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편제 뿌리를 밝혀낸 것이 가장 큰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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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수 기자]
▲ 1500여년 전 신라와 백제사이에 벌어졌던 아막성전투 현장지도와 자신의 저서를 들고 있는 김용근 지리산문화자원연구소장. 지리산 인근의 구전문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
ⓒ 오문수 |
정유재란 당시에 벌어졌던 남원성 전투 취재를 위해 남원에 들렀다가 남원 향토문화학자인 김용근씨를 만났다. 이웃집 아저씨 같은 수더분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손을 내미는 그와 대화를 나누며 많은 것을 알게 됐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우연히 아영에 사는 친구집에 놀러갔을 때 토기가 나와서 도자기에 관심을 두면서부터 문화재연구에 뛰어들었다"는 김씨. 그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현관 입구 벽에 걸린 고지도를 보고 범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의 명함 속에 기록된 공식직함에는 '지리산문화자원연구소장'이란 글귀가 보였다. 남원이 지리산 자락 아래에 있기 때문에 이해가 됐지만 그 외에도 네 가지 직함이 더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지역사료조사위원, 농어촌퍼실리테이터, 문화유산해설사, 농촌문화자원조사연구원이다.
▲ 김용근씨가 40여년 동안 조사연구한 자료를 모아 21권의 책으로 출판했다. |
ⓒ 오문수 |
새마을 사업이 한창인 시절 주택개량사업을 할 때 역사를 모르는 노인이나 주민이 버리는 것을 모아 데이터 자료화했다. 공직에서 퇴직한 그는 40여년 간 모은 자료를 엄선해 21권의 책을 발간했다. 그가 40년간 모은 숨어있던 자료를 모아온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문화재에 문외한인 분이 문화재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저는 제 고향과 지리산에 전해오는 구전문화에 관하여 조사연구를 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향토문화와 문화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는데요.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제 친구집 에 갔는데 뫼똥(무덤) 감자를 캐는 작업을 도와 달라고 해서 밭에 가보니 주위에 큰 고분들이 수십 개가 보였고 어떤 고분은 봉분 위를 밭으로 만들어 거기에다 감자를 심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 원래 만인의총 모습. 일제강점기 시절 남원성 북문에 있던 만인의총 자리에 남원역을 설치했다. |
ⓒ 김용근 |
- 냄 새도 나고 돈도 안 되는 문화재를 사는 남편에 대해 부인께서는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요?
"제가 수집하고 연구 해온 분야는 대부분 구전 문화입니다. 옛날 무당들이 쓰던 북이라던지 소리꾼들의 사설집이라든지 심지어는 영혼을 위로하는 작은 상여와 당산제에 내려오는 제기 같은 것들이었어요. 그런 것들을 집에 두는 것은 좋지 못하다는 선입감 때문에 집사람이 매우 싫어해서 시골 빈 집 창고를 빌려서 거기에다 보관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그런 것들을 가져다 버려서 제가 다시 찾아오던 때도 있었습니다."
"문화재는 조상의 유전자가 변형되지 않고 후손에게 제대로 전해지게 하는 생명의 에너지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곧 향토의 자존감이 되고 고을 사람들은 그 자존감으로 애향심을 가지게 되지요. 그 실체는 나라가 적에게 침입당하거나 고을이 위기에 처할 때 구국과 의병의 정신으로 이어져 목숨을 바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지요. 유형이든 무형이든 향토문화라는 것은 매일 먹고 사는 밥과 반찬처럼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에너지라고 생각합니다. 선진국의 필수 조건은 문화강국이어야 하기 때문에 문화재 발굴과 연구는 국민의 일상적 관심과 영역 속에 존재해야 합니다."
▲ 동편제 시조 송흥록에 대한 구전조사차 운봉에 사는 92세 노인에게서 자세한 사항을 녹취하고 있다. 김용근씨 설명에 의하면 20여년전 일이라고 한다 |
ⓒ 김용근 |
- 지금껏 문화재를 연구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낀 점은 무엇이며, 후회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판소리는 세계무형유산입니다. 판소리의 실체는 명창에 있고 구전심수라는 전승 방법에 따라 선생에게서 제자에게로 이어지게 됩니다. 조선시대 선대 명창에게서 나온 판소리가 지역성을 가진 소리가 되면서 동편제, 서편제 같은 구분이 생겨났고 동편제 시조라는 가왕 송흥록 명창의 인문적 실체가 보이지 않은 것이 늘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동편제 명창에 대한 인문적 실체 조사를 시작하였고 송흥록 명창의 후손을 찾기 위해 남원에서 수원까지 매주 일요일마다 기차로 올라가 일제강점기에 후손들이 살았다는 소문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찾아다녔습니다. 86번째 수원 방문에서 후손을 찾아 동편제 시조의 실체를 확인해 냈던 것이 큰 보람입니다. 80년대 이후 농촌의 어르신들이 돌아가면서 향토문화의 기둥인 구전 자원의 소멸이 가장 아쉽습니다. 좀 더 열심히 많은 구전 자원을 채록 조사하지 못한 것이 후회로 남습니다."
- 문화재에 관심이 없는 분들한테 하고 싶은 말은?
"문화는 심신의 보약입니다. 등산이나 낚시나 골프나 여행이나 그 모든 것의 심신 치료제는 그곳 주변에 존재한 문화에서 받을 수 있는 선한 영향력에서 더 큰 가치를 가질 수 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내 몸에 문화의 눈을 들이면 아름다운 세상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내 주변의 문화재와 어르신들의 향토 구전에 귀와 눈을 대는 것은 수십 번의 인생을 한 번에 살다 가는 행운을 얻는 것이 될 것입니다."
- 장래 계획은?
"지난 40여년 간 조사해놓은 농촌과 지리산 그리고 우리 고을에 대한 자료를 콘텐츠별로 분류 정리하고 그것을 문화자원으로 활용한 향토 상품개발에 나서볼 계획입니다."
"40년간의 공직생활 동안 문화지킴이가 된 또 다른 사연이 있는가?"를 묻자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아버지 농사일을 돕던 김용근씨는 어느날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아버지한테 합격통지서를 갖다 드렸더니 "공무원을 해서는 절대 안 된다"며 합격통지서를 찢어버렸다.
"아버지가 합격통지표를 찢어버린 이유는 한 가지였어요.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 앞잡이 공무원 때문에 18세에 일본에 징용되었다가 겨우 귀국하셨기 때문에 고통을 잊지 못 하고 공무원 말고 사회봉사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계속 공무원을 하겠다고 주장하니 아버지가 세 가지 조건을 내밀었습니다. 그 약속 3가지는 퇴직 때까지 저의 공직 철학이었습니다."
첫째, '아침 7시 30분 전에 출근하라'. 그의 부친이 김씨에게 부탁한 뜻이 있었다. 농촌에서는 모두가 새벽부터 들에 나와 농사일을 하는데 해가 둥실 떠 있을 때 출근하는 것을 농민들이 보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농민들 마음을 상하게 한다는 것.
둘째, '월급은 백성들의 피이니 월급의 20% 정도는 반드시 어려운 이웃에게 남모르게 도와주어라'. 김용근씨는 처음 3년 동안은 그렇게 했고 이후에는 향토문화를 조사하는 비용으로 사용하고 조사한 자료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방식으로 했다.
▲ 정유재란 당시 왜군에 함락되어 만여명이 희생되었던 남원성 사진. 남원 인근의 수많은 역사 문화 자료를 소장한 김용근씨가 보내왔다. |
ⓒ 남원성 |
남원성과 교룡산성, 만인의총 안내를 마친 김용근씨가 장래 계획에 대해 얘기하며 마무리를 지었다.
"아버지와 맹세한 약속을 명심하며 퇴직하였으나 후회가 많아요. 향토의 구전 자원은 어르신들에게 존재합니다. 어르신들의 이야기 속에 음식, 역사, 민방의학, 풍수지리, 전쟁사 같은 것이 존재하는데요. 향토문화 연구는 같은 곳을 수십 번 가야하는 발품이 답을 내어 준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향토사 연구와 정리 결과물로 지역 사회에 보답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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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뉴스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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