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1000페이지 심사보고서, 항공산업 구조조정 신호탄 되나

강기헌 2022. 1. 11.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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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여객기가 인천국제공항에 대기하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최근 공정위가 발송한 기업 결합 심사보고서를 받아 검토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항공산업 변침(變針)의 신호탄이 될까.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최근 발송한 기업 결합 심사보고서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심사보고서에 담긴 내용에 따라 국내 항공산업 구조조정은 물론 항공사 노선 변화가 불가피해서다. 이에 앞서 공정위는 지난해 연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 결합에 대해 조건부 승인 방침을 정했다.

11일 항공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1000페이지 분량의 심사보고서에는 조건부 승인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 내용이 담겼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심사보고서를 검토하고 있는 중”이라며 “검토가 끝난 뒤 공정위에 의견서를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이를 토대로 이달 말 전원회의를 열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 결합을 승인할 예정이다.

공정위 심사보고서에는 양대 항공사의 슬롯과 운수권 반납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슬롯(slot)은 항공기가 공항에서 이·착륙을 하거나 이동하기 위해 배분된 시간을 뜻한다. 운수권(traffic right)은 정부가 일정한 기준(운항횟수·운항 기종)에 따라 국적 항공사에 배분하는 권리를 말한다. 국제항공운수권은 양국 정부가 항공회담을 통해 결정한다.

공정거래위원회. 연합뉴스

공정위가 문제로 삼은 건 두 회사 합병 후 점유율이 100%에 달하는 노선이다. 취항지 기준으로 뉴욕,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시드니, 파리, 바르셀로나 등이다. 공정위는 시장 경쟁이 제한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 슬롯 중 일부 반납을 제시했다. 양대 항공사 결합 이후 독점이 우려되기에 일부 슬롯을 반납해 시장 경쟁을 저해하지 말라는 주문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조건부 승인을 발표하면서 반납이 필요한 구체적인 슬롯 수를 밝히지 않았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심사보고서에는 파리·바르셀로나 등 유럽연합(EU) 취항지에 대한 슬롯 반납 요구 사항이 담겼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뉴욕 등 북미 노선은 사실상 완전 경쟁 시장이기에 운수권이 의미가 없다는 판단이 깔린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방침을 거스르기 힘든 양대 항공사는 난감한 표정이다. 슬롯과 운수권 반납을 요구한 노선이 소위 돈이 되는 알짜 노선이라서다. 양대 항공사 노조는 따로 입장을 내지 않았지만 노선 반납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에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한항공 노조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약속한 고용 유지 조건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정부의 조건부 승인이 인력 구조조정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한항공-아시아나 기업결합 국가별 신고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저비용항공사(LCC)는 정부발 슬롯·운수권 반납에 기대감을 품고 있다. 티웨이항공이 지난 5일 에어버스 중대형 항공기 한 대를 다음 달 도입한다고 밝힌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티웨이항공은 “시드니 노선 등 중·장거리 노선에 항공기를 투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양대 항공사 기업 결합에 따라 운수권 반납이 현실화되면 노선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적자가 쌓인 LCC가 중대형 항공기를 들여와 운영하기엔 여력이 부족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중대형 항공기 운영 및 정비는 LCC에는 또 다른 과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북미 및 유럽 노선은 항속시간 10시간 이상의 비행기를 따로 들여와야 하고 여기에 정비 및 운영 경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국내 LCC는 대부분 항속시간 기준으로 5시간 내외의 항공기 운영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 인천공항 아시아나항공 화물터미널에서 수출화물이 비행기에 선적되고 있는 모습. 김상선 기자


항공업계 내부에선 정부의 조건부 승인이 외국 항공사에 이득을 안겨줄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운수권이 외국 항공사에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는데 이는 오해”라며 “운수권은 서로 다른 국가의 항공 당국이 부여하는 것으로 대한항공이 반납한 운수권을 국외 항공사에 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항공산업이 국내뿐만이 아니라 글로벌 항공사 간 경쟁을 피할 수 없는 만큼 양대 항공사의 슬롯·운수권 반납이 항공사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것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임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항공산업은 태생적으로 글로벌 경쟁이 불가피한 구조”라며 “국적 항공사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게 국내 시장 경쟁 제한 해소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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