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명대사⑳-2] '명언 메이커' 박석과 커피 한잔할까요?

홍종선 2022. 1. 10.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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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명대사
분명 웃고 있던 눈가에 눈물이 잦아드는 드라마 ⓒ이하 카카오TV 제공


[홍종선의 명대사⑳-1] 토닥토닥 위로 한 모금, 커피 한잔할까요?…에 이어서


드라마 ‘커피 한잔 할까요?’(연출·극본 노정욱, 기획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제작 컨텐츠크리에이티브그룹 문)의 명대사는 매회, 마디마디 등장해서 이루 말할 수 없는데. 개인적으로는 8회 ‘힙스터’, 11회 ‘빛과 소음’ 편에서 큰 울림을 느꼈다.


‘힙스터’ 에피소드는 형틀 목수팀 반장 이성배로 분한 배우 정석용이 ‘큰일’ 한 회차다. 대번에 필터 커피(핸드드립 커피)를 주문하는 김 주임과 ‘2대 커피’에 온 이성배 반장은 똑같이 필터 커피를 시켜 마시는데 입에 쓸 뿐이다. 직원 두 명과 다시 카페를 찾아와서는 바닥에 흙칠을 하고, 바리스타 강고비를 ‘총각’이라 부르며 메뉴 추천도 마다하며 필터 커피를 시키더니 역시나 또 쓰단다. 이번엔 공사장으로 팀원들과 마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선 필터 커피라고 말하는가 하면 팀원들이 쓰다며 커피를 홀대하자, 본래 하지 않는 배달인데 빗속에 서비스한 강고비(옹성우 분)는 화가 뻗친다.


형틀 목수팀 이성배 반장을 실감 나게 연기한 배우 정석용 ⓒ

좀처럼 화를 못 푸는 고비에게 ‘2대 커피’ 사장 박석(박호산 분)은 이탈리아 노동자들이 출근길에 즐겨 마시는 에스프레소 얘기를 들려준다. 바쁜 출근길, 앉을 여유도 없이 바에 서서, 커피 호호 불어가며 많은 양을 마실 시간이 없는 그들이 한입에 턱 털어놓고 마시는 에스프레소. ‘2대 커피’의 바에도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한다.


이성배 반장은 팀원들과 회식한 참이라며 영업을 마쳤지만 아직 불이 켜진 ‘2대 커피’에 들른다. 문만 열고 빼꼼히 서서 사과하러 왔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이 반장, 강고비는 흙신발로 주저하는 이 반장에게 “청소하는 게 제 일입니다”라고 말하며 들어오시라 청한다. 강고비는 총 3잔의 커피를 내는데, 첫 잔은 에스프레소다. 한 모금 마신 뒤 “쓰지 않고 쌉쌀하다, 쫀득거린다”고 말하는 이성배, 고비가 말하는 대로 숟가락으로 저어 나머지를 마시더니 “달다” “향긋하다” “신세계네, 신세계”라고 한다. 고비가 커피에 설탕을 탄 ‘카페 콘 주케로’라고 알려주며 설탕이 커피의 탄 맛을 가려주고 향미를 돋워준다고 하자 “요물이네, 요물”이라고 반긴다. 고비는 우유 거품을 넣어 추출한, 얼룩이라는 뜻의 ‘마끼아또’에 이어 생크림(빠냐)을 얹은 ‘콘 빠냐’를 대접한다. 이성배는 맛있어 하며 에스프레소를 즐긴다.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행복', 그 문을 열어 주는 소통 ⓒ

강고비: 원래 반장님께 추천해 드릴 생각은 못 했는데. 어느 분께서 힌트를 주셨어요.


이성배: 뉘신지 모르겠지만 귀인이시고만.


강고비: 근데 신기하다. 의도한 맛을 제대로 느끼시네.


이성배: 제대로 만들었으니까 그렇겠지. 설명 안 해 줘도 맛보니까 대번에 알겠구만.


강고비: 감사합니다.


이성배: 이 건물도 마찬가지야. 만든 사람이 이러쿵저러쿵 안 해도 딱 보면 알아. 내가 ‘형틀 목수’ 밥 먹은 지 20년이 넘었거든.


강고비: 형틀 목수요?


이성배: 거푸집 알지. 공그리(콘크리트) 치기 전에 나무 합판으로 뼈대 만드는 거. 공사판에서 굴러먹는 사람들이 말도 행동도 좀 거칠어. 근데 나는 우리가 하는 일을 막노동이라고 부르는 건 정말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더라고.


강고비: 어감이 좀 그렇죠.


이성배: 막이 뭐야, 막이. 그냥 막 한다는 거 아냐. 근데 우리가 거푸집을 1cm만 오차 나게 만들어 봐, 건물 그냥 ‘아작’ 나는 거야. 그게 어떻게 막노동이야.


강고비: ‘막입’도 아니시고요. 원래 취향이 있으셨던 거였어요.


이성배: 그럼 뭐 (에스프레소) 한 잔 더 줘 봐.


강고비: 너무 많이 드시는 거예요.


이성배: 아, 그런가. 하하하. 나는 커피 마셔도 머리만 대면 잘 자.


창 안팎이 함께하는 멋진 풍경 ⓒ출처=네이버 블로그 heydaddy

우리는 내 기준에서 상대를 보기 쉽다. 경험하기 전에는 본인도 알지 못한 이성배의 취향은 에스프레소였지만, 바리스트 강고비는 필터 커피와 아메리카노를 쓰다고 하는 이성배에게 “취향은 있으시고요?”라고 막말했었다. 우리는 집을 짓는 일을 ‘막노동’이라고 막말해 오고 있다.


반전은 배우 박호산의 나직한 톤, 박석이 강고비에게 하는 말이다. 재벌회장이 배달해 달라고 했으면 거절했을 거면서 배달을 마다하지 않았던 게 ‘동정’이 아니냐고 묻는다. 동정 또한 ‘공정’하지 못한 거라고 말한다. 몇 번의 마찰을 통해 강고비는 이성배를 동정하는 게 아니라 그의 입맛과 그가 하는 일을 존중하게 됐다. 몇 번은 괜찮다, 거기까진 실수다.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이성배와 강고비 스스로 만들었다.


여덟 번째 에피소드의 제목이 ‘힙스터’인 이유는 힙스터라는 제목이 드리우는 건축노동자들의 청바지에서 확인된다. 8회 마지막, 작은 에스프레소 잔을 하나씩 들고 ‘2대 커피’ 창가 외부에 서서 커피를 마시는 노동자 세 명의 모습, 이 ‘힙한’(hip하다, 고유한 개성과 감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최신 유행에 밝고 신선하다) 힙스터들을 웹툰 작가 안미나(김예은 분)가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는다.


공사장 인부의 흙더미 신발을 박대하지 않는 ‘2대 커피’라는 열린 공간이 있어 바리스타와 건축노동자가 만났고,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넓어진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이해만큼 함께 행복해졌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진짜 주인공들이 8회차에도 어김없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세상과 담을 쌓은 백종길 역으로 분한 조정치 ⓒ

11회차에는 작곡가에서 가수로, 예능인이더니 이제는 배우로도 괜찮은 조정치가 등장한다. 헤비메탈 그룹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였으나 후배 드러머의 사망, 그 아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백수 백종길로 분했다.


동네 정자에서 뒹굴고 음악 하는 이에게 독설이나 날리는 백종길을 박석은 ‘2대 커피’로 초대한다. 얻어 마시다 못해 무전취음 후 줄행랑을 치는 백종길. 박석의 연인, 작가 김주희(서영희 분)는 그를 알아보고 세상 안으로 불러들이려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모든 걸 거부하는 백종길에게 박석이 앞으로 모든 커피는 공짜라고 말하자 동정하냐고 빈정댄다. 못난 백종길에게 백성이 날리는 일갈.


“스스로 포기한 사람한테는 동정해도 되는 거 아닙니까.”


정신이 번쩍 든다. 꼭 백종길처럼 사람들에게 벽을 치고 세상을 빈둥거려야 자신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아픔이 제일 크다고 느끼는 것, 제 생각에만 귀를 기울여 자신만 옳다고 여기는 것, 내게 부족한 게 없으면 혼자 살 수 있다고 자만하는 것. 함께 사는 삶과 세상 속에 진실로 행복이 있음을 부인한다면 아무리 가진 게 맞아도 동정받아 마땅하다. 박석의 이 말을 듣는 백종길이 되어 보면, 정말로 받지 말아야 하는 취급이 무엇인지 몸서리치게 각인될 수 있다.


나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는 친구가 있나요, 더불어 사는 행복 ⓒ

다행히 백종길은 세상 속으로, 사람들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노래한다. 자신의 이야기이자 우리의 이야기, 커피 이야기이자 인생 이야기를 담아 노래한다. 배우 박호산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고 감동한 ‘커피 한잔 할까요?’의 주제곡과도 같은 노래를 부른다. 맞다, 조정치는 가수였다, 작곡가였다. 잘하는 게 많아도 제일 어울리는 자리는 있고, 본업이라는 게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 주제곡까지 나오니 어느새 마지막 회인가 아쉬움에 안달이 날 때, ‘달콤 쌉싸름한 위로’ 편이 우리를 맞는다.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의 그늘에서 시름 하는 우리, 자연 앞에 인간은 얼마나 나약하고 재앙 앞에 우리는 얼마나 속수무책인지가 주마등처럼 흐른다. 제자리를 지키는 게, 먹고산다는 게 얼마나 엄중한 일인지를 안다는 것이 나만 살고 보겠다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더불어 사는 삶 속에 도리어 돌파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젤라또 아이스크림과 에스프레소의 만남, 아포카토로 건넨다.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미소, 그런 미소를 가진 사람들이 하는 일, 그런 사람들과 그들의 일이 세상을 움직인다 ⓒ

방영은 끝났어도 왓챠에서 드라마를 보다 보면, ‘내 마음의 2대 커피’를 찾아가 커피를 마시고 싶을 수 있다. 다 보고 나면, ‘인생 드라마’ 순위에 변동이 생길지 모른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생각날 것 같은 드라마의 마지막을 장식한 박석과 강고비의 햇살처럼 환한 미소를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다시 보고 싶어 자꾸만 다시 볼 것이다. 아쉬움에 자꾸만 길어지는 기사를 ‘명언 제조기’ 박석의 말 두 가지를 전하며 마무리한다. 커피와 인생은 서로 닮았다.


“버튼만 누르면 나오는 게 맞아. 버튼을 누르기까지 수많은 노력이 가려지는 게, 그게 좀 아쉬운 거지.”


“커피의 맛도, 사람에 대한 마음도 한결같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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