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 레디? 파이트"..'스우파' 브레이킹 국대 김예리

박린 2022. 1. 10.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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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 아시안게임 브레이킹 여자국가대표 김예리. 최근 스우파 YGX 멤버로 출연해 큰 인기를 얻었다. 강정현 기자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1만명에서 31만명으로 늘었어요. 그 사이 태극마크도 달았네요.”

브레이킹 선수 김예리(22·닉네임 YELL)는 1년 만에 ‘셀러브리티’가 돼 있었다. 그는 최근 댄스 서바이벌 예능 ‘스우파(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YGX 크루로 출연해 큰 인기를 얻었다. 두 달 전, 브레이킹 여자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년 전에는 ‘2018년 유스올림픽 브레이킹 동메달리스트’ 의 경력으로 주목 받는 정도였다.

10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앙일보 본사를 찾은 김예리는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해달라고 하자 차가운 바닥에 머리를 대고 몸을 공중에 던져 한 바퀴 돌았다. 시그니처 무브인 ‘헤일로-탭 밀’을 가볍게 보여줬다. 괜히 국가대표가 아니었다.

바닥에서 고난도 기술을 보여주는 김예리. 강정현 기자


김예리는 올해 9월 열리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브레이킹 국가대표로 출전한다. 힙합 비트에 맞춰 고난도 춤을 추는 ‘브레이킹’은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2024년 파리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김예리는 작년 11월 말 국가대표 선발전 ‘브레이킹 K 파이널’ 비걸(B-girl) 부문에서 우승했다. 결승에서 전지예를 2대1로 꺾었다. 1대1 배틀 방식으로, 경쟁을 펼치는데 피겨 스케이팅처럼 심사 위원 5명이 기술·수행력·창의성 등을 종합 평가해 라운드별로 승자를 가린다. 김예리는 ‘니 스핀(두 무릎을 다 대고 도는 기술)’으로 호응을 이끌어냈다. 음악과 유니크한 춤 선이 잘 맞아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상대 선수를 압도할 만한 에너지와 기세가 대단했다.

김예리는 “국가대표 2차 선발전 전날에도 촬영이 있었다. 비타민과 홍삼을 챙겨 먹었다.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버텼다”면서 “대표선발전과 방송 촬영일정이 겹쳤지만, 오히려 ‘스우파’에서 배틀을 경험하면서 다른 댄서들의 다양한 퍼포먼스를 지켜볼 수 있었‘다. 큰 공부가 됐다. 특히 허니제이 쌤(홀리뱅)의 무대 구성과 안무 창작 능력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귀에서 초소형 보청기를 꺼내 보여주는 김예리. 박린 기자

방송에서 김예리가 1대1 배틀에 나서자, YGX 동료 리정은 안타까워하며 “노래 좀 키워주세요”라고 소리쳤다. 청각장애 4급인 김예리는 음악을 잘 듣지 못하는 데 다 링(세트장)과 스피커의 거리도 가깝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예리는 “3~4세 때부터 소리가 조금씩 안 들렸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보청기를 꼈다. 가끔 말을 못 알아 들으면 멤버들이 따로 얘기해준다”며 2~3㎝ 크기의 초소형 보청기를 귀에서 꺼내 보여줬다. 댄서에게 청각장애는 치명적 단점이다. 그는 음악이 잘 안 들릴 때면 동료나 상대 선수의 동작을 보는 한편 속으로 ‘원, 투’를 외치며 박자를 맞춘다고 했다.

김예리는 “음악이 잘 안 들려도, 바닥이 딱딱해도 무브로 증명하면 된다. 한계를 브레이킹하는 ‘브레이커’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의 인스타그램 프로필에는 ‘limitless artist(한계가 없는 예술가)’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김예리와 리정(가운데) 등 YGX 멤버들. [사진 김예리 인스타그램]


김예리는 “그러는 본인은 스무 두살 때 뭐하셨어요?”라고 말한다. 다른 이에게 용기와 영감을 주기 위해서 이렇게 행동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김예리는 “나는 여러분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생각보다 정말 강하다. 걱정이 앞서 시도조차 못 하는 것보다 ‘할 수 있다’고 자신을 믿으면 한계를 넘을 수 있다”고 했다.

김예리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짧은 쇼트 컷 스타일의 머리를 유지해왔다. 춤출 때 머리카락이 방해가 되다 보니 이런 스타일을 하게 됐다. 김예리는 “팬의 98%가 여성이다. ‘같은 여성이지만 멋지다’고 말해주는 팬이 많다. 국가대표 선발전은 무관중으로 열렸는데 제가 경기장에 입장할 때 응원해주려고 꽃을 들고 찾아온 팬도 있었다. 물론 간혹 남성 팬도 있다”며 웃었다.

바닥에서 고난도 기술을 보여주는 김예리. 강정현 기자


국내 ‘비 걸(B-girl)’은 20명이 채 안 된다. 국가대표 선발전 여성부 파이널에는 12명만 참가했다. 김예리가 고군분투하며 ‘비걸’에 대한 인식이 점차 바뀌고 있다. 그는 ‘2019년 레드불 BC one E 배틀’에서 4강(공동 3위)에 올랐다. 작년 11월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열린 ‘레드불 BC 원 월드 파이널’에는 초청 선수로 참가했는데 16강에서 로지스틱스(미국)에 졌다. 김예리를 꺾은 로지스틱스가 결국 우승했다.

브레이킹 국가대표 선수 4명은 지난 5일 충북 진천선수촌 훈련 개시식에서 다른 종목 선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연을 했다. 4월에는 선수촌에 정식 입소할 예정이다. 김예리는 “뷔페식으로 나오는 선수촌 밥이 맛있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유도 선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정말 살벌하게 훈련을 하는 모습을 보고 ‘국가대표는 뭔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일본은 브레이킹 선수들이 어릴 때부터 지자체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다. 여자 세계랭킹 1, 2위가 일본의 아유미와 아미다. 아시안게임에서 이들과 경쟁해야 한다. 김예리는 “목표는 메달 획득이다. 일본 선수를 넘기 위해 몸이 부서져라 준비해보겠다. 후배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싶다. 비걸이 설 수 있는 무대가 많아지고, 대회 상금도 커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스우파’에서 일대일 배틀을 앞두고 강다니엘(진행자)이 외친 유행어로 김예리는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항저우! 레디? 파이트.”

■ ◇김예리는...

「 출생: 2000년생(22세, 서울)
닉네임: YELL(이름 예리를 빨리 말한 것)
소속: 갬블러크루, YGX, NWX
주요 경력: 2018 유스올림픽 동메달, 2019 레드불 BC one E배틀 공동 3위,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좌우명: limitless(한계가 없다)

스케이트 보드 국가대표 조현주. 김성룡 기자
세계 최정상 프로게이머 '페이커' 이상혁. 오종택 기자


브레이킹 남자 세계 2위 비보이 윙. [사진 레드불]

■ Z세대 잡아라, 젊어지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에 새로운 종목을 잇달아 추가하고 있다.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스케이트 보드가 첫 정식 종목이 됐고, 2024년 파리올림픽에는 야구 대신 브레이킹을 정식 종목에 넣었다. 올해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선 브레이킹, 스케이트 보드 뿐만 아니라 e스포츠도 정식 종목이 된다.

최근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방송 시청자가 급감함에 따라 IOC와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가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Z세대(1995년 이후 출생자) 중에는 “프리미어리그(축구), 메이저리그(야구), NBA(농구)가 있는데 굳이 왜 올림픽을 보느냐”는 생각을 가진 경우가 적잖다.

201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유스올림픽 동메달리스트 김예리는 “당시 브레이킹 인기가 다른 종목을 뛰어 넘었다. 관중들이 놀이동산에 온 것처럼 즐거워했고, 스테이지 옆까지 최소 1만 명은 모였다“며 “브레이킹은 기본적으로 춤 경연이지만 배틀 형식이라 스포츠로서의 요소도 지녔다. 보고 듣는 재미가 있는 데다 새로운 종목이라 관심이 더 집중될 것”이라고 했다.

스케이트 보드 국가대표 조현주(15)는 “코로나 19로 ‘집콕’이 길어지니 전 세계에 ‘힙’한 게 유행하는 것 같다“고 거들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한국 스케이트보드 대표 6명은 모두 중학생이다.

한국 브레이킹은 2005년부터 15년 넘도록 세계 톱클래스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코로나 19로 국제 대회에 못 나가 세계댄스스포츠연맹 랭킹은 낮지만, ‘비보이 랭킹즈’에 따르면 남자 국가랭킹은 한국이 미국에 이어 2위다. 개인 세계랭킹도 한국인 윙이 2위, 홍텐이 3위다. 비보이 Fe는 “한국 사람들은 한 번 빠지면 올인하는 장인 정신 같은 게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한국 e스포츠도 중국과 세계 최강을 다툰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e스포츠는 모두 8개 종목이다. 한국은 ‘배틀 그라운드’와 월드클래스인 페이커가 버티고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LoL)’에서 강세다.

다만 도쿄올림픽 당시엔 스케이트 보드 난이도가 높아 재미가 떨어졌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의 경우엔 e스포츠 방식이 아직도 확정되지 않았다.

IOC의 종목 추가에 대해 김유겸 서울대 체육학과 교수는 “시대와 세대의 변화를 반영하려는 자연스러운 노력이다. 올림픽 자체가 위기인 데다 젊은 세대의 관심이 줄고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스폰서를 노출하기 좋고, 젊은 층을 타깃으로 삼을 수 있는 종목 특성을 고려한 결정으로도 볼 수 있다”며 “올림픽이 추구하는 ‘스포츠’의 가치와 정의, 종목 선정과 관련한 기준과 철학, 방향성이 불분명하다 보니 ‘e스포츠가 과연 스포츠가 맞느냐’는 논란이 생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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