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가 다 잊히고 만다..다시 봐야 할 한국 추상화가 7인
이봉상부터 하인두까지
57점 공개, 자료 전시도
22일 학술 세미나 예정
서울 삼청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에이도스( eidos)를 찾아서:한국 추상화가 7인'전이 7일 개막했다. 참여작가는 이봉상, 류경채, 강용운, 이상욱, 천병근, 하인두, 이남규. 이 중 전시장에서 직접 만날 수 있는 작가는 한 명도 없다. 모두 50여 년~10여 년 전 사이에 작고한 작가들이기 때문이다. 한때 크게 주목받고 명성을 누렸으나, 그들이 떠나자 치열했던 작업의 흔적 또한 빠른 속도로 희미해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다 잊히기 전에
전시장에서 만난 김 교수는 " K-아트의 대표 장르로 꼽히는 단색화는 세계 무대에 한국 현대미술의 힘과 저력을 보여준 기적이었다"며 "그러나 단색화가 한국미술의 전부는 아니다. 우리 미술계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전후 서구에서 유입된 추상회화를 받아들이되 한국적 양식을 고민하고 시도했던 다양한 작가들이 있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서구 추상화와 다른 우리만의 '그것'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전시 제목의 ‘에이도스(eidos)’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 존재·사물에 내재하는 ‘본질’을 가리킨다.
이봉상, 태고의 풍경에 이르다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이봉상의 그림들이다. 14세에 제8회 조선 미술전람회에 입선해 주목받은 이봉상은 1937년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홍익대 교수를 역임했다. 초기에 수풀, 새, 달 등의 한국적 소재를 강렬한 색채, 거친 필치로 담아내던 화면은 후기에 식물 열매와 세포 같은 형상으로 크게 변화한다.
현장에선 1963년 작 '나무I'와 5년 후에 그린 '미분화시대 이후 2'를 눈여겨 비교해 볼 만하다. 갈수록 미시 세계로 파고들며 형태의 본질을 찾아 들어간 작가의 변화를 눈에 띄게 보여준다는 점에서다. 김 교수는 "이봉상은 1970년 작고 후 그해 신세계 화랑에서 회고전이 열렸으나 이후 세상에 공개된 적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여전히 과소평가된 화가 류경채
이상욱과 이남규
1923년 함경남도 함흥 출신인 이상욱은 1988년 작고했다. 이후 국립현대미술관(1992), 일민미술관(1997)에서 회고전이 열렸으나 그게 이미 20~30년 전의 일이 됐다. 1942년 도쿄 가와바타화숙에서 수학한 그는 원형 또는 사각형, 단순화된 띠와 점으로 구성한 추상과 토막 난 붓자욱으로 구성한 추상 등을 발표했다. 80년대엔 서체처럼 붓에 속도와 리듬을 불어넣었다.
1931년 충남 대전에서 태어난 이남규에겐 예술작업이 구도(求道) 과정이었다. 공주사범대 국문과,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그는 1968년 오스트리아 유학을 떠나 유리화를 공부했다. 작품을 통해 생명, 자연, 우주 등의 근원적 질서를 표현하고자 했던 그에겐 빛이 굉장이 중요한 요소였다. 김 교수는 "이남규 회화는 처음엔 그저 순하고 약한 그림으로 보이지만 볼수록 화면에 따뜻한 빛이 가득차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남규의 회고전은 1993년 작고 이후 가나아트센터(2003), 대전시립미술관(2013)에서 열린 바 있다.
이밖에 호남 추상미술의 개척자 강용운, 1950년대 후반에 대담하게 초현실주의 그림을 그렸던 천병근, 한국 전통미술과 불교적 세계관을 추상회화로 구현한 하인두의 작품을 함께 볼 수 있다.
더 가꿔야 할 우리 미술 자산
또 "시간이 흐르며 작가들이 잊히는 속도에 가속도가 붙는 게 안타까웠다"면서 "이런 작품이 더 많이 전시되고, 거래되고, 연구되는 과정을 통해 우리 미술의 정체성을 다져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2월 6일까지.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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