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경영] 카자흐스탄의 수도 이름

이현우 2022. 1. 1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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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규모 시위로 전 세계적 관심을 받고 있는 카자흐스탄의 수도 이름은 '누르술탄'이다.

전임 대통령인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가 2019년 퇴임하면서 원래 지명이던 아스타나 대신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빛나는 군주'라는 뜻인 자신의 이름이 영원히 수도에 새겨지길 바랐기 때문이라 알려져 있다.

이번 카자흐스탄 시위대의 주요 화두는 이 누르술탄의 축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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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6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전 대통령이 자신의 후임으로 당선된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한 모습. 누르술탄(카자흐스탄)=로이터·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최근 대규모 시위로 전 세계적 관심을 받고 있는 카자흐스탄의 수도 이름은 ‘누르술탄’이다. 전임 대통령인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가 2019년 퇴임하면서 원래 지명이던 아스타나 대신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빛나는 군주’라는 뜻인 자신의 이름이 영원히 수도에 새겨지길 바랐기 때문이라 알려져 있다.

이번 카자흐스탄 시위대의 주요 화두는 이 누르술탄의 축출이었다. 시위대가 가장 크게 부르짖은 구호는 "노인은 이제 그만 나가라"는 말이었다. 이는 퇴임한 지 이미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배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나자르바예프를 겨냥한 구호였다.

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가 처음부터 이렇게 나쁜 것은 아니었다. 1990년 옛 소련에서 갓 독립한 신생국 카자흐스탄이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안정적인 국가로 불렸던 것은 그의 공이 컸다. 독립 직후 카자흐스탄은 카자흐인, 러시아인, 타타르인 등 여러 민족이 뒤섞인 데다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등 종파도 다양하게 퍼져 있어 인종 및 종교 갈등이 가장 크게 번질 수 있는 국가였다.

이런 우려를 막아낸 것은 나자르바예프가 추진한 포용정책이었다. 그는 2001년 미국에서 발생한 9·11 테러 이후 세계종교지도자대회를 개최하자고 제안했고, 이후 3년마다 카자흐스탄에서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불교, 힌두교 등 주요 교단에서 대표단이 파견돼 대회가 이어져오고 있다.

독립 이후에도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러시아를 공용어로 채택한 것도 그의 공로였다. 카자흐어의 사용을 독려하면서도 각 민족 간 소통에서는 19세기 이후 계속 사용해온 러시아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의 이러한 적극적인 포용정책 덕분에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민족 간, 종교 간 분쟁이 없는 안정된 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러나 30년에 이르는 장기집권은 통합의 영웅을 점차 독재자로 바꿔갔다. 그는 장기집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관료가 생길 때마다 대규모 내각 교체를 단행하고 곳곳에 자신의 동상을 건립하며 개인숭배도 강요했다.

빈부격차도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카자흐스탄은 석유와 천연가스, 우라늄 등 자원부국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2000년대 초반에 1만달러를 넘어설 정도로 중앙아시아 최대 부국이었지만 국부의 절반 이상이 소수 특권층에 집중됐다. 정경유착과 부정부패가 심해지는 와중에도 나자르바예프는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해 측근들의 부정부패에 한없이 관대한 모습만 보였다. 권력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건국의 영웅을 악독한 독재자로 뒤바꿔버린 셈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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