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중 알코올 농도 0.05%, 인생이 달라졌다

김준모 2022. 1. 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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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어나더 라운드>

[김준모 기자]

 <어나더 라운드> 포스터
ⓒ (주)엣나인필름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과 제33회 유럽영화상 작품상을 수상한 <어나더 라운드>는 술을 통해 인생을 말하는 영화다. 네 명의 교사는 중년의 나이에 이르러 직장과 가정에서 위기를 겪는다. 이들이 일상을 바꾼 방법은 바로 '술'이다. 영화는 "모든 인간은 혈중 알코올 0.05%의 농도를 가지고 태어난다. 매일 이를 유지하면 창의적으로도, 용감하게도 만든다"라는 한 심리학자의 이론을 기반으로 한다.
마르틴, 톰뮈, 니콜라이, 페테르는 한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중년에 접어들면서 삶의 활력을 잃어버렸다. 특히 마르틴은 직장과 가정 모두에서 위기를 겪고 있다. 매일 야간근무로 바쁜 아내 앞에서 마르틴은 주눅이 든다. 여기에 자식들은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단체면담을 신청한다. 그의 수업으로는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을 것 같다는 게 이유다.
  
 <어나더 라운드>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이에 마르틴과 친구들은 앞서 언급한 이론을 바탕으로 실험을 진행한다. 그 실험은 혈중 알코올 농도를 0.05%로 맞추고 수업을 하는 것이다. 국내에서 현행 음주운전 기준 면허정지가 혈중알코올농도 0.03%라는 점에서 꽤나 높은 수치라 할 수 있다. 이들의 음주수업은 예기치 못한 활력을 보여준다. 마르틴은 유머는 물론 행동력까지 보여주며 학생들과 사이가 가까워진다. 그의 변화는 가정에서도 펼쳐진다.

아내와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건 물론 함께 가족여행을 떠나 간만에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변화는 학교에서도 펼쳐진다. 왕따를 당하는 초등학생을 챙겨주며 그 가능성을 이끌어내 친구들과 어울리게 만드는가 하면 매번 긴장을 해서 졸업시험에서 떨어지는 학생에게 술을 권해 자신감을 불어넣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이 영화는 술을 통해 인생의 활력을 찾는 중년남들의 낭만을 담아낸 듯하다.

영화는 도입부에서 세렌 키에르케고르의 시에서 '청춘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꿈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꿈의 내용이다'라는 구절을 인용한다. 이 구절 이후 등장하는 장면은 학생들이 술과 관련된 게임을 하다 진탕 취해 도시에서 사고를 치는 장면이다. 주된 플롯을 생각했을 때 다소 생뚱맞은 시작이라 볼 수 있다. 이 시작이 의미하는 건 <어나더 라운드>가 술을 통한 변화가 아닌 술로 빚어낸 인생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어나더 라운드>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마르틴을 비롯한 주인공들은 술을 통해 청춘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점이다. 청춘에는 열정과 패기와 함께 중년이 되어서야 알 수 있는 게 있다. 바로 시행착오다. 인간은 청춘의 경험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그것이 사랑과 같은 기쁨일 수도 있고 실수와 고통일 수도 있다. 어느 날 마르틴은 혈중알코올 농도 0.1%인 상태로 수업을 진행한다. 그 모습을 본 페테르는 자신이 본 수업 중 최고였다며 각자에게 맞는 알코올 농도를 찾자고 말한다.

그 방법은 술에 완전히 취해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시는 것이다. 이미 직장과 가정에서 행복을 찾은 마르틴은 이 계획에 동참하려 하지 않는다. 술에는 한 가지 속성이 있다. 바로 중독이다. 중독은 쾌락에 빠져 극단적인 결과를 낳는다. 행복이란 쾌락에 빠진 마르틴은 더 큰 행복을 얻고자 하는 욕심에 이 계획에 동참하고 결국 사고를 치고 만다. 이 영화가 술이 아닌 인생에 관한 영화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위기 속에서 희망과 함께 절망도 비춘다.

<어나더 라운드>는 일본영화 <쉘 위 댄스?>를 떠올리게 만든다. <쉘 위 댄스?>는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중년남성들이 사교댄스를 배우며 인생의 활력을 찾아가는 내용을 담았다. 이 작품은 이 활력에 절망을 더하나 그 안에서도 희망을 찾고자 한다. 작품의 감독인 토마스 빈터베르그는 영화를 촬영하던 중 딸을 교통사고로 잃었다고 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학교는 그의 딸이 다니던 학교였다.
  
 <어나더 라운드>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그의 딸은 시나리오를 보고 왜 이렇게 절망적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감독은 희망을 부여했고, 이 희망은 딸에게 바치는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잘 나타난다. 포스터의 장면이기도 한 졸업한 학생들과 마르틴을 비롯한 교사들이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은 또 다른 희망을 의미한다. 졸업식은 인생의 한 챕터의 종료와 함께 새로운 시작을 뜻한다. 마르틴이 젊은 시절 배웠던 재즈발레를 이 장면에서 처음 선보인다는 점에서 그의 삶에 새로운 청춘과도 같은 꿈과 사랑이 펼쳐질 것이란 긍정의 의미를 내포한다.

<더 헌트>의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배우 매즈 미켈슨 콤비가 다시 뭉친 <어나더 라운드>는 술을 통해 인생을 보여주는 영화다. 행복도 절망도 감당하기 힘들 만큼 취해버리는 순간이 있다. 허나 이 취기는 언젠가 끝이 난다. 청춘의 행복도, 중년의 위기도 영원하지 않다. 그 순간을 받아들이고 이겨내는 과정을 담아낸 이 작품은 술로 빚어낸 중년의 위기와 희망을 비추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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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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