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성평등으로 더 부자 된다.. 의심의 여지없이"
20대 한국 여성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미래를 준비하는데 있어 어떤 허들이 있습니까?' 164명이 357개의 허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목소리를 품고, 오마이뉴스 X 시사인 X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여성들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는 아이슬란드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아이슬란드 사람 33명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리가 다다른 결론은 하나입니다. '여성이 멈추면 세상이 변한다.' <편집자말>
[독립편집부 기자]
"불평등과의 싸움에 대담하게 맞서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용기가 필요합니다 (We have to dare to take new steps, to be bold in the fight against injustice)."
2017년 3월, 토르스테인 비그룬드손(Þorsteinn Viglundsson) 전 아이슬란드 사회평등부 장관의 말이다. 2009년부터 매년 세계경제포럼(WEF)이 세계에서 성격차가 가장 적은 국가로 선정한 나라의 장관이 한 말이란 점에서 더 인상적이다. 그때 아이슬란드가 마주한 '새로운 단계'는 임금차별금지법(동일임금인증제) 도입이었다. 비그룬드손 전 장관은 당시 <뉴욕타임스>를 통해 이런 말도 했다.
"사업장 내 성차별 장벽 중 마지막으로 남은 것을 부숴버리고 싶습니다. 역사가 보여주듯, 진보에는 강제성이 필요합니다."
2018년 1월, 아이슬란드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임금차별금지법을 제정함으로써 또 한 단계 진보했다. 그리고 비그룬드손 전 장관은 2020년 8월, 갑작스럽게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발표해 또 한 번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마치 자신의 모험은 끝났다는 것처럼, 그는 2021년 경영 현장으로 복귀했다. 현재 그는 아이슬란드 굴지의 시멘트 회사 혼스타인의 CEO다.
▲ 토르스테인 비그룬드손(Þorsteinn Viglundsson) 전 아이슬란드 사회평등부 장관. 그는 아이슬란드가 2018년 '임금차별금지법(동일임금인증제)를 세계 최초로 도입하는데 앞장섰던 인물이다. |
ⓒ 선재 |
우리가 비그룬드손 전 장관을 만난 것은 장관 시절 그의 급진적인 발언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이력이 더 관심을 끌었다. 2016년 10월 총선을 통해 정계에 입문하기 전까지 그는 철저히 '사용자'로서의 삶을 이어왔다. 아버지가 이끄는 회사에서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이사로 재직했고, 또한 2013년부터 2016년까지는 아이슬란드 사용자협회 회장(우리나라의 경영자총협회 - 기자 주)으로도 일을 했다.
그런 이력의 소유자가 임금차별금지법 도입의 선두에 섰던 것이다. 그 이유는 뭘까. 또한 다시 사용자로 복귀한 지금에도 성평등에 대한 주관이 확고한지 궁금했다. 지난 10월 25일(현지 시간)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 있는 혼스타인 회의실에서 그와 마주했다.
먼저 비그룬드손 전 장관은 성평등은 경제적 성장에도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평등을 이뤘기에 여성의 경제 활동률이 높아졌고, 또한 그래서 아이슬란드 1인당 국민총생산이 남유럽 쪽보다 훨씬 높은 것"이라면서 "이건 평등이나 인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성평등으로 더 부유한 사회가 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시스템으로 사회가 더 부유해지는 것은 아이슬란드 같은 작은 나라 뿐 아니라 규모가 큰 나라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비그룬드손 전 장관의 이같은 주장은 "숫자가 변화를 만든다"는 단순하고도 명료한 논리를 바탕에 두고 있었다. 그는 "1인당 국민소득 등 경제지수와 여성 경제활동 참여 비율에는 상관관계가 있다"면서 "그만큼 많은 사회 구성원이 경제활동에 참여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성의 정치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도 그는 "정치권에 여성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그들의 위치가 견고해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그룬드손 전 장관은 단언했다. "나는 여성의 정치 참여로 사회가 변했다고 믿는다"고 했다. "여성의 정치 참여가 사회 변화의 핵심"이라고도 했다. 그는 "직장에서 여성의 지위가 위태로워지는 걸 막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 가족을 만들기 좋은 환경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라면서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 모든 사회는 저출산에 직면해 어려움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다음은 주요 문답을 정리한 것이다.
▲ 토르스테인 비그룬드손(Þorsteinn Viglundsson) 전 아이슬란드 사회평등부 장관. |
ⓒ 선재 |
- 동일임금인증제란 무엇인가?
"기업이 성별이나 인종 등에 따라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고 정부가 인증하는 제도다. 핵심은 증명 당사자를 바꿨다는 것이다. 노동자가 차별을 받았다고 증명하는 게 아니다. 합당한 근거 없이 단순히 성별이나 인종 등의 이유로 차별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업이 증명해야 한다."
- 법안 통과 당시 당신의 역할은?
"이 제도에 대한 논의는 2008년 노동자협회와 사용자협회가 했던 임금 협상 과정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사용자협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이 사실을 알게 됐다. 이 프로젝트가 법으로 제정되지 않는 이상, 일반 기업들이 전반적으로 동참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협회 회장직을 내려놓고 새로운 정당(부흥당)과 함께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했다. 당시 우리 정당 주요 공약으로 동일임금인증제를 내세웠다. 선거 후 우리 당이 연립 정부의 한 축이 됐고, 이 제도를 국회에서 다루는 첫 의안으로 삼기로 협의했다. 국회에서 4개월만에 법안이 통과됐다. 아주 좋은 일이었다."
- 아이슬란드 여성 인권 발전 역사는 차별보다는 평등을 중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발전시킨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서로를 존중하는 그런 철학은 어디에서 왔을까.
"흥미로운 질문이다. 사실 평등을 이뤄내려는 아이슬란드 역사가 짧은 편이기 때문이다. 약 100년 전쯤 여성에게 참정권이 생겼지만, 성평등 투쟁의 시작을 알렸던 1975년 '데이 오프(Women's Day Off, 모든 여성의 월차 투쟁)'로부터는 46년 밖에 되지 않았다. 반세기 전 여성들이 시위를 하며 남성들과 동등한 지위를 요구한 것은 '국민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는 작다 보니까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 항상 불평등을 용인하지 않았다."
- 그런 국민정신이 아이슬란드의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나.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북유럽 국가들은 높은 수준의 성평등을 이뤘고, 여성들의 경제 활동률이 아주 높은 편이다. 1인당 국민소득, 임금 평등, 삶의 행복 지수, 복지 체계 등 삶의 질을 보면 북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상위 10위 안에 있다. 1인당 국민소득 등 경제지수와 여성 경제활동 참여 비율에는 상관관계가 있다. 그만큼 많은 사회 구성원이 경제 활동에 참여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나는 평등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주 중요하다고 확신한다. 여성들의 경제 활동 수준이 비교적 낮은 남유럽의 북쪽 국가들과 아이슬란드가 비슷한 상황이었다면? 성평등을 이뤘기에 여성의 경제 활동률이 높아졌고, 또한 그래서 아이슬란드 1인당 국민총생산이 (남유럽 쪽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이건 평등이나 인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성평등으로 더 부유한 사회가 됐다는 것이다."
- 아이슬란드 인구 규모가 작다. 세계적으로 다른 나라에도, 한국에도 적용 가능한 모델이라고 보나?
"물론이다. 북유럽 전체 인구가 2천만 명인데, 복지나 평등 관련하여 북유럽 국가들의 사회 기저 구조는 비슷하다. 불평등을 습관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세, (그렇다보니) 계급화 진행이 적은 사회여서 내가 어떤 가족으로 태어났는지가 삶에 미치는 영향이 북유럽만큼 적은 나라를 찾기 힘들다. 그렇기에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일궈나갈 수 있고, 사회가 더 부유해질 수 있는 거다. 아이슬란드 같은 작은 나라 뿐 아니라 규모가 큰 나라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2016년 10월 24일 열린 '데이 오프(Women's Day Off, 모든 여성의 월차 투쟁)' 모습. 임금평등을 촉구하는 아이슬란드 여성들의 대규모 데이 오프는 1975년, 2005년, 2010년, 2016년, 2018년에 각각 진행됐다. |
ⓒ kvennafri.is |
- 당신은 1969년생이다. 살아오는 동안 당신의 성평등 인식에 개인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던 일은?
"부모님 두 분 모두 경제활동을 했다. 어머니는 기자였고, 방송국 뉴스 국장이기도 해서 저녁에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 아버지나 우리 삼형제가 요리를 했다. 어느 한 사람 편의를 위해 두 사람 직장 생활 중요도에 차이를 두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컸다. 어머니 세대 여성들은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여러 요구를 했는데, 특히 모두 유치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덕분에 나도 유치원에 다니게 됐다. 그전까지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일이다. 이제는 거기서 더 나아가 아빠와 엄마가 동등하게 유급 출산 휴가를 쓴다. 그러니 고용주로서 경력을 막 시작하는 젊은이를 채용할 때, 그들의 성별은 내 판단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 한국에서는 페미니스트들이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아이슬란드의 경우 여성 권리 신장 과정에서 그런 반응은 없었는가.
"물론 당연히 있었다. 성평등을 추구하는 이들, 페미니스트로 불리는 이들에게 위협받는다고 느끼는 남성들은 지금도 있다. 동일임금인증제 추진 당시에도 기업을 운영하는 60세 이상 남성 중 이 제도가 말도 안 되는 불필요한 거라고 비판하는 이들이 많았다. 여성들이 처음 정치 세계에 발을 디뎠을 때도 많은 남성들이 그들을 아웃사이더 취급했다. 여성 정치인들이 강조하는 의제들을 조롱하고 모욕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정치권에 여성들 수가 늘어나면서 그들 위치가 견고해졌다.
▲ 데이터출처 : OECD |
ⓒ 이종호 |
"동일임금인증제는 경영자에게 아주 유효한 도구"
▲ 토르스테인 비그룬드손 전 사회평등부 장관은 "블루칼라 직종의 경우 여성 직원 비율이 아주 낮다"면서 "이런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여성들에게 좀 더 매력적인 직장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레이캬비크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 모습. |
ⓒ 선재 |
- 당신은 이제 고용주다. 당신에게 성평등이 여전히 중요한 이유는?
"좀 더 나은 경영을 위해서다. 동일임금인증제의 경우 기업 운영에 아주 유효한 도구다. 실제 그 직원이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지, 그 직원의 교육 상태는 어떤지를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게 되니까 훨씬 더 임금을 합리적으로 결정하게 된다. 이 제도 실현에 비용이 많이 든다는 비판이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우리 기업에 적용한 경험에 비춰봤을 때 그 비용이 기업 지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적다.
재미있는 지점도 있다. 우리 회사는 남초 현상이 심하다. 우리 회사 뿐 아니라 블루칼라 직종의 경우 여성 직원 비율이 아주 낮다. 이런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여성들에게 좀 더 매력적인 직장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우리 회사의 가장 큰 도전은 더 많은 여성들이 우리 회사에 지원하도록 하는 것이다. 특정 직종에 한 성별이 집중되는 것은 성평등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항상 섞여 있어야 한다."
- 한국 시민들은 높은 불평등을 감당하고 있고 그걸 합리화하는 것이 이른바 능력주의다. 상대적으로 불평등을 관용하는 기제가 많은 것 같다.
"결국 사회는 개인들의 다양한 장점으로 수혜를 입는다. 모든 사람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회, 각자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사회가 잘 된다. 우리가 이뤄낸 가장 큰 교훈은 평등이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변화는 그냥 이뤄지지 않는다. 총파업을 계기로 여성들이 동등한 권리와 임금 등을 요구하면서 여성의 정치 참여 역시 획기적으로 변했다.
▲ 토르스테인 비그룬드손 전 사회평등부 장관은 "아이슬란드는 성평등으로 더 부유한 사회가 됐다"면서 "이런 시스템으로 사회가 더 부유해지는 것은 규모가 큰 나라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 선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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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이주연·장일호·정창·이정환
영상 : 김민수 | 사진 : 선재 | 제작 : 이종호 | 개발 : 황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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