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부장관 김재섭의 헬문현답] 꾸준한 불완전이 만든 완벽
2018년 여름, 김나윤씨는 큰 사고를 겪었다. 오토바이에서 떨어지면서 왼팔이 잘려나갔고, 목과 허리가 부러졌다. 떨어진 왼팔은 패혈증으로 인해 접합에 실패했고, 몸을 움직일수 없어서 수개월 동안 피떡으로 뒤엉킨 머리도 감지 못했다. 그랬던 김나윤씨는 불과 3년 뒤, WBC(World Body Classic) 피트니스 대회에서 3관왕을 한다. 장애인 부문이 아닌 일반 선수들이 참여한 리그였고, 평생을 미용사로 일하면서 운동에는 관심조차 없었던 사람이기에 놀라움은 더 컸다.
‘한 팔이 없는 피트니스 선수’라는 스토리에 많은 사람들이 이목을 집중했다. 그녀가 풀어낸 이야기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운동을 꾸준히 이어가는 사람들은 용기를 얻었고,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운동을 게을리 했던 이들은 반성했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신체조건 속에서도 대회 우승을 거머쥔 그녀의 사연을 듣기 위해 방송과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도 쇄도했다.
나도 김나윤 선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면서, 이전에 있던 인터뷰를 훑어 봤다. 첫 인터뷰를 읽고서는, 관성에 빠져 정해진 운동 루틴을 수행하는데 급급했던 자신을 돌아봤다. 두 번째 인터뷰를 보면서 부터는 묘한 아쉬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쉬움의 정체는 나윤씨의 모든 인터뷰 내용이 거의 같았다는 것인데, 장애를 얻고 그것을 독하게 극복해 가는 과정과 장애를 알리기 위해 선수가 되기로 결심한 사연이 모든 인터뷰의 골자였다.
아마도 김나윤 선수를 인터뷰 했던 모든 매체들이 김나윤 선수에게 비슷한 대답을 원했던 것 같다. 김나윤 선수가 해야할 말과 역할을 이미 정해놓은 ‘답정너’식 인터뷰였다는 말이다. ‘장애가 있는 나도 악조건을 극복하고 몸짱이 되는데 당신들은 무얼 하는가?’라는 호통이나, 뭐든지 마음먹기에 달렸으니 독하게 해보라는 뻔한 정답을 요구하는 수준. 하지만 꿈많던 20대 여성인 그녀가 좌절을 이겨내고 피트니스 선수가 된 과정이 그렇게 매끈하게 서술될리 없었다.
‘독기’, ‘의지’와 같이 이전 인터뷰에 담긴 치열한 단어들이 무색하게, 실제로 만난 김나윤 선수에게서는 여유와 편안함이 묻어났다. 자신의 몸이 고대 그리스의 비너스상 같지 않냐며 되레 농담을 건냈다. 덕분에 나는 훨씬 수월하게 인터뷰를 이어갈 수 있었는데, 장애인이 아닌 오로지 운동인의 정체성으로 그녀를 들여다 보고싶은 욕심이 생겼다. 인터뷰는 점점 운동인 대 운동인의 대담으로 바뀌어 갔다. 악조건 속에서 어떻게 멋진 몸을 만든 그녀만의 운동법을 질문한 나에게 김나윤 선수는 역시나 뜻밖의 대답을 이어갔다.
“안되는 건 쿨하게 포기합니다.”
역시나 ‘독기’보다는 ‘여유’라는 단어가 그녀를 정의하는데 더 알맞다는 확신을 하게된 기점이다. 김나윤 선수의 성공 비결은 몸의 온전함에 대한 집요함 보다, 부족함을 인정하는 용기와 너그러움에서 나왔다. 김나윤 선수는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과감히 포기하는 강단이 있었다. 그러나 꾸준했고, 할 수 있는 것을 해냈다.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이상적인 몸이 되기를 포기하면서도 꾸준함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운동을 오래 하면서 역설적인 장면들을 자주 목격했다. 완벽한 몸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불완전해 지는 것을 자주 보았다. 개인의 상상 속에서 그려낸 몸이 현실에서 구현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면 현실과 상상의 간격만큼 결핍이 생긴다. 그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로 갈린다. 시도도 하지 않고 지레 포기해 버리거나, 완벽한 몸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자신의 일상을 망가뜨린다. 이상하게도 몸을 만들려는 사람들에게는 ‘중간’이 별로 없다.
포기 또는 집착. 어느 방식이든 건강하지 않다. 우리는 불완전성에 대한 인정으로부터 우리는 그나마도 완전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우리가 운동을 하지 못하는 핑계를 떠올려보자. 운동 자세를 정확히 몰라서, 시간이 부족해서, 아픈 데가 있어서 등등. 변명의 이유는 수백가지가 넘지만 정리해보면 ‘완벽함’에 대한 불필요한 욕심이다. 충분한 운동시간, 정확한 운동 자세를 운동의 전제로 생각하면 그 조건을 만족시킬 사람은 전업 운동선수 말고는 없다. 운동 시간의 부족, 신체 기능의 미흡, 체형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일단 훈련에 임해야 그나마 완벽에 한 발자국이라도 다가가게 된다.
김나윤 선수는 몸의 완전성에 대한 포기하면서, 역설적으로 대회 우승을 거머쥐었다. 꾸준한 불완전은 완전한 아름다움으로 태어났다.
김나윤 선수는 스스로를 밀로의 비너스상으로 비유하며 자신의 유튜브 채널명을 ‘윤너스’로 지었다고 한다. 딱이다 싶었다. 밀로의 비너스 상은 팔이 훼손되었지만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의 3대 작품으로 손꼽힌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은 그가 작곡한 음악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곡 중 하나로 꼽힌다. 장애가 있는 김나윤 선수는 저명한 피트니스 대회에서 당당하게 우승을 거머쥐었다.
김나윤 선수의 완벽한 불완전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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