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수사 경험 없는 판사 출신 3명 요직(처장·차장·수사3부장) 임명, 부실 수사 초래

조강수 2022. 1. 1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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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추락의 네 가지 원인
적법 절차, 인권 보장 미흡으로
황제조사,민간인 사찰 등 잇단 사고
전문가 "인사 잘못, 편향 수사 탓"
공수처 "유구무언, 내부점검" 입장
지난해 1월 21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공수처 현판식에 김진욱 초대 처장(오른쪽에서 셋째),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오른쪽 둘째), 윤호중 당시 법사위원장(오른쪽 넷째) 등이 참석했다. 공수처는 민간인 통신 사찰 의혹으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장진영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일 마지막 신년사에서 "권력기관이 더 이상 국민 위에서 군림하지 못하도록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는 권력기관 개혁을 제도화했다"고 자평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 출범을 공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군림 않는다던 공수처는 기자·야당 의원 등 민간인 사찰 의혹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견제와 균형은커녕 수사력 하향 평준화, 거악(巨惡)이 편히 잠잘 수 있는 나라 만들기라는 비난으로 수사기관에 대한 불신은 더 커졌다. 출범 1년만에 만신창이가 된 공수처, 민생 사건 처리가 늦어진 국수본, 풀잎처럼 누워 잠자고 있다는 비난을 사는 검찰. 문재인 정부 권력기관 개혁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정부 과천청사 외곽에서 바라본 5동 건물 전경. 공수처가 이 곳에 입주해 있다. 조강수 기자

수사력 떨어지는 공수처
지난 7일 오후 정부 과천청사를 찾아 공수처의 문을 두드렸다. 출범 이후 수사 적법성 및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끊이지 않자 내부 검사 회의를 열기로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였다. 방문 안내실에 신분증을 맡기고 공수처장실이나 대변인실을 연결해 달라고 요청했다. 번갈아 두 곳에 전화를 걸던 여직원이 고개를 도리도리 젓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오전에 직원 1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전체 직원이 재택근무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김진욱 공수처장도 출근하지 않고 보건소에서 PCR(유전자증폭) 검사를 받았다고 하네요.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아요. 죄송합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로군, 하고는 돌아섰다. 나중에 전해 들으니 이날 공수처는 청사 5동 내 사무실 전층을 폐쇄한뒤 방역 소독을 벌였다. 문제는 공수처를 습격한 게 코로나19 바이러스뿐만이 아니고 소독해야 할 곳도 사무실만이 아니라는 거였다.
"공수처가 부실·편향 수사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수사의 ABC를 간과한 사고가 잇따랐다. 적법 절차가 무시됐고 피의자 방어권이 경시됐다. 김 처장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헌법상 적법 절차원칙 준수, 인권친화적 수사'와 정반대다. 이쯤되면 '수사팀 전원 물갈이'라는 초강력 소독약을 써야 맞다. 그래도 고쳐지지 않으면 해체가 답이다."(전직 검사장)
공수처가 추락한 이유는 뭘까. 전·현직 검찰 특수통 5명에게 물었더니 네 가지로 분석했다. 결정적 사유로 수사에 대한 무개념에서 비롯된 무리한 수사, 부실 수사가 꼽혔다.
지난해 3월 7일 휴일에 이성윤 서울고검장(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관용차량으로 에스코트해 조사한 이른바 '황제조사'는 수사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훼손한 대표적 사례다. 적법 절차 원칙도 무너졌다. ‘고발 사주 의혹’ 사건과 관련해 김웅 국민의힘 의원의 보좌관 PC를 무단으로 압수수색했다가 "위법성이 중대하다"는 이유로 법원에서 효력이 취소됐다.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에 대한 체포영장→구속영장→재청구 영장은 모조리 "수사 미진"으로 기각되며 망신을 자초했다.

지난해 3월 7일 휴일에 공수처장 관용차량으로 갈아타 '황제조사' 논란 부른 CCTV 영상. [인터넷 캡처]

가장 심각한 건 마구잡이 통신자료 조회다. '이성윤 고검장 공소장 유출' 사건에 대해 공수처가 지난해 5월말 '공제4호'로 정식 입건하고 수사3부를 동원해 수사에 나선 배경부터 의심스럽다. 수사 과정에서 언론인, 야당 국회의원, 윤석열 후보 부부, 한동훈 전 검사장 등은 물론이고 수사중인 사건과 무관한 기자 가족, 50대 주부, 정부 비판 인사들까지 332명(445건)의 통신자료를 조회했다. 여기에 중앙일보 기자 70여명이 참여하는 편집국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을 통신영장을 발부받아 들여다본 정황까지 9일 드러나며 언론 자유와 편집권 침해 파문이 커지고 있다.
고검장 출신 공무원의 지적이다. "수사 능력을 젖혀두고 지휘부가 수사에 대한 개념, 엄중함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총이 주어졌으니 쏜다는 식이다. 왜, 어떻게, 누구를 겨냥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먼저다."
두번째는 인사 패착. 공수처 조직표에 따르면 '공수처 검사'는 23명(정원 25명)이다. 그러나 직접 수사를 해본 경험이 전무한 판사 출신 3명이 공수처장, 차장(여운국, 우리법연구회 활동 경력), 수사3부장(최석규)의 요직을 꿰차고 있다. 통신 사찰 의혹의 진원지가 수사3부인 것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현장 수사 경력이 있는 검사 출신은 고작 5명이다. 나머지 15명은 변호사(10), 공무원(2), 경찰(2), 공공기관(1) 순이다. 이러니 "동네 족구 선수들을 국가 대표 축구 선수로 발탁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애초부터 설계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고소·고발 건 외에 공수처의 자체 인지 수사가 0건인 이유다. "김오수 검찰의 미적대는 대장동 수사로 가장 큰 혜택을 보는 쪽이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라면, 무능 공수처로 인한 최대 수혜자는 고발사주 사건의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아닌가 싶다. 사법적 정의 대신 내편 봐주고 네편 찌르는 것만 보인다. 누구를 위한 개혁인지 되묻게 된다. "(현직 검사장)
정치적 편향성이 세번째로 꼽혔다. 공수처 전체 수사 사건 중 친정부 시민단체가 윤석열 후보를 고발한 사건이 3분의 1이다. '야수처'(야당수사처)라는 비아냥마저 듣는다. 임채진 전 검찰총장은 일찍이 "정치적 사건의 경우 여당과 야당 인사의 균형이 무너지면, 어느 쪽이건 정치적 목적의 수사로 몰아 승복하지 않는다"며 편향성의 위험을 경고한 바 있다
네번째는 입법 과정에서의 태생적 한계다. 원래 공수처장 제청시 추천위원 7명 중 6명 찬성 규정을 둬 여야 합의로 추대할 계획이었다. 이걸 더불어민주당이 일방적으로 5명 찬성시 제청으로 바꿔 단독으로 날치기 처리했다. 야당 추천 위원 2명이 반대해도 청와대가 처장 임명을 강행할 수 있게 됐다. 수사의 독립성·중립성 담보는 물건너갔다. 검찰 기소독점주의의 폐해를 극복할 '반부패 수사기구'라는 당초 취지에서 벗어나 중국 국가감찰위원회를 연상케 하는 '정치적 수사기구'로 변질됐다는 의미다.
공수처 추락과 관련해 '혹시 말 못할 속사정이라도 있느냐'고 공수처 관계자에게 물었다. 그는 최근 "검찰 개혁한다고 만든 기관이 (통신 조회 건수와 관련해) 검찰 핑계를 대는 것도 좀 그렇다"며 "'유구무언이고 내부 점검중'이라고만 이해해 달라"고 답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3일 국회 공수처 사찰 규탄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일각에선 공수처 폐지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민주당은 인력과 예산을 대폭 보강해 수사 능력을 키우겠다는 방침이다. 오른팔이 부러졌는데 왼팔을 수술하는 격이다. "부실 수사, 무리한 수사가 문제이니 수사 능력을 키우고 적법 절차를 지키게 하는 게 해법일 텐데 돈과 사람을 더 주자"는 발상이니 말이다.

검찰은 태업, 경찰은 지연
검찰도 만신창이다. '추미애·윤석열 갈등'으로 초래된 검찰의 이분법적 분열 구조는 여전히 공고하다.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6대 범죄로 수사권이 제한되고 김오수 검찰총장 취임후 일선 검사들 사이에선 "수사를 한들 누가 좋아하느냐"는 자조적 인식이 팽배하다고 한다. 대형 로펌의 형사 담당 변호사는 "요즘엔 검찰이 수사하다가 관할권을 핑계로 경찰로 넘기는 사건도 늘고 있다"며 "전반적으로 사건 자체가 줄고 수사도 오래 걸리며 검찰청이 유령 건물 같을 때가 종종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검·경, 공수처·국수본 등으로 수사기관은 늘어났는데도 내 사건은 물론이고 대형 부패 사범 등을 제대로 수사할 기관이 없다는 불안감이 커진다"며 혀를 찼다. 대장동 전담 수사팀은 출범 100일이 넘도록 이재명 후보 측근인 정진상 선대위 부실장을 소환조차 못하고 있다.
민생 치안 상황은 더 나빠졌다. 경찰청 국수본에 따르면 경찰의 평균 사건처리 기간은 55.6일(2020년)에서 지난해 64.2일로 8.6일 늘어났다. 형사 분쟁 해결에 법률 비용이 더 든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결론은 이렇다. 수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키를 잡고 있었더라면 권력기관 개혁이 그렇게 쉽게 이뤄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법학 교수 출신 민정수석(조국 전 법무장관)이 칼자루를 쥐고 밑그림을 그리면서 70년간 유지된 형사사법 체계의 골격을 3년만에 바꿨다. 검찰 수사·기소권 분산을 통한 수사기관간 힘의 균형을 이상으로 삼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바이러스(정치 검찰)를 소독한다는 일념으로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권력기관 개혁의 '설계자'는 지금의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후회와 반성을 할까, 아직도 개혁에 배고프다고 성을 낼까.

조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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