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 이래 최악 이념분쟁 중" 거장 스필버그가 이 뮤지컬 만든 이유
골든글로브 작품상·여주상 등 3관왕
"사랑이 증오보다 중요하단 메시지"
“오늘 밤, 오늘 밤은 당신뿐이죠~.” 뉴욕 뒷골목 발코니에 매달린 이민자 청년 토니와 마리아의 아름다운 주제가 ‘투나잇’(Tonight‧오늘 밤) 가사다. 1957년 초연부터 ‘브로드웨이의 신성한 괴물’로 불려온 동명 뮤지컬이 스크린에서 부활한다. 지난 9일(현지시간) 골든글로브 3관왕(코미디/뮤지컬-작품상‧여우주연상‧여우조연상)에 올랐다.
12일 개봉하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할리우드 흥행 귀재 스티븐 스필버그(76) 감독의 첫 뮤지컬 영화다. 스릴러 영화 ‘듀얼’(1971)로 데뷔 이래 공포영화 공식을 바꾼 ‘죠스’(1975)부터 SF(‘E.T.’ ‘우주전쟁’ ‘마이너리티 리포트’ ‘레디 플레이어 원’), 모험(‘인디아나 존스’ ‘쥬라기 공원’), 애니메이션(‘틴틴: 유니콘호의 비밀’)까지 안 해본 장르가 없는 그가 이제 와서 왜 뮤지컬에 도전했을까. 그것도 1961년 같은 뮤지컬을 먼저 스크린에 옮겨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 등 10관왕을 받은 동명 영화가 있는데도 말이다.
스필버그는 영화사와 사전 인터뷰에서 “이 작품이 사랑이 증오보다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 이 나라는 19세기 남북전쟁 이래 가장 극렬한 이념 분쟁을 겪고 있다. 지금이 이 이야기를 하기에 적절한 시기”라면서다.
뉴욕 철거촌 이민자들의 '로미오와 줄리엣'
때는 1957년 여름, 링컨 공연예술센터 건립을 위해 철거가 한창인 뉴욕 어퍼웨스트 사이드 거리에서 폴란드‧아일랜드계 백인 이민자 갱단 ‘제트파’의 일원인 토니(안셀 엘고트)와 푸에르토리코계 이민자로 이뤄진 ‘샤크파’ 리더의 여동생 마리아(레이첼 지글러)가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셰익스피어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당시 실제 링컨센터 때문에 쫓겨나야 했던 이민자들의 거리로 옮겨온 이야기다.
“10살 때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브로드웨이 뮤지컬 캐스트 앨범을 처음 듣고부터 언젠가 영화로 만드는 게 꿈이었다”는 스필버그 감독은 브로드웨이 무대를 진짜 거리에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상영시간 156분이 총천연색 의상‧미술과 활기찬 춤‧노래로 가득하다.
디즈니 첫 라틴계 백설공주 꿰찬 신예
1961년 영화는 푸에르토리코 스타 리타 모레노(마리아의 친구 아니타 역)를 제외하고 마리아 역 나탈리 우드를 비롯한 대부분 샤크파가 피부색을 검게 분장한 백인 배우들이었다. 이번엔 1년여 오디션을 거쳐 실제 라틴계 배우를 캐스팅했다. 이번이 데뷔작인 올해 스물의 신예 레이첼 지글러는 콜롬비아계 미국인. 타고난 가창력에 더해 촬영 전 1년간의 보컬 훈련, 8주간 발레 수업 등으로 다진 완벽한 연기를 선보이며, 지난해 디즈니 실사 영화 ‘백설공주’에 사상 첫 라틴계 백설공주로 발탁됐다.
지난달 먼저 개봉한 영미권에선 “‘E.T’ 감독의 수십억 년 만에 가장 시각적으로 흥미로운 영화”(뉴욕포스트), “일류 팝아트의 생생하고 아름다운 조각”(글로브앤메일) 등 호평이 우세하다. 기술적인 완벽함엔 이견이 없지만, 영화가 도달한 결말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스페인어 대사에 자막 없는 이유? 스필버그의 존중
토대가 된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을 떠올리면 이해가 갈 터다. 모든 것을 뛰어넘은 사랑에 빠졌던 순수한 연인은 끝내 “이제 나는 미움을 배웠다”는 말을 남긴다. 그 슬픔에 공감해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로 보는 관객도 있겠지만, 인종‧문화를 뛰어넘은 사랑의 희망 없는 결말처럼 느껴질 가능성도 있다. 미국 매체 ‘워싱턴포스트’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이상하게 퇴행적인 메시지가 있다. 그것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라는 암시”라고 평가했다. 원작 뮤지컬과 1960년 영화는 미국 주류 문화에 푸에르토리코인이 폭력적이고 소외된 존재라는 고정관념을 심는 데 일조했다는 비판도 받아온 터. 이번 영화도 그런 한계점을 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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