흥미롭고 매력적인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극장판 등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기회를 추가 확장하는 것도 고민 중이신지?
'푸른 파도'를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다양한 채널로 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상 자체로도 또 영상을 통한 소통 방식 또한 다양하게 기획하고 있습니다.


사진=울산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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