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정년연장이라는 덫

김찬희 2022. 1. 11.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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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희 산업부장


32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1989년부터 줄기차게 줄기 시작한 인구는 380만명에서 지난해 335만명으로 쪼그라들었다. 더 심각한 것은 고령인구 비율이다. 만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6.0%에서 2021년 20.4%로 치솟았다. 22만9075명에서 68만1885명으로 3배 넘게 뛰었다. 기업과 일자리가 떠나면서 사람도 함께 나갔고, 도시는 갈수록 늙는다. 한때 제2의 도시로 불렸던 부산광역시 얘기다.

그나마 부산 사정은 괜찮은 편이다. 이미 많은 ‘지방’이 인구 순유출, 고령화를 겪으며 소멸로 달려가고 있다. 지난해 8월 기준 광역시·도별로 시·군·구 소멸위험 지역 비율(전체 시·군·구 가운데 소멸위험 지역의 비중)은 평균 47.2%에 이른다. 위기의 정도 순으로 나열하면 강원도 88.9%, 경북 82.6%, 전북 78.6%, 전남 77.3% 등이다. 반면 서울은 0.0%, 경기도는 16.1%에 그친다.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은 여러 복잡한 배경을 깔고 있지만 그 뿌리는 저출산에 닿아 있다. 지난해 처음으로 감소한 총인구는 2040년 5019만명, 2070년 3766만명으로 예상된다. 50년 뒤에 2000만명가량 ‘인구 싱크홀’이 발생한다. 저출산은 경제, 교육, 국방, 연금제도 등 여러 군데를 타격하고 대혼란에 빠트린다. 2070년 생산연령인구(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만 15~64세 인구)는 1737만명으로 2020년 대비 2000만명 감소한다. 생산연령인구는 급감하고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가 급증하는 건 먹고사는 일, 즉 경제 측면에서 엄청난 재난이다.

그래서 정부는 늘 정년연장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박근혜정부는 2013년 만 60세 정년연장을 권고사항으로 도입했고, 2016년 300인 이상(300인 미만은 2017년) 사업장부터 의무화했다. 이러고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서 65세로 다시 정년을 늘려야 한다는 논의가 오간다. 정년연장을 우리만 고심하는 건 아니다. 일본은 이미 65세를 의무화했고, 70세 정년을 권고한다. 독일과 스페인은 65세인 정년을 단계적으로 67세까지 미룰 계획이다.

당장 생산연령인구 감소세를 보면 정년연장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꼴은 아닐까. 청년층이 사실상 출산을 포기하는 배경에는 치명적인 일자리 문제가 도사린다. 질 좋고 안정적인 일자리로 청년층이 쉬이 진입하지 못하면서 지방 소멸, 저출산, 고령화 등은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 이미 한 차례 늘린 정년은 저출산이나 생산연령인구 급감, 연금·복지 시스템 균열 등을 막지 못했다. 합계출산율은 2013년 1.187명에서 2014년 1.205명, 2015년 1.239명으로 2년 연속 반등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2016년 1.172명으로 주저앉았고 2017년 1.052명, 2018년 0.977명을 거쳐 2020년에는 0.837명까지 추락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듯 묘하게도 저출산 심화가 정년연장 시기와 맞물린다.

얼마 전 잇따라 만난 기업 임직원은 이런 말을 했다. 3년 뒤에 퇴직하겠다는 A부장은 정년을 55세나 58세로 되돌리고, 그 공백 부분에 청년을 채워야 한다고 했다. B부사장은 대기업, 정규직, 공무원, 공기업 등 청년층에서 원하는 일자리를 제외한 중소기업 일자리 등에서 정년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숙련 기술자는 원하면 더 길게 일하도록 하는 식이다. 정년연장은 불가피하게 부모·자식 세대의 일자리 쟁탈전을 유발한다. 정년을 늘리는 대신 퇴직자가 새로운 일자리를 쉽게 만날 수 있는 ‘제2의 고용시장’을 만들면 어떨까. 아무런 고민과 준비 없는 정년연장은 위험한 덫이다. 우린 이미 겪고 있다.

김찬희 산업부장 c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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